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金鎭洪 | Kim Jin hong | |
<colbgcolor=#000><colcolor=#fff> 출생 | 1941년 6월 18일 ([age(1941-06-18)]세) |
일본 제국 도쿄시 (現 도쿄도) | |
거주지 | 경기도 동두천시 |
학력 | 성광고등학교 ( 졸업 ) 계명대학교 (철학 / 학사)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 / 석사) |
종교 | 개신교(예장통합) |
가족사항 | 3남 1녀 중 셋째, 배우자 강선우 , 딸 김은송 아들 김동혁 |
현직 |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고문 활빈교회 원로목사 신광두레교회 원로목사 동두천두레수도원 원장 수곡두레학원 이사장 |
약력 |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 계명기독학원 이사장 수곡두레학원 대표 제2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 위원 두레교회 담임목사 |
링크 | 두레김진홍[1] |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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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개신교 신학자이자 사회운동가. 두레마을의 대표이다.경상북도 청송 출신으로 대구에서 계명대학교까지 다닌 뒤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신학 석사 학위를 받고 목사가 되었다.
1971년 10월 3일에 서울 청계천에 활빈교회[2]를 세우고 빈민선교와 사회사업을 펼첬다. 1974년경 박정희 정권의 유신에 반대하는 시위를 주도하다가 끌려가서 옥고를 치렀다. 이후 청계천 거주민들과 함께 경기도 화성 남양만으로 내려가 두레마을을 세우고 개척 사업을 진행한다. 지금의 모습을 생각하면 의외이겠지만 당시 김진홍 목사에 대한 평판은 양심있고 청렴한 목사였으며, 2001년 경향신문에서 '우리나라를 빛내고 21세기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 갈 것으로 기대되는 55명' 을 뽑았을 때 개신교에서 김진홍 목사가 선정되었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1999년 10월 3일, 교회 창립 28주년을 맞아 담임목사직에서 사임하고 본인이 구리에 개척한 두레교회의 담임목사로 이동했다. 이 교회를 담임하면서 지역사회에 영향력을 끼치는 큰 교회로 성장시켰으나 호화로운 천막성전의 건축 과정에서 일어난 특혜 문제가 발생했고, 게다가 이 성전이 완공될 무렵부터 뉴라이트 전국연합을 김진홍 목사 본인이 창설하였고, 각종 정치적 발언들을 하는 바람에 정치 목사로 이미지가 악화되었다.
2000년대 이후 뉴라이트로 급속도로 기울어 뉴라이트 전국연합을 창설, 기독교 우파 계열과 연대하여 극우-보수 운동을 주도하였다. 이명박 대통령의 멘토로 알려졌으며 이후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보수 정치목사로 더 알려젔다. 한편 두레교회 운영을 두고 성도들과 갈등을 빚어 한 장로에게 폭행 당하기도 했고,# 각종 횡령건으로 고발을 당하기도 하였으나 무혐의로 종결되었다.# 다단계도 했다. 여튼 2009년 12월을 끝으로 건강을 이유로 담임목사직에서 사퇴했으나 후임 담임목사인 이문장 목사와 반 이문장 목사 세력이 갈등을 빚자 반 이문장 세력의 배후로 의심되는 일을 겪기도 했다.[3]
이후 다시 일선에 복귀한 김진홍 목사는 2011년 11월에 동두천에 두레교회(수도원)를 개척하여 담임목사가 되었다. 이후 2018년 11월을 끝으로 담임목사직에서 물러나 원로목사로 추대되었다.[4] 2020년에 성전 건축 문제로 힘들어하던 신광교회를 동두천 두레교회와 합병하였고, 두레수도원장 겸 원로목사 자격으로 여전히 설교를 하고 있다. 2019년 11월 26일 교회 홈페이지에 청와대 앞에서 단식중인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 집회를 주관하고 있는 전광훈과 김문수 전 경기지사를 방문하고 그들을 애국지사라 칭송하는 소감문을 올려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전광훈의 "하나님 까불면 죽어" 발언에 대해 그 말이 아니라 그 뜻을 헤아려야 한다고 하였다.
2020년부터는 전광훈의 문재인 대통령 퇴진운동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2021년 11월 7일 정권교체 라는 설교명으로 설교하고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이재명을 비방하였고, 정치인 겸 전도사인 김용민이 운영하는 사단법인 평화나무 공정선거감시단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했다. 한편 2021년 11월 24일 유사한 다른 선거관련 항소심 공판(서울고법 형사6-1부(김용하 정총령 조은래 부장판사))에서 벌금200만원 형을 확정받았다
김진홍 목사의 정치적 행보가 논란이 되는 일이 잦으나 교회를 개척하는 능력 하나는 타고났다는 평. 당장 활빈교회를 화성에 개척하여 28년 동안 중견교회로 성장시킨 다음 두레교회를 구리에 개척하여 12년 동안 대형교회로 키웠고, 두레수도원을 세웠고 동두천두레교회에 설교목사로 있다가 건축부채로 어려움을 겪던 동두천 신광교회와 통합하여 신광두레교회의 설교목사로 있다.
[1] 구독자 수는 2024년 10월 기준으로 약 20만 명이다.[2] 홍길동의 활빈당에서 따왔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답역과 용답역 사이에 있었다.[3] 이 두레교회는 이후 이문장파와 반 이문장파로 나뉘는데, 그 호화로운 천막성전을 이문장파에서 가져가버렸다. 이후 이문장파는 교단 탈퇴를 거쳐 예장합동으로 교단을 옮겼는데, 이건 이문장 목사가 총신대(예장합동) 출신이었기 때문. 반 이문장파는 두레교회의 간판을 지켰지만 문제는 성전을 빼앗겨서 결국 큰 상가 건물에 입주하여 셋방 살이를 하고 만다.[4] 애초에 두레교회(수도원) 개척이 이뤄질 무렵에 만 70세를 넘긴지라 담임목사를 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