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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25 06:25:50

다이코쿠야 코다유

1. 개요2. 생애3. 여담

1. 개요

이름 [ruby(大黒屋光太夫, ruby=だいこくや こうだゆう)]
출생 1751년
사망 1828년 (향년 77세)

에도 시대 후기에 활동한 일본의 탐험가.

2. 생애

1751년에 태어난 이세국 와카마츠[1] 출신 상인이었다. 1783년에 상선인 신쇼마루(神昌丸)호를 타고 에도로 장사를 하러 갔다가 풍랑 때문에 당시 러시아령이던 알류산 열도의 암치트카 섬[2]까지 표류했다. 거기서 구조된 후에는 다른 배에서 표류된 러시아 선원과 함께 배를 구한 뒤, 1789년에 캄차카 반도를 거쳐 러시아 본토에 도착해 이르쿠츠크에 머물렀다.

1791년에 러시아 제국군 장교였던 키릴 락스만[3]과 키릴의 아들 아담 락스만의 주선으로 예카테리나 2세를 알현해 일본 귀국을 허락받았다. 락스만은 그를 일본에 데려다주는 김에 일본과의 통상 허가를 추진했으나, 외국과의 교류를 막부에서 제한했기 때문에 일본과의 통상 및 수교는 훗날로 미뤄졌다.[4]

한편 표류 당시 신쇼마루호에 탄 인원은 원래 17명이었으나 1명은 표류 중에 죽었고 11명은 러시아에서 사망, 1명은 귀국 절차를 밟던 중에 병사, 2명은 정교회로 개종해서 러시아에 남았기 때문에[5] 코다유 외 2명만 일본에 귀국할 수 있었다.
다이코쿠야 코다유 일행의 이동 기록
와카마츠➝(에도로 항해 중 표류)➝암치트카➝캄차카➝오호츠크➝이르쿠츠크➝상트페테르부르크➝마츠마에➝에도

귀국한 코다유 일행은 쇼군 도쿠가와 이에나리를 알현한 뒤 막부의 조사를 거쳐 풀려났다.[6] 이후 그는 에도에 정착했으며 1828년에 사망했다.

3. 여담


[1]미에현 스즈카시[2] 현대에는 미국령이다.[3] 스웨덴계 러시아인이며 본명은 에릭 락스만.[4] 여담으로 코다유 귀국 사건이 일본과 러시아의 첫 공식 접촉이었는데, 코다유 일행을 일본에 돌려 보내려면 막부에 연락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5] 당시 일본에선 기독교가 불법이었다.[6] 이 때 막부에 보고한 내용을 바탕으로, 막부의 관리이자 학자인 카츠라가와 호슈가 북사문략(北槎聞略)과 표민어람지기(漂民御覽之記)로 기록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