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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7-01 12:30:22

대구 팔거산성 출토 목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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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 직후의 모습. 사진 출처 : TV조선 - 대구 팔거산성에서 대구 최초 신라 목간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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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내용3. 관련 영상4. 관련 항목5. 외부 링크

1. 개요

2021년,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에 위치한 팔거산성의 집수지 유적에서 발견된 7세기 초 신라시대의 목간 16점. 현재 경상북도 경주시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 일괄 소장되었다.

2. 내용


경주의 화랑문화재연구원이 과거 삼국시대의 최고 격변기였던 7세기 초 신라의 전략적 요충지였던 팔거산성에서 발견한 한국의 목간들로, 2021년 4월에 최초로 목간 11점이 발견되었고, 이후 2021년 6월에 5점이 추가로 발견되었다.대구일보 : 대구 북구 팔거산성 문화재 봇물…목간 5점 추가 출토, 매일신문

신라 팔거산성은 7세기 초, 신라 왕경 서쪽을 방어하는 전초기지였다. 당시 신라 서쪽 지역에서 왕경인 경주시로 이어지는 통로는 오늘날 낙동강을 통해 대구광역시-경산시-영천시으로 이어지는 길인데, 이러한 경로에서 가장 서쪽에 있던 팔거산성은 수로와 육로를 동시에 통제하는 중요 거점이었기 때문이다.경향신문 : 팔거산성에서 대구 지역 최초로 목간 11점 출토…7세기 초 전략적 거점으로 확인 때문에 이미 이전부터 신라인들이 이 요충지에 팔거산성을 구축했는데, 2018년 발굴 조사 결과 이 곳에서 6세기 경 고대 집수지 두 곳이 확인되어 당시 전국적으로 화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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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기 경에 구축된 것으로 확인된 팔거산성 집수지 중 1곳의 모습.사진 출처 : 매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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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거산성 집수지의 초기 모델로 확인되는 5세기 고모산성의 집수지 모습. 국민일보 : 문경 고모산성서 5세기 신라 지하3층 목재구조물 발굴, 노컷뉴스 : 문경서 5세기 추정 대형 지하 목조건축물 발굴

조사 결과 팔거산성 목조 집수지 1호는 길이 8.5 m, 너비 4.9 m 규모 평면 장방형(1:1.72)으로서 바닥 면적 41.8 ㎡로 산출되며, 그 깊이는 구지표로부터 3~3.6 m에 이르렀고, 집수지 2호는 길이 7.8 m, 너비 4.5 m, 높이 약 3 m, 면적은 35.1 ㎡였다. 집수지의 저수 용량은 약 10만 5300리터에 이르러 6세기에 이 정도의 저수 용량을 산성 내에 확보 가능한 건축물을 제작하였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하였다.내용 출처: 대구일보 김상현 화랑문화재연구원 부장은 "집수지의 기둥 사이 간격이 정확히 1 m로 규칙적이다. 이같은 세밀함으로 잘 짜여져 있다보니 1500년이나 땅속에 묻혀있어도 잘 보존될 수 있었다."면서 "당시 기준으로는 굉장히 큰 공사였을 텐데 신라의 고도로 발달한 토목기술에 대한 지식이 엿보인다."라고 했다. 본 목간들은 해당 집수지 내에서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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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에 발견된 목간 11점 중 1~3호까지 3점의 모습.사진 출처 : 우리문화신문

해당 목간들에는 임술년(壬戌年)과 병인년(丙寅年) 등 간지가 씌었는데, 임술년과 병인년은 각각 602년과 606년으로 추정하였다. 보리(麦)·벼(稻)·콩(大豆) 등 곡식 이름을 쓴 글자도 다수 확인됐다. 대부분의 목간들이 7세기 초 세금이나 물품을 징수할 때 사용했던 것으로 추측한다. 본 목간들에는 왕사(王私)와 하맥(下麦)이라는 표현도 등장하는데, 기존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신라 고유의 문구라 학자들이 정확한 의미를 연구 중이다.

또한 현재 전해지는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팔거리현’(八居里縣)이라는 대구의 옛 지명이 나오는데, 그 동안은 대구 칠곡 일대 지역을 가리킨다고 막연히 추정만 해왔으나 해당 목간들의 발견을 통해 이곳이 팔거산성 일대임이 정확히 규명되었다.

본 집수지 유적과 목간들을 발굴한 화랑문화재연구원은 현장 조사를 끝낸 후 바로 집수지 유적을 모두 분해하여 헬리콥터를 통해 경주문화재연구소로 옮겼다. 현재 경주에서 보존 처리를 할 예정이나 발굴된 유물이 너무 많아 문화재청에서는 보존처리를 모두 완료하는 데만도 10년 정도 걸리라 예상하였다. 6세기 경에 만들어진 신라의 집수지 유적과 7세기 초에 만들어진 목간들로, 당시 신라의 건축기술과 시대상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3. 관련 영상

4. 관련 항목

5.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