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21:37:02

다나오스의 딸들


1. 개요

그리스의 소국들 중 하나인 아르고스의 국왕 다나오스 슬하의 50명의 딸들로, '다나이데스'라고도 한다.

2. 상세 내용

본래 다나오스는 이집트의 전설적인 왕 벨로스[1]와 하신(河神) 네일로스의 딸 안키노에[2]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아이귑토스와 형제지간이다. 아르고스에서 암소로 변해 이집트로 건너온 이오의 후손이므로, 아르고스는 다나오스의 고향이기도 한 곳이다. 벨로스는 자식들인 다나오스와 아이귑토스에게 각각 리비아아라비아를 물려주었다. 그런데 아이귑토스가 검은 발의 멜람포데스 족이 사는 나라를 정복하고 그곳에 자신의 이름을 딴 이집트라는 이름을 붙인 뒤 리비아의 왕 다나오스에게 자신의 아들 50명과 다나오스의 딸들 50명을 결혼시키자고 제안하자,[3] 이에 위협을 느낀 다나오스는 아테나 여신의 도움을 받아 50개의 노로 젓는 커다란 배를 만들어 딸들과 함께 아르고스로 도망쳤다.

이후 아이귑토스의 아들들이 아르고스로 찾아와 계속해서 결혼을 요구하자, 다나오스는 결국 이를 수락했지만 여전히 이 결혼을 위협으로 느꼈고, 마침내 딸들에게 단검을 주어 첫날밤에 신랑을 칼로 찔러 죽이라고 지시했다. 다나오스의 딸들은 모두 아버지의 말대로 남편을 살해했지만 단 1명, 장녀 휘페름네스트라는 남편인 륀케우스를 죽이지 않았다. 다나오스의 딸 중 아뮈모네[4] 혹은 (베)브리케도 남편들을 살려줬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안 다나오스는 륀케우스를 사위로 인정하고 화해하려 했지만, 형제를 모두 잃은 것에 격분한 륀케우스는 복수의 일념으로 다나오스를 죽이고 아르고스의 왕위를 차지했으며, 자신의 형제들을 살해한 다나오스의 딸 49명[또는]도 모두 죽여버렸다. 아들들의 죽음을 안 아이귑토스는 그리스의 아로에에서 사망한다.

이후 휘페름네스트라와 륀케우스의 사이에서 아바스가 태어나는데, 이 아바스의 아들이 아크리시오스이며, 이 아크리시오스가 바로 아르고스의 왕으로서 다나에의 아버지이자 페르세우스의 외할아버지가 된다.

한편, 49명[또는]의 딸들은 저승의 재판에서 첫날밤에 남편들을 살해한 죄목으로 타르타로스로 떨어졌고, 그곳에서 영원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하는 벌을 받았다. 그 전에 이들은 각자의 신랑들의 머리를 레르나에 묻고 몸은 도시 앞에서 장사지냈다.[7]

혹은 제우스의 명을 받은 헤르메스와 아테나에 의해 죄를 정화받고 육상경기를 통해 각자 남편들을 새로 맞이했다고도 한다.

해석해 보자면 신들의 황제인 제우스에게는 용서를 받았지만 명계의 황제인 하데스에게는 용서를 받지 못했다고 판단된다.[8]

2.1. 홍은영의 그리스 로마 신화

파일:다나이데스.jpg
홍은영의 그리스 로마 신화
홍은영의 그리스 로마 신화 4권에서 저승의 타르타로스에 갇힌 죄인들을 소개할 때 잠깜 등장하고 6권에서 자세히 등장한다. 백부 아이귑토스의 욕심으로 다스리던 나라인 리비아를 빼앗길 위기에 처한[9] 아버지 다나오스가 자신들을 데리고 아르고스로 이주하여 그곳의 왕이 되면서, 다시 평화로운 공주의 삶을 누리나 했지만 사촌인 아이귑토스의 50명의 아들들이 아르고스까지 찾아와 이제 그만 지난날의 다툼을 잊고 화해하자며 자신들과의 혼인을 요구한다. 하지만 여전히 원한을 품고 있던 다나오스는 우리를 추방할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자신의 딸들을 달라는 거냐며 무슨 음모가 있는 게 분명하다고 그 말을 믿지 않고 화해를 받아들이며,[10] 결혼식을 위한 잔치를 베푸는 척하면서[11] 딸들에게 아이귑토스의 아들들이 살아있는 한 우리에게 평화는 없다며 첫날밤에 단도로 남편을 죽이라고 명령하자 딸들도 알겠다고 대답한다.

다른 49명의 딸들은 모두 아버지의 명에 충실히 따라 남편을 죽였지만 장녀 휘페름네스트라만은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을 때까지 자신의 처녀성을 지켜주겠다고 맹세한 남편 륀케우스에 대한 고마움으로, 그에게 아버지 다나오스의 계획에 대한 자초지종을 얘기하며 성 밖으로 나가 아르고스의 언덕에 숨어있다가 안전해져서 다시 돌아올 수 있게 되면 자신이 횃불을 들어 알려주겠다며 륀케우스를 무사히 도망치게 한다. 결국 휘페름네스트라도 이 사실을 알게 된 다나오스에 의해 감옥에 들어가고 곧 재판을 받게 되는데 "네 남편을 어디로 빼돌렸냐, 왜 명령대로 륀케우스를 죽이지 않았냐, 설마 그를 사랑하게 되었느냐"고 묻는 다나오스에게 차마 그를 죽일 수 없었다고 인정한다. 다나오스는 다른 자매들을 배신하고 멋대로 륀케우스를 살려주다니 용서할 수 없다고 단언하지만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나타나 결혼을 통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졌으니, 남편에 대한 사랑으로 아버지의 명마저 거역한 휘페름네스트라를 용서하라고 한다. 결국 휘페름네스트라는 무죄로 석방되고 자신을 구해준 아프로디테에 대한 보답으로 그녀의 신상을 바친다.

나중에 다나오스가 휘페름네스트라와 륀케우스의 결혼을 인정하면서 휘페름네스트라가 약속대로 횃불을 들어올려 이제 안전하다는 것을 안 륀케우스와 재결합했다는 전승, 륀케우스가 자신을 살려준 휘페름네스트라를 제외하고 자신의 형제들을 죽인 다나오스와 그의 49명의 딸들을 죽였다는 전승이 모두 나왔다. 또한 휘페름네스트라와 륀케우스의 외아들 아바스와 그의 아내인 아글라이아, 아바스의 자녀들인 아크리시오스, 프로이토스, 이도메네[12]도 등장한다.

큰언니와 달리 남편들을 죽인 다나오스의 나머지 49명의 딸들은 제우스의 명령으로, 아테나헤르메스가 죄를 정화시켜 주지만 어째서인지 타르타로스에서 밑 빠진 독에 영원히 물을 붓는 벌을 받는다.[13] 또한 휘페름네스트라가 륀케우스와 재결합한 뒤 다나오스가 다른 딸들도 재혼시키려 했지만 아무도 구혼자로 나서지 않자, 육상경기를 벌여 우승자에게 신랑이 신부한테 주는 선물도 받지 않고 딸들을 아내로 주기로 한 일화도 나온다.
파일:휘페름네스트라.jpg
파일:아뮈모네.jpg
휘페름네스트라 아뮈모네
무려 50명이나 되다 보니 하나하나를 전부 다 묘사하지는 않고 자매들 중 가장 비중이 높은 장녀 휘페름네스트라, 포세이돈의 사랑을 받아 물이 말라가던 아르고스에서 샘이 터지게 하여 중요한 역할을 한 아뮈모네만 자세히 나온다.


[1] 그리스 신화에 등장한 이집트의 왕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벨로스는 제우스와 이오의 아들이자 이집트의 왕인 에파포스의 딸 리뷔에가 포세이돈의 씨를 받아 낳은 아들이다. 페니키아의 왕 아게노르 역시 마찬가지이며, 이 아게노르가 카드모스와 에우로페의 아버지이다.[2] 에파포스의 아내 멤피스와는 자매지간이다.[3] 혹은 그가 다스리던 리비아마저 내놓으라고 요구했다고 하기도 한다.[4] 포세이돈과의 사이에서 낳은 나우플리오스가 훗날 다나에와 페르세우스를 발견한 딕튀스와 폴뤼덱테스 형제, 트로이 전쟁에 참여한 팔라메데스 등의 선조가 된다.[또는] 48명[또는] [7] '레르나'라는 지명을 보면 짐작하겠지만, 아내들이 남편들을 집단학살한 것에 분노한 가정의 여신 헤라가 히드라(티폰에키드나 사이에서 태어난 머리 9개 달린 독사)를 레르나의 샘, 즉 포세이돈이 아뮈모네와 연애하고 나우플리오스를 낳은 대가로 만들어 준 샘으로 보내 살게 해 주변 환경을 오염시키고 레르나에 찾아오는 사람들과 동물들을 잡아먹게 했다고 한다. 정작 나중에 헤라는 헤라클레스의 과업으로 지가 키운 히드라를 죽이는 과제를 내준다. 그것도 에우리스테우스로 하여금 전달해 준 것이다. 이는 헤라클레스를 무서운 괴물들과 한 판 붙게 함으로써 헤라클레스를 죽일려는 헤라의 흉계였다.[8] 아버지의 명령이라는 참작의 여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용서하지 못한 것은 남편들을 비참하게 죽인 것 때문일 수도 있다.[9] 아라비아를 다스리던 아이귑토스가 리비아를 다스리던 다나오스를 찾아와, 자신의 아들들에게 물려줄 땅이 부족하니 다나오스의 왕국도 자신에게 넘기라고 억지를 부린다. 당연히 다나오스는 나에게도 딸들이 있다고 항의한다.[10] 그 모습에 장녀 휘페름네스트라가 무슨 생각으로 화해를 하시려고 하냐고 아버지의 결정에 의문을 품는다.[11] 장녀 휘페름네스트라는 륀케우스와 결혼시키고 다른 딸 고르고포네는 프로테우스와 결혼시켰는데, 륀케우스와 프로테우스 형제의 어머니인 아르귀피아가 왕가 출신으로 더 고귀한 혈통이었기 때문.[12] 예언자 멜람푸스의 어머니.[13] 다른 신들에게는 용서받았을지 몰라도 하데스에게는 용서받지 못했다는 전승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