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7-09 13:17:03

낙파


파일:나무위키+유도.png  
낙파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이낙연 前 민주당 대표를 지지하는 사람들에 대한 내용은 친낙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 개요2. 지명으로서 낙파3. 통화로서의 낙파

1. 개요

낙파(ናቕፋ (티그리냐어), Nakfa)는 에리트레아의 통화이자 지명이다. 어원 때문에 동음이의어라고 하기에는 다소 애매한 면이 있다.

2. 지명으로서 낙파

북홍해주(Northern Red Sea State)에 위치한 주도(치고는 다소 작은 마을이다.). 에리트레아 독립전쟁[1]때 거점지로 사용되느라 건물들이 상당히 파괴되고 복구를 못해 매우 휑한 상태이다. 기껏해야 모스크 몇 채에 집들만 간신히 남아있는 폐허.

하지만 독립의 요람으로서 인정되어 에리트레아의 독립 후, 통화명으로도 등록되었다. 굳이 낙파를 거점으로 삼은 것은 주요도시인 아스마라(Asmara) 및 맛사와(Massawa)와 가깝고, 두 도시에 접근하기 쉬운 지형적 특성 때문이다.

3. 통화로서의 낙파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에리트레아 낙파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 1961년부터 1991년까지 이어진 에티오피아의 내전. 독립 전, 그보다 한층 더 독립 전에는 이탈리아에 의해 에티오피아와 한 묶음으로 지배하에 있었다. 하지만 이탈리아가 철수한 후, 에리트레아(티그리냐인이 다수)는 에티오피아(암하라인이 주도하는 국가)와 민족 구성도 다른데다, 오랫동안 에티오피아와 별개의 나라였던 역사가 길어서 독립노선으로 움직이려 했으나 하일레 셀라시에에티오피아 제국멩기스투에티오피아 공산정권의 탄압을 받아 저지되었고, 1993년 대국민투표가 이루어질때까지 계속 에티오피아의 한 주로 남아있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