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당학덕 (唐鹤德) Táng Hèdé [1] / Daffy Tong |
출생 | 1959년 2월 5일 ([age(1959-02-05)]세) |
상하이 | |
국적 | [[틀:국기| ]][[틀:국기| ]][[영국령 홍콩| ]] → [[틀:국기| ]][[홍콩| ]][[틀:국기| ]] |
신체 | 183cm |
학력 | 세인트 프란시스 자비에르 학교 (졸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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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화인민공화국의 금융계 인물이자 매니저. 홍콩의 스타 장국영의 매니저를 도맡았던 걸로 유명하며, 장국영의 곁에서 그가 사망할 때까지 곁을 지켰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2]2. 생애
어린 시절 상당히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으며, 명문 사립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금융계에 종사하며 업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엘리트로 전해진다. 또한 학창 시절엔 잘생긴 얼굴과 훤칠한 키, 신사적인 성격으로 여학우들에게 매우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또한 나중엔 절친한 친구 장국영의 재무 관리를 위해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고 그의 매니지먼트를 도와 주었다.2.1. 장국영과의 관계
장국영과는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냈으며, 장국영의 가족들이나 지인들과도 절친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장국영이 무명 시절 수입이 없어 금전적으로 힘들어할 때, 자신의 몇 개월치 월급을 미리 주어 금전적인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3] 돈을 많이 벌지 못하던 무명 시절 당학덕의 존재는 장국영에게 큰 위안이었다. 다른 사람을 통해 이 사실을 듣게 된 장국영은 크게 감동을 받아 훗날 인터뷰와 콘서트에서 수차례 당학덕을 언급하며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다.장국영 생전 두 사람의 관계는 홍콩 파파라치들의 집요한 취재 대상이었다. 흔히 둘이 손을 잡고 있는 사진도 한 파파라치가 몰래 뒤에 숨어 촬영한 것인데, 장국영은 파파라치가 당학덕과 자신을 찍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잡은 손을 놓지 않고 골목 끝까지 걸어갔다고 한다. 이 때문에 당학덕이 그의 동성연인이라는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사실 말이 많다. 장국영 본인은 생전 연인 사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았고 단순히 '고마운 사람' 이라고 표했을 뿐이다.
두 사람이 가장 많이 언론에 노출된 시점은 장국영이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부터였다. 평소 조용한 사생활을 유지했던 그였지만, 마지막 몇 달간은 당학덕과 함께 거리에 자주 모습을 드러냈다. 2003년 1월부터 3월까지, 기자들은 두 사람이 배드민턴을 치거나 영화를 보고, 차를 마시고, 식사하는 일상적인 모습을 모두 찍어 보도했다.
2.1.1. 장국영 사망 이후
장국영의 장례식에서 오열하는 당학덕 |
2003년 만우절 날, 장국영이 사망하자 당학덕은 장례식을 직접 주관했다. 발인식 날 '우리의 사랑은 하늘도 갈라놓을 수 없다' 는 내용이 담긴 조화를 보내고, 화장터에서는 장국영의 관을 붙잡고 오열했다. 어찌나 크게 오열했는지 옆에 매니저들이 부축하고 있어야 했다고 한다. 당학덕은 장례식 내내 엄지, 검지 두 손가락을 붙이고 때지 않아 그에 대한 사랑을 표현해주었다.
장국영 사후 유언장에 따라 그의 유산 460억원은 모두 당학덕에게 상속되었고, 화장된 장국영의 유골 역시 당학덕이 인수해 간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1997년부터 홍콩 근교에 있는 까토리 산에 위치한 자택에서 살았는데, 당학덕은 장국영이 사망한 뒤에도 8년간 그 집에서 혼자 살다가 고인이 생전 키우던 강아지가 죽자 2011년 초 이사를 갔다. 장국영의 유골 역시 한동안 당학덕과 같이 살았던 자택에 있다가, 당학덕이 이사를 간 뒤에는 당학덕의 자택에 보관되어 있다. 장국영의 위패는 홍콩 근교에 있는 보선사에 안치되어 있고, 매년 기일 추도식 때 그가 투신한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과 보선사에서 추모제가 열리고 팬들이 다녀간다.[4]
장국영 사망 이후 한동안 충격으로 언론과 접촉을 자제하다가, 2010년 7주기 추도식 때부터 참석을 시작해 현재까지 장국영 추모제 등 공식적인 행사에는 모두 참석하고 있다. 여기에는 그와 함께 장국영의 매니저 일을 했었던 진숙분도 동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