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9-15 13:21:09

나오야 타카시

나오야 타카시
[ruby(直谷, ruby=なおや)]たかし |Takashi Naoya
파일:나오야 타카시 감독.jpg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출생 불명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직업 애니메이션 감독, 애니메이션 연출가, 애니메이터
소속 프리랜서
링크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1. 개요2. 경력3. 특징 및 비판4. 인맥5. 작품
5.1. 감독5.2. 참여작
6. 연출 샘플

[clearfix]

1. 개요

일본의 남성 애니메이터, 애니메이션 감독, 애니메이션 연출가.

2. 경력

2008년부터 펭귄 소녀의 콘티와 디자인을 맡으며 애니메이션 업계에 데뷔했으며, 2009년부터 미나미가: 오카에리의 원화를 담당하면서 본격적으로 애니메이터 경력을 시작한다. 작화 실력에 두각을 보이며 주로 J.C.STAFF 작품에 참가하는 비율이 높았는데,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 Ⅱ, 하느님의 메모장, 꿈을 먹는 메리, 작안의 샤나 Ⅲ-FINAL-, 사쿠라장의 애완 그녀, 어떤 과학의 초전자포 S 등 여러 J.C.STAFF 작품에 참가하여 작화 질을 끌어올렸다. 이렇게 작화 활동을 하면서도 2010년부터는 ABOUT17이라는 영상 제작 크리에이터 유닛을 만들어 제작 활동도 시작했다.

2010년대 중반부터는 주로 훗즈 엔터테인먼트, 동화공방으로 활동 제작사를 옮겨가 연출 활동과 감독 활동을 거의 동시에 시작한다. 먼저 2016년에는 럭 앤 로직의 부감독을 맡아 연출 활동을 지휘했으며, 같은 해 도검난무 하나마루에서는 장편 감독으로 데뷔했고, 2018년부터는 3D 그녀 리얼 걸, 싸움×사랑, 소꿉친구가 절대로 지지 않는 러브 코미디, 금장의 벨메이유 ~벼랑 끝 마술사는 최강의 재액과 마법세계를 헤쳐나간다~등 점차 감독 활동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3. 특징 및 비판

원화, 작화감독 참여작들은 평가가 좋으나 감독작들에 대한 평가가 매우 나쁘다. 연출, 작화 퀄리티 및 제작 현장 관리 등 총체적으로 문제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훗즈 엔터테인먼트 감독작은 회사 자체의 문제도 있었지만 매번 작화 붕괴를 지적받으며 흥행몰이에 실패했고, 동화공방에서 감독한 애니메이션도 높은 퀄리티를 뽑아내는 회사 인지도와 정반대로 퀄리티가 낮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나왔다.[1] 게다가 소꿉친구가 절대로 지지 않는 러브 코미디는 저퀄리티 작화와 웃음벨 연출에 더불어 1화부터 하청사에 원화를 뿌리는 등 스케줄 관리도 되고 있지 않다는 반증도 나와 여러모로 감독 역량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왔다.[2] 사실 감독을 맡기 전에도 그가 연출한 에피소드는 호평이 없거나 혹평을 받는 등 연출 실력이 부족한 모습을 많이 보여왔기에 결국 전형적인 작화는 잘 하지만 연출 및 감독 능력이 안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22년 금장의 벨메이유 ~벼랑 끝 마술사는 최강의 재액과 마법세계를 헤쳐나간다~는 전체적으로 퀄리티가 준수하다는 평가를 받아 그동안의 혹평을 어느 정도 만회했으며, 실은 나, 최강이었다?도 무난하게 만들면서 지뢰 감독이라는 오명은 벗어냈다. 결혼반지 이야기도 원작대로 잘 만들면서 호평을 받아 2기까지 결정되었다. 감독직을 계속 맡으면서 어느 정도 현장 관리에 대한 감이 잡힌 것으로 보인다. 2023년부터는 기본적인 퀄리티는 보증하는 감독이라 할 수 있다.

4. 인맥

자주 같이 활동하는 연출가로는 니시타 마사요시, 아사미 마츠오(浅見松雄)가 있으며, 프로듀서로는 우에다 신야(植田慎也), 세키네 다이키(関根大起)가 있다.

5. 작품

5.1. 감독

5.2. 참여작

6. 연출 샘플

도우미 여우 센코 씨 OP
콘티, 연출: 나오야 타카시
소꿉친구가 절대로 지지 않는 러브 코미디 OP / 콘티, 연출: 나오야 타카시
작화감독: 하시구치 하야토(橋口隼人), 오구라 히로유키(小倉寛之)
총 작화감독: 쿠마가이 카츠히로, 소가 아츠시(曾我篤史)


[1] 그나마 도검난무 하나마루는 작화가 괜찮은 편이었지만 이건 이 감독보다는 제작진행으로 참가한 우메하라 쇼타의 공이 더 크다.[2] 실제로 이 작품은 원작자가 3년이 지난 뒤 대놓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