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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18 17:00:21

김혁철

파일:김혁철.jpg

1. 개요2. 생애3. 국무위원회 소속 대미특별대표4. 2019년 숙청설5. 기타

1. 개요

북한외교관정치인. 2019년 현재 국무위원회 소속 대미특별대표이다.

2. 생애

1953년에 평양시 룡성구역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전 캄보디아 북한대사를 지낸 고위 외교관을 지낸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났다. 출신 성분 또한 일반 북한 주민들과는 다른 집안이였을 것으로 보인다. 유복한 유년기를 보내며 평양외국어학원 프랑스어과를 거쳐 평양외국어대학 프랑스어과를 졸업하였다. 졸업 이후 2000년대 초반에 북한 외무성에 입사하여 북한 외무성 내 전략부서인 9국에서 일하며 당시 9국 참사였던 리용호[1]와 일하며 외교적 노하우를 배웠다고 한다. 이후 6자회담 때에는 김계관 제1부상의 연설문을 작성하는 등 라인을 잘 타서 30대에 9국 부국장에 오르며, 2009년에는 외무성 참사직으로 승진한다. 김정은이 집권하고 나서는 2014년말 해외 첫 발령으로 스페인 대사직을 임명받게 된다.

3. 국무위원회 소속 대미특별대표

사실 한국 언론에서 "'김혁철"'이라는 이름은 2019년 1월 말까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냥 가끔 뉴스에 나오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는 북한 사람 이름 중 하나였었다. 김혁철이라는 이름이 언론에 처음 나오게 된 시점은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이며, 당시 북측의 핵실험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무력시위 및 미국과 서방국가들의 대북제재 동참 및 외교관계 재정리 부분에서 김혁철이라는 이름이 등장하게 된다. 2017년 후반 당시 많은 유럽 국가들이 이례적으로 북한 대사를 6차 핵실험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추방하였고, 당시 스페인 북한대사였던 김혁철도 스페인 정부에 의해 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지정당하고 추방당한다. 추방 뒤 김혁철의 이름은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합의됨에 따라 다시 등장한다. 특히 김영철의 방미 수행단 인원으로 새로 얼굴을 비추면서 국무위원회 소속 대미특별대표라는 새로운 직함으로 등장한다. 또한 기존 외무성 인사인 최선희최강일, 그리고 통전부 인사인 김영철이나 김성혜 등을 제치고 스티븐 비건의 새 카운터파트로 알려지게 되며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2019년 북미정상회담이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하고 끝나면서 김혁철의 거취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정은의 위상에 상처를 입은만큼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하는데 김혁철이 그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것. 물론 김혁철이 6자회담 때부터 북한의 핵협상에 관여한 전문가인 데다가 북한의 인력풀상 대체인력이 없다는 걸 감안하면 숙청이나 문책까지는 안 갈거란 전망도 만만찮다.

그러나 이후 김혁철은 존재를 감추었고,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도 이름이 없었다. 일본 언론들은 제2차 북미정상회담의 실패에 대한 이유로 외무성 간부 4명이 처형되었다는 소문이 북한 내에 돌고있다고 보도해 일각에서는 김혁철이 처형된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오는 중. 그러나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그가 김성혜와 함께 혁명화 교육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추측하기도 했다.

2019년 5월 하순경에 김혁철이 외무성으로 복귀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는 국정원도 확인한 바이지만 아직 김혁철이 어떤 보직을 받았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김혁철의 보직에 따라서는 북한이 대미협상을 재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일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대미특별대표가 김명길로 바뀐 걸 보면 다시 대표자리에 오를 일은 아직까지 없는 듯하다.

4. 2019년 숙청설

2019년 5월 31일, 조선일보는 30일자 소식으로 하노이 협상 결렬의 책임을 물어 김혁철이 총살당했다고 보도했다. # 그와 함께 김영철은 숙청, 김여정은 근신 처분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숙청설에 대해 미국 관리들이 '매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조선일보현송월 총살설을 보도한 적이 있었다고 덧붙혔다. 이혜훈 국회 정보위원장은 "김혁철이 숙청될 리가 없지 않겠느냐"며 조선일보 보도에 대해 "너무 믿지 마라, 그럴 가능성보다는 안 그럴 가능성이 많다고 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도 "혹 살아 나타나더라도 저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부인했다.

김혁철이 3월에 처형된 것으로 되어있으나 4월13일에도 목격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관련 기사 2019년 6월 4일, CNN은 김혁철이 살아있다고 단독으로 보도했다. 다만, 구금 상태에서 조사 중이라고 전했다. CNN은 이어 소식통이 조선일보의 보도에 대해 틀렸다고 ("the news was wrong.") 말했다고 덧붙였다.

7월 16일 국정원의 국회정보위 보고에 의하면 김혁철은 생존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2021년 12월 안찬일 박사의 소식통에 의하면 아주 이례적으로 정치범 수용소에서 석방되어 김성혜 신혜영과 함께 복권되었다고 한다. 김성혜 신혜영의 수용소행 또는 농장으로 혁명화는 다른 소스에서도 보도되었는데 하노이 노딜 화풀이성 숙청 후 형식적인 숙청 끝에 복귀한 것으로 보인다. 복권된 이후는 김영철처럼 책임자급도 아니고 그저 위에서 시킨 일을 수행하는 실무자급인데다가 영어 실력이나 업무능력이 아깝기 때문에 살려준 걸로 보인다.

2024년 류현우 전 쿠웨이트 북한 대사대리의 증언에 따르면, 김혁철은 하노이 회담 이후 책임을 물어 탄광에서 6개월간 노동 혁명화를 받았으며 복귀한 뒤 당국제부 산하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 중이라고 한다. 신혜영 또한 처벌은 받지 않았지만 외무성에서 퇴직하고 인민대학습당에서 자료조사처 연구원으로 좌천되었다고 한다.

5. 기타



[1] 김정은 시대에 와서 리용호는 외교부장관급인 외무상에 오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