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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4 02:00:54

다카하시 겐이치로

파일:다카하시겐이치로.jpg

1. 개요2. 생애3. 주요 작품 목록4. 문장

1. 개요

일본의 작가. 일문학의 대표적 포스트모더니즘 소설가이다. 메이지가쿠인대학 국제학부 교수를 역임했다.

2. 생애

히로시마의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으나, 초등학교 시절 부친의 사업이 도산하고 도쿄로 이사가 가난하게 생활한다. 중학교 시절부터 문학에 빠지고, 고등학교에 올라가서 학생운동을 시작한다. 요코하마국립대학에 입학했으나, 당시는 전공투를 비롯한 일본의 학생운동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라 정상적으로 수업이 진행되지 않았으며, 다카하시 본인도 공부는 뒷전으로 매일같이 시위에 참가한다. 그러다 체포되어 도쿄 구치소에서 1년여간의 시간을 보내게 되고, 충격으로 극심한 실어증을 앓게 된다.

출소 이후 다카하시는 대학으로 돌아가지 않고 10여년 간 막노동에 종사한다. 그 동안은 글을 쓰지 않고, 책을 보지 않는 생활을 했고, 그러다 28세가 된 1979년, 올 나이트 닛폰을 듣다 문득 다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문장을 하루종일 반복해서 쓰면서 글쓰기 재활 훈련을 시작했다.
"나는 이 컵이 좋아"
"응"
"정말, 멋진 컵이야"
"그래"
"너무 좋아, 이 컵."
이후 1980년에 완성한 소설 <멋진 일본의 전쟁>을 군상 신인 문학상에 투고하지만, 최종심에서 낙선한다. 하지만 담당 편집자의 권유로 장편 소설을 집필해 <사요나라, 갱들이여>를 2개월만에 완성하고, 군상 신인 장편 소설상에 응모해서 우수작으로 뽑힌다. 자신의 실어증 극복 경험을 바탕으로 전공투 세대의 좌절과 우울을 독특한 표현으로 담아낸 이 작품은, 전후 일본 비평의 거두였던 요시모토 다카아키[1]의 극찬에 힘입어 그를 무라카미 하루키와 더불어 80년대 일문학 최고 소설가 중 하나로 만들어 준다.

이후 <멋진 일본의 전쟁>은 가필을 거쳐 <존 레논 대 화성인>이란 제목으로 단행본화되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일본 야구>는 제 1회 미시마 유키오상을 수상한다. <펭귄 마을에 해는 지고>의 경우 당대 인기 작품이었던 <닥터 슬럼프>, <근육맨>, <도라에몽> 등 만화, 애니메이션 캐릭터들로 쓴 일종의 팬픽을 주류 문학에서 시도했다.[2]

한편 문학 이외에 경마계에서도 활동했는데, 미시마 유키오상의 상금을 88년도 일본 더비에 출전한 메지로 아르당에 올인해 날려버렸고, 이 에피소드를 계기로 산케이 스포츠에서 경마 칼럼을 쓰기 시작해 2024년 현재까지 36년째 연재중이다. 그 외에도 90년대에 각종 경마 관련 TV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문학에 관심 없는 일반 사람들에겐 이 쪽으로 더 유명해지기도 했다.

아사히 신문의 주요 필진 중 한 명으로 반전, 반 자민당을 주장하는 일본의 대표적인 좌익 성향 정치 논객이기도 하다.

3. 주요 작품 목록

4. 문장

관리들은 오래된 이름을 관청 뒤의 샛강에 마구 집어던졌다.
수백만 개가 넘는 오래된 이름들이 샛강 표면을 가득 메우고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
《사요나라, 갱들이여》
단순하고, 아름답고, 힘찬 시가 있을 것이다. 어지럽고, 볼품없는 시가 있을 것이다.
이상한 것도, 찜찜한 것도, 멍청한 것도, 괴기스러운 것도, 슬픈 것도, 유치한 것도, 우스꽝스런 것도, 읽기 어려울 정도로 바보 같은 것도, 규칙을 지키는 것도, 규칙을 지키지 않는 것도, 규칙을 모르는 것도, 부끄러워하는 것도, 거짓말하는 것도, 잘난 체하는 것도, 그 속에는 있을 것이다.
뛰어난 시 이외의 모든 것이 그 속에 있을 것이다.
《사요나라, 갱들이여》
"우리의 행동에는 확실히 불합리한 꿈이 섞여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무턱대고 배제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 갱에게 필수불가결한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증류수라고는 단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사요나라, 갱들이여》
그날 손님들은 모두 이상한 얼굴로 돌아갔다. 최상급 로스를 사러 온 손님도, 간을 사러 온 손님도, 삼겹살을 사러 온 손님도, 닭 날개를 사러 온 손님도 저울을 볼 때마다 이상한 얼굴이 되어 돌아갔다. 100그램에 20엔짜리 닭 껍질을 사러 온 노파는 정육점 주인에게 슬며시 물어보았다. "오늘은 덤으로 더 주는 거야? 10그램 초과했는데." 51년간 정육점의 외길 인생을 걸어온 주인은 지금까지 저울의 눈금을 보지 않아도 단 1그램도 틀리는 일이 없었다. "이상해." 몇 번씩 다시 해봐도 눈금이 넘어간다. 정육점 주인은 셔터를 내리고 벽보를 붙였다. "오늘로 폐점합니다. 오랜 세월 애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인 백." 주인은 샤워를 하고 온몸에 소금과 마늘과 검은후추의 양념을 골고루 바른 다음, 굉음을 울리는 고기 저미는 기계에 다리부터 집어넣었다. "나의 시대는 끝났다. 아듀! 마츠자카 쇠고기여. 굿바이! 오스트레일리아의 근육질 소들이여, 다스비다냐! 프랑크푸르트 소시지여." 그러나 정육점 주인은 착각 때문에 죽은 것이다. 잘못은 정육점 주인이 아니라 중력에 있었다. 그날은 평소보다 중력이 조금 더 강하게 작용했던 것이다.
《사요나라, 갱들이여》
1970년, 도쿄 구치소에서 유행한 것은 수음이었다.
유행했다, 유행했다, 나도 했다.
1971년, 도쿄 구치소에서 유행한 것은 소설쓰기였다.
유행했다, 유행했다, 누구나 소설쓰기에 열중했다. 물론 나도 그랬다.
그리고 1972년.
독방 수감자들 사이에 열병처럼 야구가 퍼지기 시작했다.
《존 레논 대 화성인》
왜 2000년 이상이나 19세기가 계속되고 있는지, 그리고 왜 20세기나 21세기가 존재하지 않았던 건지, 이것은 우주의 커다란 수수께끼다.
《존 레논 대 화성인》
봇물이 터지듯이 내게 야구 정보가 흘러 들어왔다.
"주의해. 귀를 기울여. 이 세상에서 야구와 관계없는 건 하나도 없어."
나는 귀를 기울이고 눈을 크게 떴다. 아아, 얼마나 나는 무지했던가. 이 세계는 이렇게나 야구로 가득 차 있었는데.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
야구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내) 긴 것으로 (너의) 둥근 것을 치게 해줘"라는 말의 뜻을 설명하는 것은 도저히 무리였다. 나는 냉정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이 시합은 내가 졌습니다. 그렇지만 한 시즌은 130 시합. 우승할 수 있는 선은 75승. 한두 시합 지더라도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내 야구 인생의 빛나는 제1장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
713. 제목, 중견수.
나는 39년이나 센터를 지키고
대략 1만 3천 개의 센터플라이를 잡아왔어
생각해보니
플라이를 잡을 때 이외엔 하늘을 본 적이 없구나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

[1] 요시모토 바나나의 부친[2] 실제로 만화를 좋아해서 잡지나 라디오에서 작품을 추천하고, 마음에 드는 작품은 서평을 써준다. 쇼가쿠칸 만화상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적도 있는데, 이 때 당선된 작품 중 하나가 우라사와 나오키YAWARA![3] 군조 신인 장편 소설상 우수작, 2004년 한국어판 출간[4] 2007년 한국어판 출간[5] 미시마 유키오상 수상, 1995년 한국어판 출간[6] 2016년 한국어판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