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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7 02:43:24

다무라 히토시

다무라 히토시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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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우승 엠블럼 V5.svg
NPB 일본시리즈
우승 반지
2011


파일: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로고.svg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c7bc69 우승 반지}}}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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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타무라히토시.jpg
다무라 히토시
多村仁志 | Hitoshi Tamura
본명 다무라 히토시 (多村仁)
생년월일 1977년 3월 28일 ([age(1977-03-28)]세)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출신지 가나가와현 아츠기시
출신학교 요코하마 고등학교 (요코하마)
신체 180cm, 80kg
포지션 외야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4년 드래프트 1위 (요코하마)
소속팀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1995~2006)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07~2012)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2013~2015)
주니치 드래곤즈 (2016)

1. 개요2. 선수 경력3. 플레이 스타일4. 여담5. 부상 경력
5.1. 학창 시절5.2. 프로 입단 후5.3. 2003년5.4. 2004년5.5. 2005년5.6. 2006년5.7. 2007년5.8. 2008년5.9. 2009년5.10. 2010년5.11. 2011년5.12. 2012년5.13. 2013년 이후
6. 기타 에피소드7. 시즌별 1군 출장 경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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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직 일본 프로야구 선수.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도 출전하여 일본의 우승에 기여했다.

2. 선수 경력

2006년 WBC 준결승전에서 한국팀을 울렸던 선수 중 한 명. 선발 투수 우에하라 고지의 쾌투가 한국팀 타자들을 잠재웠다면, 타선에서는 후쿠도메 고스케의 선제 2점 홈런에 이어 다무라 또한 배영수를 상대로 홈런을 쳐내는 등의 활약으로 한국에 통한의 패배를 안겨줬다. 쿠바와의 결승전에서는 다소 부진했으나 밀어내기와 야수선택으로 2타점을 올렸다. 시즌 종료 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 테라하라 하야토와 1:1 트레이드 이적. 왕정치 감독 왈 "전경기 출장을 바란다." 그리하여 2007년도 전경기 출장은 실패했으나, 132경기 출장을 기록했다.

2009년 시즌은 초반 이후 자잘한 부상은 있었지만 아예 부상으로 말소당한적이 없어서 혹시 바뀐 등록명 덕분에 부상을 안 당하는 것인가! 라는 얘기가 나왔지만 결국 잘나가다 포스트 시즌 들어와서 요통으로 시즌아웃되었다.

2010년 시즌은 프로 16년만에 처음으로 부상없이 시즌을 마감했다. 144경기중 140경기 출장. 또한 시즌 타율도 .324를 기록. 이 역시 그에겐 커리어 하이로 팀의 7년만의 퍼리그 우승에 중심타자로써 크게 공헌했다. 커리어 내내 유일한 타이틀인 베스트나인도 수상했다. 여담으로 이 해 후쿠오카 돔 홈 경기에서 다무라 히토시가 타석에 서면 BGM으로 현아의 Change가 나왔다. #

2011 시즌은 부상 등으로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지만 그해 일본시리즈 3차전에서 점수를 벌리는 투런포로 나름 쏠쏠한 활약을 했다. 2012 시즌이 끝나고 친정팀인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에 트레이드되었다. 2013년에는 주전과 백업을 오가며 12홈런의 그럭저럭 괜찮은 활약을 펼쳤다. 5월 10일에는 중간에 대타로 나왔다가 3타수 3안타 2홈런 5타점에 개인 통산 첫 끝내기 홈런을 달성하고 팀은 7점차를 뒤집어서 승리를 거뒀다.

2014 시즌부터는 쓰쓰고 요시토모 등에 밀려서 대타로만 활약하였고, 오승환의 30번째 세이브 제물이 되기도 하였다. 2015년에는 1군에 4시합에만 올라오는 등 전혀 활약하지 못하고 10월 3일 전력외 통보를 받으며 사실상 방출되었다.

그러다 주니치 드래곤즈와 육성선수로 계약하면서 NPB 역사상 최고령(38세 10개월) 육성선수가 되었다. 등번호 215번. 하지만 2016년 10월 1일 주니치에서 계약 해지를 통보받자 은퇴를 발표했다. 작년에 은퇴를 했었다면 (소프트뱅크에 6년간 있었긴 했지만) 요코하마의 프랜차이즈로서 꽤나 성대한 은퇴식을 받으며 명예롭게 은퇴할 수도 있었겠지만, 주니치의 육성선수 신분으로서 은퇴했기 때문에 쓸쓸한 마무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당시엔 본인이 아직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은퇴를 미룬 것이긴 해도 후에 소프트뱅크 훈련 취재를 갔을 때 소프트뱅크 팬들이 비공식으로 챙겨줬고 요코하마에서도 식당을 빌려서 팬 모임을 가졌다.

은퇴 이후에는 해설자로 변신했다. 각종 방송사에서 객원해설로 불려다니며 WBC나 MLB등 두루두루 다양한 중계를 하는 중. TBS계열 해설에도 합류한 상태인데 TBS는 과거 모기업으로서의 인연도 있는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의 홈경기를 주로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베이스타즈와의 관련성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 외에도 종종 라디오 해설이나 인터넷 방송 등의 해설까지 하면서 DeNA, 소프트뱅크, 메이저 리그의 중계를 해설하고 있다.

2021년에는 코나미 야구 게임 대회인 eBASEBALL 프로야구스피리츠A 리그의 요코하마 팀 감독으로 부임했다.

3. 플레이 스타일

전성기 시절 모습만 보면 진정한 5툴 플레이어.[1] 뛰어난 선구안과, 신장 180cm을 넘지 않는 크지 않은 체구에도 타고난 장타를 만들어내는 타격기술로 많은 홈런과 장타를 양산할수 있는 타격[2][3]을 지녔으며, 수비 면에서도 탁월한 타구판단과 빠른 발, 그리고 강한 어깨를 지닌 진정한 의미의 5툴, 부상만 없었다면 일본 최정상급 외야수였던 선수였다.

문제는 아래에 부상 이력에서 볼 수 있듯, 2010시즌 전까지 단 한 시즌도 풀타임 출장한 적이 없는 일본 야구계의 살아있는 종합병동. 팬들은 이제 안타까움을 넘어서 개그로 승화하는 그의 부상에 익숙해져 있다. 오히려 부상 없이 서 있으면 웬일이냐고 할 정도. 이렇게 부상이 잦아 풀타임 출장이 없다시피 한 탓에 골든글러브 경력은 없다.

그래서 일본 언론이 그에게 붙인 별명은 (잘 깨진다고 해서)유리 대포. 2ch 등에서의 별명은 스페랑카 다무라. 오죽 심하면 2ch 실황중계판에서 비 오는 날 비 맞고 있는 다무라를 보고 '안 돼 다무라는 비 맞으면 내일 감기 걸려서 못 나올 거야!' 같은 소리도 심심치않게 나온다.

4. 여담

여담으로 한국을 꽤 좋아하는 듯 하다. 빅뱅의 열렬한 팬이며 인스타 해쉬태그에 자주 한글을 쓰며 한국여행도 종종 다니는 듯. 2023년 9월에는 잠실구장에 방문해서 두산과 NC의 경기를 관전했고 2024년 3월에는 MLB 서울시리즈 취재를 위해 방한했다.

요코하마에서 전력외 통보를 받았을 때 한국 구단들에 테스트 요청도 했었다고 한다.

참고로 국가대표 우승, 일본시리즈 우승, 2군 일본시리즈 우승[4], 1군 경기 출장, 2군 경기 출장, 육성선수 계약을 모두 경험한 선수라고 한다. 일본에서 저 경험을 모두 해 본 선수는 이 선수가 유일하다.

자주 부상을 당하는 탓에, 게임에서마저 이런 모습이 반영되어 코나미의 야구게임인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 시리즈나, 프로야구스피리츠 시리즈에서 항상 "부상당하기 쉬움 1"(내지는 2)이라는 특능이라 하기 뭐한 특능을, 파워프로군 포켓 시리즈에서도 부상△ 특능을 가지고 있다.

5. 부상 경력

물론 이하의 경력은 좀 과장된 감이 있어서, 유리몸 끼가 있는 건 맞는데, 독보적인 수준은 아니다. 애초에 선수들 컨디션이 안좋다거나 가끔씩 감기몸살에 걸린다거나 해서 스타팅에서 빠지는 경우는 흔한데, 이걸 매번 기록하고 모아놓으니 많아 보이는 것. 몸이 그렇게 약하면 프로통산 1342경기 4500타석 넘게 출장할 수가 없다. 그러나 약체팀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의 몇 안되는 희망으로 40홈런을 쳤을 정도로 나오면 활약이 대단했을 뿐더러, "포스터 촬영 중 점프하다 부상", "악수회로 인한 손 염증 부상"[5], "팬사인회를 하다 어깨 부상"같은 다소 황당한 부상 사유들도 있었다보니 웃음거리가 되었다. 이런 캐릭터성이 프로야구 게임에서까지 반영되고 한국에서까지 이런 문서가 생길 정도로 그의 부상이 인터넷에서 일종의 밈이 되다 보니 다소 과장이 된 것.

5.1. 학창 시절

5.2. 프로 입단 후

5.3. 2003년

5.4. 2004년

5.5. 2005년

5.6. 2006년

5.7. 2007년

5.8. 2008년

5.9. 2009년

5.10. 2010년

5.11. 2011년

5.12. 2012년

5.13. 2013년 이후

6. 기타 에피소드

7. 시즌별 1군 출장 경기수



[1] 본인은 패션 센스까지 합쳐 6툴 플레이어라고 주장하기도 했었다. 팬클럽 이름도 6TOOLS 였다.[2] 2004시즌에는 3할 타율에 40홈런을 기록했는데, 이는 요코하마 소속의 일본인 선수로서는 최초의 40홈런 기록이었다. 그 후 2008년 무라타 슈이치가 46홈런으로 홈런왕에 올랐고, 2016년 츠츠고 요시토모가 일본인 선수로서는 구단 사상 세 번째로, 좌타자로서는 구단 최초로 40홈런을 친다.[3] 참고로 최초로 요코하마에서 40홈런 이상을 기록한 선수가 타이론 우즈이다.[4] 일본야구는 2군도 따로 일본시리즈를 치른다.[5] 나중에 마쓰자카 다이스케가 일본에 복귀한 뒤 비슷한 사유로 어깨부상을 발견해 장기 결장한다.[6]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의 해체와 관련해 프로야구의 12구단 체제가 축소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자, 이에 반대하던 후루타 아츠야 선수회장의 주도로 이루어진 파업. 당시 파업에 참여한 각 팀 선수들은 경기를 치르지 않는 대신 악수회나 팬 사인회 등을 통해 여론전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