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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5-19 22:04:48

데키냐

파일:José Mendonça dos Santos.png
이름 주제 멘돈사 두스산투스
(José Mendonça dos Santos)
생년월일 1928년 3월 19일
사망년월일 1997년 7월 23일 (향년 69세)
국적 파일:브라질 국기.svg 브라질
출신지 브라질 제1공화국 모소로
포지션 하프백
신체조건 미상
소속팀 ACD 포치구아르 (1946)
ABC FC (1947-1950)
아메리카 FC(페르남부카누) (1950)
CR 플라멩구 (1950-1960)
보타포구 FR (1961)
캄푸 그란지 AC (1962)
국가대표 7경기 0골 (1954-1956)
감독 CS 세르지페 (1970-1972)
데스포르치바 페호비아리아 (1973)
AO 이타바이아나 (1975)
AO 이타바이아나 (1986-1987)
AO 이타바이아나 (1989)

1. 개요2. 생애
2.1. 선수 생활2.2. 이후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4. 뒷이야기5. 수상
5.1. 선수
5.1.1. 클럽
5.2. 감독

1. 개요

브라질의 전 축구 감독.

2. 생애[1]

2.1. 선수 생활

2.1.1. 클럽

히우그란지두노르치주의 모소로에서 태어난 데키냐는 포치구아르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뛰던 아웃사이드 레프트 포지션에서 하프백으로 포지션을 옮겼고 ABC FC, 헤시피의 아메리카 FC를 거쳐 1950년에 CR 플라멩구에 입성했다. 키냐의 합류로 CR 플라멩구는 그의 이적 당시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최강팀이었던 CR 바스쿠 다 가마의 독주를 멈춰세울 수 있었고 3년 연속 카리오카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데키냐는 주장 완장을 물려받은지 얼마 되지 않은 1958년 이후 부상으로 한동안 개점휴업 상태에 그쳤고 1960년에 10년 반간의 플라멩구 생활을 정리해야 했다.

데키냐는 302경기의 출전 기록을 뒤로한 채 보타포구 FR로 팀을 옮겼지만 공식 경기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그는 캄푸 그란지 AC에서 1962년에 은퇴했다.

2.1.2. 국가대표

CR 플라멩구의 주축 선수였지만 데키냐는 셀레상과는 큰 인연을 맺지 못했다. 1954년 월드컵 당시 데키냐도 대표팀에 승선했지만 주장 바우에르에 밀려 월드컵에서 단 1분도 뛰지 못했다. 데키냐는 2년간 친선 경기 7경기만을 뛰고 대표팀 경력을 마무리해야했다.

2.2. 이후

데키냐는 1970년에 친정팀 CR 플라멩구의 코치로 부임해 흔들리던 친정팀을 진정시킨 기록이 있다. 그리고 그는 감독으로 CS 세르지페, 데스포르치바 페호비아리아, AO 이타바이아나를 지도했다. 그의 감독생활 전성기는 세르지페 시절로 이곳에서 리그 3연패를 달성했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데키냐는 고전적이면서도 세련된, 그리고 다재다능한 하프백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그 역할을 수행했다. 그래서 그에게 붙은 별명이 O Cavalheiro였다. 사실 그는 아웃사이드 레프트 포워드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가 하프백 위치로 이동했는데 그 포지션에서 그의 운동 능력과 대인 마킹 능력이 두드러졌다. 또한 그의 정확한 패스와 속도는 팀의 역습에 효과적인 자산이 되었다.

데키냐는 자신이 가장 오래 뛴 클럽인 CR 플라멩구에서 역대 최고급 수비형 미드필더[2]로 뽑힌다.

4. 뒷이야기

5. 수상

5.1. 선수

5.1.1. 클럽

5.2. 감독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 placar 1994년 11월호[2] 그는 현역시절 대부분을 하프백으로 뛰었고 현재의 수비형 미드필더와는 역할의 차이가 있지만 주로 현재의 투표에서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분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