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가 들어간 국에 대한 내용은 김칫국 문서 참고하십시오.
1. 개요
2010년대부터 수능에 대한 내공이 쌓이고 난이도도 좀 쉬워져 매년 수능 만점자 몇 명 정도는 나오는 게 익숙해졌지만 2000년대 후반까지는 수능의 전반적인 수준이 높은 편이라 만점자는 2001학년도(66명)를 제외하면 한 명 나올까 말까 하는 매우 희귀한 일이었다.[1] 200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은 그 전해의 시험과 마찬가지로 비교적 어려웠으며 그 해의 모의평가도 꽤 어렵게 출제된 편이었다.
2. 언론 보도
3. 성적 발표 이후
수능 성적표 발표 이후 김치국 학생은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져 버렸다. SKY와 의치한은 물론이고 전국의 어느 대학에서도 김 군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일단 언론의 발표와 달리 수능 만점자는 없었으며 자연계 수석은 김 군이 아니라 포항고등학교의 이훈훈[2] 군으로 394.2점을 받아 서울대 의예과에 진학했다. 참고로 인문계 수석은 394.5점을 받은 분당 서현고등학교의 윤재희[3] 군으로 서울대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그러면 모의평가 점수는 어떻게 된 것인고 하니 이것도 정확한 정보는 구할 수 없지만 풍문에 따르면 학교 실적을 올리려고 한 한밭고가 모평 정답을 미리 학생에게 주었다는 소문이 있다. 그러나 이것도 확실하지는 않았고 김치국 학생에 대해서는 이후 전혀 보도되지 않아 사건은 미궁으로 빠져 버렸다.
실제 점수는 만점에 훨씬 못 미쳤다는 것이 당시 대전에 살았던 대부분의 학생들의 이야기이기는 한데 그 증언의 폭이 워낙 커서 마킹 실수 수준의 점수부터 250점대의 택도 없는 점수까지 다양하다. 이것도 오리무중이다.
이후 당시 한밭고에 재직 중이었던 교사를 통해 소식을 들은 결과 김치국 학생의 수능 성적은 급격하게 성적이 오르기 전과 비슷했고 삼수 후에 대전에 있는 모 대학에 입학했다고 한다.[4] 수능 성적 발표 후 본인의 성적이 틀릴 리 없다며 확인을 요청했고 확인 결과 가채점표와 김치국 학생이 수능날 제출한 답안지의 답이 완벽하게 일치했다고 한다.
모의고사 성적에 관한 이야기는 말이 많은데 반장이었던 탓에 교무실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고 모의고사 종료 후 교무실에 들어가 OMR카드를 바꿔치기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이 역시 확실한 이야기는 아니다.[5]
수험생 사이트인 오르비에도 수능 역사상 가장 미스테리한 사건이라는 글이 올라온 적이 있다. 심지어 생각보다 잘 나오지 않은 성적에 비관해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자살했다는 말도 있고 그가 중증 리플리 증후군에 걸린 망상병 환자란 말도 나왔다. 진실은 저 너머에...
[1] 국가 주관 대학입시에서 처음으로 만점을 받은 사례는 199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나왔다. 이후에도 수능 만점자는 곧잘 등장해서 만점자 인터뷰가 학원 홈페이지나 신문 광고에 나올 정도로 흔해진 편. 하지만 과거에 시행되었던 악명 높을 정도로 어려웠던 대학입학 학력고사는 만점자는 단 한 번도 없었고 전국 수석 합격자가 1~2명 정도 나오다 보니 중앙 언론사 기자가 학생을 직접 인터뷰한 뒤 언론사로 송고된 정식 기사로 보도되었으며 심지어 TV 뉴스에 방송되기도 했다. 1982학년도 학력고사 전국 수석으로 TV 뉴스를 탔던 제주제일고 3학년 원희룡(제주특별자치도지사)이 대표적인 사례다.[2] 재활의학과 의사로 일하고 있다.[3] 삼성전자 재직[4] 그런데 정작 그 모 대학에서도 김치국 학생을 찾을 수 없었고 대전 소재 모든 대학의 모든 학과에도 한밭고 출신 김치국 학생이란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돌연 수능 이후 사라져 버린 것.[5] 사실 2007학년도 이전에는 생년월일 입력을 하지 않는 등 개인정보가 포함되지 않았다. 그래서 한때 이 시기의 모의평가 성적표는 평가원에서 재발급해 주지 않았다. 관련 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