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6-03-17 22:55:35

대장화 & 대천흥 & 대의녕

대의녕에서 넘어옴

{{{#!wiki style="word-break: keep-all; 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colbgcolor=#808080> 고대 전나라
전한 (익주)
(익주)
후한 (익주)
중세 촉한 (익주)
[[제갈량의 남중 정벌|
제갈량의 남중 정벌
]]
조위 (익주)
서진 (영주)
동진 (영주)
[[찬만|
찬만의 이주
]]
유송 (영주)
소제 (영주)
소량 (영주)
북주 (남영주)
(남영주)
육조
남조
대장화 & 대천흥 & 대의녕
대리국
[[고승태|
대중
]] [[이족|
자기국
]]
(운남제로행중서성)
근세 (운남등처승선포정사사)
(운남성)
[[오주(명말청초)|
오주
]] [[평남국|
평남국
]]
근현대 중화민국 (윈난성)
[[전계군벌|
전계군벌
]]
중화인민공화국 (윈난성) }}}}}}}}}

1. 개요2. 역사
2.1. 대장화2.2. 대천흥2.3. 대의녕
3. 관련 문서

1. 개요

10세기 초부터 920년대 후기까지 지금의 윈난성에 세워졌던 단명정권에 속하는 국가들.

2. 역사

2.1. 대장화

大長和(902~928)
남조의 뒤를 이어 세워졌다.

902년, 한족 출신의 남조국 권신이었던 정매사는 마지막 황제였던 순화정을 죽이고 수도인 양저미성에서 12월에 황제로 올랐다. 국호를 대장화(大長和)로 바꾸었다.

913년 또는 914년, 정매사의 뒤를 이어 2대 황제가 된 정인민(鄭仁旻)은 중국대륙 남부의 전촉을 공격했지만 실패했다.[1] 그러나 정인민은 동시에 전촉과 정략결혼을 맺기도 했으며, 그 외 남한과도 정략결혼과 동맹을 맺었다.

926년, 정인민이 죽고 그 뒤를 이어 정륭단(鄭隆亶)이 왕위에 올랐으나 2년 만에 양간정과 조선정에 의해 시해된 후 대장화도 멸망했다.

2.2. 대천흥

大天興(928~929)
남조국이 망하고 대장화국이 들어섰으나 928년, 청평관(淸平官)[2]이었던 조선정(趙善政)이 반란을 일으켜 대장화의 마지막 황제였던 정륭단을 죽인 후 대장화는 멸망하는데, 그 후에 조선정은 황제가 되어 대천흥을 세우고 연호를 존성(尊聖)으로 정했다.

반란을 일으켰을 때 대장화의 동천절도사였던 양간정(楊干貞)의 도움을 받았지만 양간정은 1년 만인 929년에[3] 조선정을 쫓아내고 황제가 되어 대의녕을 세운다. 쫓겨난 조선정은 훗날 살해되면서 조선정의 천하도 막을 내렸다.

2.3. 대의녕

大義寧(929~937)
929년 대의녕을 세운 양간정은 연호를 '흥성(興聖)'으로 지었다. 그러나 양간정은 폭정을 일삼았기에 그 역시 동생이었던 양조(楊詔)에 의해 왕위를 빼앗겼다.

937년 통해절도사였던 단사평의 전동(滇東)[4]에서 37부 병사들과 같이 일으킨 반란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양조는 반란군에 저항했지만 패배한 뒤 자살했고, 양간정도 도망치다가 단사평에게 붙잡혀 죽게 된다. 이로써 대의녕도 멸망하고 대리국이 들어선다.

3. 관련 문서


[1] 당시 중국도 오대십국으로 혼란스러워 여러 나라들로 분열되었다.[2] 남조국 및 대리국의 재상을 일컫는 단어.[3] 정확히는 10개월간 존속했다.[4] 윈난성 동부의 지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