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의 조카뻘 친족[族子]로, 안승이 고씨인지 연씨인지 기록이 불완전해 애매하긴 하지만 안승이 고구려인들이 혈통을 인정하고 왕으로 추대한 인물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그 역시 고구려 왕족에 속하는 인물로 추정된다.
그의 이름은 대문 외에 실복(悉伏)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일종의 고구려어로 추정되지만 의미는 알 수 없다.
고구려 부흥운동이 실패한 후, 674년경 안승은 신라의 협조 하에 옛 백제 땅인 금마저(익산시)에 세운 고구려 유민들의 자치국가 보덕국을 세우고 보덕국의 왕이 된다. 대문 역시 이때 따라온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683년 안승이 신라의 관등과 성씨를 받고 경주로 가버려 보덕국이 붕 떠버렸고, 1년여가 지난 684년에 대문이 반란을 계획했다. 그러나 사전에 발각돼 대문은 처형되었다. 그러자 대문의 남은 무리들이 크게 반란을 일으켜, 신라 조정은 귀당제감 핍실을 파견하지만 반란의 세가 강해 신라군이 패배해 핍실은 전사했고, 이후 김영윤이 황금서당 부대를 이끌고 대문의 남은 무리를 제압해 보덕국을 해체시켰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