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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어 Deir al-Balah아랍어 دير البلح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중부의 도시. 북쪽의 가자 시티와 남쪽의 칸유니스 사이에 위치하고, 인구는 약 6만명이다. 지명은 '대추야자수 수도원'이란 뜻으로, 지금도 대추야자가 특산물이다. 그외에 데이르 알 키드르, 데이르 마르 지르이스, 데이르 다룸 등으로도 불린다. 모두 ~의 수도원이란 뜻이다.[1]
2. 역사
기원전 14세기 '호루스의 길'을 따라 세워진 이집트 신왕국의 요새 도시 중 하나였고,[2] 기원전 1150년 경부터는 블레셋 도시가 되었다. 그러던 서기 4세기 중엽, 현지 출신 기독교 사제 힐라리온이 수도원을 세우며 현 지명이 유래되었다. 해당 수도원은 팔레스타인 지역 최고의 수도원 중 하나였다. 634년 가자를 포위하던 이슬람 제국군이 점령하였고, 따라서 데이르 알 발라는 이슬람 령이 된 첫 팔레스타인 해안 도시였다. 10세기 말엽 파티마 왕조의 칼리파 알 아지즈는 신임하는 유대계 재상 야쿱 빈 킬리스에게 일대를 영지로 주었다.2.1. 십자군 전쟁기
십자군 시기 건축이 남아있는 알 키드르 모스크 (12세기까지 성 요르요스 수도원)
십자군 전쟁기 일대는 다르 앗 룸 (로마인의 집)에서 유래한 다론 (다룸)이라 불렸고, 1153년 아슈켈론 함락 후 아모리 1세가 이집트 정복의 전초기지로 다론 성채를 세웠다. 1170년 이집트의 실권자 살라흐 앗 딘이 포위했고[3], 이후 가자와 마찬가지로 템플기사단이 주둔하였다. 마침내 1188년 살라흐 앗 딘에게 항복했고, 그는 처음에 허물려던 마음을 바꿔 17개 성탑을 더한 후 에미르 알람 앗 딘 카이사르를 배치하여 보급 기지로 삼았다.
1192년 3차 십자군의 리처드 1세가 함락했으나 이듬해 협상을 통해 아이유브 왕조령이 되었다. 그리고 1196년 다론 성채는 이듬해 당도할 독일 십자군의 이용을 막기 위해 철거되었다. 맘루크 왕조기 데이르 알바라는 통신 체계인 바리드의 거점 중 하나로 카라반사라이가 세워졌고, 전서구가 배치되었다.
2.2. 근세
오스만 제국 지배기인 16세기 초엽만 해도 기독교 가구 87, 무슬림 가구 56으로 전자가 우세했다. 다만 16세기 말에 175대 125로 무슬림 가구 수가 역전했고, 17300 악체의 세금이 걷혔다. 19세기까지 그리스 정교회 예루살렘 대주교 하의 주교구로 남았다. 안정적으로 성장하던 도시는 1862년 인근 늪의 수자원 오염으로 인해 다수의 사망자가 나오며 쇠퇴했고, 2천여 인구도 3백여로 줄었다. 세계 1차 대전 중이던 1917년 2월, 칸유니스에 이어 데이르 알 발라를 점령한 영국군은 비행장을 세우고 가자와 베르셰바 공격을 위한 보급 기지로 활용했다. 인근에는 1차 대전기 영국이 세운 25개의 해외 전몰자 묘지 중 6번째로 큰 묘지가 들어서 724인이 안장되었다. 이는 현재도 동북쪽 외곽에 남아있다.2.3. 현대
한동안 버려져 있던 알 키드르 모스크는 2014년 보수 공사 후 어린이 도서관으로 바뀌었다.
인구 2500여의 마을에 불과하던 데이르 알바라는 이스라엘 건국 후 난민들의 유입으로 도시화되었고, 1950-60년대 이집트 지배기에 데이르 알 발라는 풍부한 지하수를 바탕으로 한 과실수 생산으로 안정을 누렸다. 하지만 1967년 이스라엘의 점령 후 유대인 농부들이 수자원을 강탈하고, 무분별한 시가지 난개발로 농토가 줄어들며 현지의 농업은 큰 타격을 받았다. 1994년, 데이르 알 발라 팔레스타인 도시들 중 최초로 자치정부 령이 되었다. 2차 인티파다 이후 데이르 알 발라는 이스라엘의 지속적인 공격에 시달렸고, 2007년 철수 전까지 이스라엘 당국은 수시로 불도저로 농지를 밀어버리는 등 현지인들의 분노를 야기했다. 2005년 1월 하마스 출신의 아흐마드 쿠르드가 시장으로 당선되었다. 2007년 하마스-파타 내전 당시 데이르 알 발라에서도 최소 4인이 전사하였고, 이후 하마스가 집권하여 현재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