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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0세기 초부터 920년대 후기까지 지금의 윈난성에 세워졌던 단명정권에 속하는 국가들.2. 역사
2.1. 대장화
大長和(902~928)남조의 뒤를 이어 세워졌다.
902년, 한족 출신의 남조국 권신이었던 정매사는 마지막 황제였던 순화정을 죽이고 수도인 양저미성에서 12월에 황제로 올랐다. 국호를 대장화(大長和)로 바꾸었다.
913년 또는 914년, 정매사의 뒤를 이어 2대 황제가 된 정인민(鄭仁旻)은 중국대륙 남부의 전촉을 공격했지만 실패했다.[1] 그러나 정인민은 동시에 전촉과 정략결혼을 맺기도 했으며, 그 외 남한과도 정략결혼과 동맹을 맺었다.
926년, 정인민이 죽고 그 뒤를 이어 정륭단(鄭隆亶)이 왕위에 올랐으나 2년 만에 양간정과 조선정에 의해 시해된 후 대장화도 멸망했다.
2.2. 대천흥
大天興(928~929)남조국이 망하고 대장화국이 들어섰으나 928년, 청평관(淸平官)[2]이었던 조선정(趙善政)이 반란을 일으켜 대장화의 마지막 황제였던 정륭단을 죽인 후 대장화는 멸망하는데, 그 후에 조선정은 황제가 되어 대천흥을 세우고 연호를 존성(尊聖)으로 정했다.
반란을 일으켰을 때 대장화의 동천절도사였던 양간정(楊干貞)의 도움을 받았지만 양간정은 1년 만인 929년에[3] 조선정을 쫓아내고 황제가 되어 대의녕을 세운다. 쫓겨난 조선정은 훗날 살해되면서 조선정의 천하도 막을 내렸다.
2.3. 대의녕
大義寧(929~937)929년 대의녕을 세운 양간정은 연호를 '흥성(興聖)'으로 지었다. 그러나 양간정은 폭정을 일삼았기에 그 역시 동생이었던 양조(楊詔)에 의해 왕위를 빼앗겼다.
937년 통해절도사였던 단사평의 전동(滇東)[4]에서 37부 병사들과 같이 일으킨 반란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양조는 반란군에 저항했지만 패배한 뒤 자살했고, 양간정도 도망치다가 단사평에게 붙잡혀 죽게 된다. 이로써 대의녕도 멸망하고 대리국이 들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