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섭의 수상 및 영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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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
이름 | 김학섭 |
생년월일 | 1982년 11월 29일 ([age(1982-11-29)]세) |
국적 | 대한민국 |
출신학교 | 전주남중 - 전주고 - 한양대 |
신체 | 182cm, 75kg |
가족 | 아내, 아들 김유찬, 딸 김유빈 |
포지션 | 가드 |
프로입단 | 2006년 드래프트 1 라운드 4 순위 (울산 모비스 피버스) |
소속팀 | 울산 모비스 피버스 (2006~2008) 서울 SK 나이츠 (2008~2009)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2011~2012) |
지도자 | 전주남중학교 코치 (2012~) |
등번호 | 1[1], 3[2], 1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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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 농구선수이며 현재 전주남중학교의 코치이다. 출중한 재능이 있었음에도 지도자의 잘못된 교육방식으로 인해 망가진 비운의 선수.2. 선수 시절
전주고등학교에서 에이스로 이름을 날렸으며, 2001년[4]에는 회장기 대회에서 수상경력도 있을만큼 뛰어난 포텐셜을 갖춘 가드자원으로 평가받았다.하지만 훈련량 부족으로 인해 천재 가드였던 김학섭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고, 벤치신세를 져야 했다. 그래도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대표팀 차출에 이어 2007-08시즌 초반 입대한 양동근의 빈자리를 메우면서 가능성을 보여주긴 했으나, SK로 트레이드 된 이후로는 존재감이 점차 없어졌고, 2011-12시즌을 앞두고 고양 오리온으로 이적해서 크리스 윌리엄스와 4년만에 다시 재회했으며 시즌이 끝나자 은퇴하였다.
고교 시절을 풍미한 가드가 대학 시절의 잘못된 지도 방식으로 인해 선수 인생이 망가져버린 셈.
3. 지도자 시절
2012년에 은퇴한 직후 곧바로 모교인 전주남중 측의 제안을 받고 코치로 부임했다. 부임 당시 본인이 뛰던 시절이랑 똑같던 체육관 시설을 손수 손을 보고 유니폼 디자인도 직접 도맡아서 하는 등 열성적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실제로 학부모들의 평가가 정말 좋다고 한다. # #[1] 신인 시절 모비스, 오리온스 시절[2] 2007-08시즌 모비스 시절[3] SK 시절[4] 1982년생이므로 원래는 2001학번(대학교 신입생)이어야 하나 유급을 한 것으로 보인다.[5] 이 과정도 썩 매끄럽지는 않았던 듯 하다. 가고싶은 학교 대신 고교 동기들과 같이 갈 수 있는 학교를 갔다는데, 이게 과연 100% 자의였을지는... 실제로 당시 전주고 감독이었던 김만진 전 연세대 감독의 이야기에 따르면 하루는 김학섭이 전화로 오열하며 자기를 한양대로 왜 보냈냐고 따졌다는데 별로 할 말이 없었다고... 이 기사를 보면 대충 분위기 짐작이 가능할 듯 하다.[6] 이후 가혹행위가 비디오 카메라에 찍혀서 결국 김춘수는 경질되었고 2012년 7월 별세했다.[7] 고교, 대학에서 계속 같이 뛴 조성민은 꿋꿋하게 버티면서 팀을 이탈하지 않았다. 다만 김학섭의 인터뷰나 다른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구타나 가혹행위를 못 견딘 것이 문제가 아니라 김춘수가 아예 찍어놓고 괴롭히면서 경기에도 출전시키지 않는 등 도저히 사람이 견딜 수 없게 만들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가정형편도 좋지 않아서 버팀목도 없었던 게 더 문제가 되었던 것 같은데, 누가 따로 뒷바라지 해 줄 형편이 되지 못했던 듯 하다.[8] 그래서 1~3학년 때까지 경기 기록이 거의 없었고 여기에 4학년이 됐을 때 십자인대 부상도 겹쳤다. 그나마 다행히 20살 때 만난 부인과 전주고 선배인 전 코미디언 겸 치과의사인 김영삼이 많이 도와준 덕분에 간신히 방황에서 벗어나서 농구부로 복귀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