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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27 04:09:05

남산2호터널


파일:서울특별시 휘장_White.svg 남산터널
남산1호터널 남산2호터널 남산3호터널
<colbgcolor=#ae1932><colcolor=#fff> 남산2호터널
南山 二號 터널
Namsan 2nd Tunnel
파일:external/www.lafent.com/em200109007.jpg
남산2호터널의 모습

파일:external/image.edaily.co.kr/PS12072000139.jpg

1. 개요2. 역사3.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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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남산2호터널은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동중구 장충동을 잇는 1.6㎞ 길이의 터널이다. 녹사평대로, 장충단로와 접해 있으며, 길이름은 녹사평대로58길이다.

3개 터널 중 통행량이 가장 적기 때문에 개통 때부터 지금까지 쭈욱 왕복 2차로로 유지되고 있다. 부산의 제1만덕터널과 비슷한 관계.

2. 역사

남산1호터널과 같은 목적으로 계획돼 비슷한 시기에 착공 및 개통한 터널로 1호터널보다 한 달 정도 뒤인 1969년 4월 21일에 착공, 1970년 12월 4일에 개통했다. 당시 기술 수준이 높지 않았던터라 1호터널과 마찬가지로 이 2호터널도 부실공사로 인한 하자가 많았다. 결국 개통 6년만인 1976년 9월 터널을 폐쇄하고 대대적인 보수공사에 들어가 1977년 3월 11일에 재개통했다.

그나마 2호터널은 통행량이 적었기에 며칠씩 터널을 폐쇄하고 보수공사를 하는 것으로 유지보수가 가능했지만, 애초에 부실하게 지어진[1] 터널이다보니 20년이 넘어가면서 문제가 많아졌다. 1996년에 1호터널처럼 재시공하는 계획이 나왔으나, 바로 다음해에 1997년 외환 위기가 터지면서 몇 해 미뤄졌고, 1999년 2월 21일 터널을 완전 폐쇄하고 재시공 공사를 착공, 2001년 5월 31일에 재개통했다.

통행량에 대해서는 상당히 논란이 많다. 도심으로 통하지 않고 동대문쪽으로 통하는데다 터널 남쪽은 미군 주둔지가 떡 하니 버티고 있어서 수요가 대단히 낮다. 거기다 녹사평대로가 터널 진입전에 3호터널과 갈라지고, 3호터널은 도심으로 통하다보니 이래저래 수요를 다른 도로로 많이 뺏긴다. 이 때문에 재시공 하기 전에는 터널을 폐쇄하고 물류창고로 쓰자는 연구결과도 나왔을 정도다. 그래도 아예 텅텅 빈 터널은 아니다보니 계속해서 사용중이다.

원래는 1호 / 3호터널과 같이 통행료를 받았지만, 2호터널만 1990년 9월 1일 통행료 징수기간이 끝나면서 폐지되었다. 요금소는 장충동 방면 입구 앞에 있었지만 철거되었다.

터널 입구가 조선시대 성문 모양을 본떠서 디자인되었기 때문에 미관이 좋은 편이었으나, 재시공 과정에서 모두 철거하고 지금의 밋밋한 디자인이 되었다.

2019년 말에 터널내 저압나트륨 등기구가 LED로 교체되었다.

3. 특징

남산 터널 중에서는 가장 길다.[2] 터널 남단 진입로는 녹사평대로를 사용하고 있다. 강남구서초구에서 흥인지문, 왕산로 방향으로 이동할 때 유용하다. 남산터널 중에서 유일하게 혼잡통행료를 징수하지 않는다. 제한속도가 40㎞/h이지만, 대부분의 차량들은 제한속도를 초과한다. 제한속도를 지키는 차량이 있으면 유령정체로 느껴질 정도. 하지만 2019년 10월부터 양방향 1.7㎞ 구간에 걸쳐 구간단속 카메라를 설치했고 계도 기간을 거쳐서 2020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단속했다.[3]

이 곳을 경유하는 노선버스는 현재 없지만, 아주 간혹 도심 교통통제시 몇몇 노선이 이곳으로 우회하는 일은 있다. 예전에는 명진여객동대문운동장-센트럴시티-오산 시외버스가 2000년대 초에 잠깐 운행한 적이 있었다.

남산2호터널은 당시 대통령이였던 박정희가 평시에는 일반 터널로 사용하다가 북한의 공격 혹은 간첩침투시 대비하기 위한 대피소로 구상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남산1호터널도 동일한 용도로 구상됐다.
[1] 김현옥 당시 서울특별시장은 여기 외에도 '빨리빨리' 짓는 속도전을 강조했기 때문에 부실 공사를 많이 했다. 국가원수 겸 본인의 군 상관이었던 박정희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결국 이것이 와우 시민아파트 붕괴사고로 곪아터짐으로써 사임하게 되었다.[2] 1호 1.5㎞ 3호 1.2㎞ 개통 이후 80년대 초반까지는 남산2호터널이 남산1호터널, 남산3호터널과 함께 국내 3대 최장터널의 타이틀을 지니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장대터널들이 흔치 않았던 시절이다. 더군다나 이 때는 장대터널들이 서울에만 있었다. 부산도 1980년부터에서야 1㎞ 이상 터널이 생기기 시작했다.[3] 해당 구간은 생각보다 길어서 과속하기 쉽다. 운전자가 잠깐 한눈을 팔아 전방 추돌 사고가 많았으나 구간 단속에 따른 서행으로 인해 많이 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