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fecb03><colcolor=#000000> 일본제철 사카이 블레이저스 회장 | |
나카가이치 유이치 [ruby(中垣内, ruby=なかがいち)] [ruby(祐一, ruby=ゆういち)]|Yuichi Nakagaichi | |
출생 | 1967년 11월 2일 ([age(1967-11-02)]세) |
후쿠이현 후쿠이시 |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94cm |
점프 높이 | 스파이크 346cm |
학력 | 쓰쿠바대학 (학사) |
직업 | 배구 선수 (아웃사이드 히터 / 은퇴) 배구 감독 배구 행정가 |
국가대표 | 일본 배구 국가대표팀 (1989~1998) |
소속 구단 | 신일본제철 (1990~2004) |
감독 | 일본제철 사카이 블레이저스 (2005~2009) 일본 배구 국가대표팀 (2017~2021) |
기타 | 일본제철 사카이 블레이저스 (2021~ /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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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배구 선수 출신 감독.2006년 한일 프로배구 V리그 톱매치 출전을 위해 사카이 블레이저스 감독으로 방한한 나카가이치 유이치(왼쪽)가 당시 현대캐피탈을 이끈 김호철 감독과 기자 회견에서 악수하던 모습 |
2. 선수 경력
후쿠이에서 태어나 1990년 신일본제철에 입단한 뒤 신일본제철과 일본 대표팀에서 활약하며 한국의 배구팬들에게 수려한 외모와 더불어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선수였다. 194cm의 키로 뛰어난 탄력과 단단한 수비,공격력으로 일본 대표팀의 에이스 역할을 하면서 당시 양국의 주포로 뛰었던 하종화와는 체격 조건, 플레이 스타일 등 여러모로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었고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 일본 대표팀의 주포로 맹위를 떨치며 6위 입상에 기여하는 등 탁월한 활약을 펼쳤다.
90년대 한일전의 주역이었다. 잘 생긴 외모에 매너도 좋아서 한국에서 열리는 한일전에서조차 관중석에 한글로 '나까가이치, 사랑해요'라고 적힌 응원피켓을 든 한국 여성팬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한국의 대표 세터였던 신영철과 은퇴 후에 인터뷰를 가지기도 했는데 신영철은 '당신의 컨디션이 그날 한일전의 결과나 다름없었다'라고 회상할 정도로 당시 일본 대표팀에서 나카가이치의 비중은 절대적이었다. 체력이 떨어지기 전 1~3세트까지는 대부분 한국 블로커들의 위에서 스파이크를 때릴 정도로 점프력이 좋았고 스피드도 빨라서 막아내기가 정말 힘들었던 선수.[1]
3. 은퇴 이후
선수 생활을 마친 뒤 2004년 사카이 블레이저스 감독을 맡아 두 시즌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하였으며 2006년 한일 V-리그 탑매치에서 블레이저스 팀을 이끌고 참여하기도 했었다. 일본 대표팀 코치를 맡고 있던 2012년 한 주간지에서 불륜 의혹을 보도한 이후 3년 동안 배구계를 떠나기도 했다. 2016년 4월부터 사카이 배구단 부장으로 복귀했고, 2016년 10월 25일 일본 남자 배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단 실제 감독으로 선임된 뒤의 행보를 보면 전술적인 것과 작전 지휘는 수석코치인 필립 블랑 코치가 한 것으로 보인다.[2] 심지어 경기가 끝난 후 인터뷰도 블랑에게 물어볼 정도. 일견 클린스만-뢰브의 관계로 보인다.[3] 이는 감독 선임 후인 2016년 11월 사카이 블레이저스 신인 선수 미팅을 위해 히로시마로 이동하다가 교통사고후 도주했다는 혐의 때문이다. 이때문에 블랑이 잠시 감독 대행을 맡기도 했다.
2021년 9월을 끝으로 일본 국대 감독직에서 퇴임했다. 2020 도쿄 올림픽에서 29년만의 올림픽 8강 진출을 이뤄냈고, 아시아 배구 선수권 대회에서는 이란에 패해 준우승에 그쳤지만 세계 배구 선수권 대회 출전권을 획득하는 등 실적을 남겼다. 그리고 신예 유망주들의 발굴에도 성공하며 향후 일본 국대의 미래를 밝게 하였다.
[1] 다만 이는 나카가이치에 대한 칭찬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당시 일본 국대의 약점이기도 했다. 하종화가 막혀도 베테랑 장윤창이나 박희상, 마낙길 등 대안이 있었던 당시 한국 국대와 달리 당시 일본 국대는 나카가이치를 받치는 제2공격수가 약했다. 당시 나카가이치의 대각은 산토리의 에이스 오기노 마사지가 맡았는데 발이 느려서 그렇게 위력적인 공격수가 아니었고, 아오야마 시게루, 사사키 타이이치 등은 수비에 강점을 가진 올라운더형 선수지 공격력으로 큰 위협은 되지 못했다.[2] 前 프랑스 배구 국가대표팀 감독. 이후 폴란드 수석코치로 2014년 세계선수권 우승을 일궜고 일본 대표팀 코치를 맡으면서 폴란드의 강호 PGE Skra Bełchatów 감독도 겸임했다. 현역 시절에는 1987년 유럽선수권 MVP도 수상했다.[3] 클린스만은 주로 팀 운영에만 신경썼고 작전 전술은 뢰브가 거의 다 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