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
1. 개요
대한민국의 재야역사학자. 우리역사문화연구소장으로 재직 중이다.1965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1982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한국사학 석사 학위[1]를 취득했다.
고구려 관련 저술활동을 주업으로 삼고 있다. 우리가 기존에 고구려하면 영토와 전쟁에만 치우쳐진 인식에 비해,[2] 고구려가 그렇게 광활한 영토와 유서깊은 역사를 이어온 근본을 문화의 힘으로 보고 지금까지 전쟁에 비해 소홀히 다뤄져 왔던 고구려의 문화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다음 카페 우리역사문화연구모임(역사문)을 운영하고 있어 만나기가 매우 쉬운 역사학자로 이곳에다가 김용만에게 질문을 올리면 항시적으로 답변해준다. 본인에게 불편한 반박도 제대로 대꾸해준다.
대중적이거나 청소년지향의 저서도 많지만 이덕일보다 훨씬 제대로 된 학자에 가깝다. 최근의 저서나 학문적 입장에서 심각한 무리수는 적은 편이다. 문정창의 주장을 출처 제시 없이 인용한 전적이 있으며, 고구려가 북위보다 상국인 뉘앙스의 주장을 하기도 하는 등 무리수를 둔 적이 없진 않으나 이런 점에 대해서 충분히 반성하고 개선된 모습을 보였으며 통설보다 과감한 사료 해석을 통해 전문 분야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는, 재야사학자의 모범에 가까운 역할을 하고 있다.
서영교와 더불어 연개소문과 고당 전쟁이라는 주제에 대해 가장 깊이 파고든 인물이기도 하다. 이전까지 해당 분야는 '642년에 연개소문이 집권하고 645년에 당나라가 쳐들어오고 668년, 고구려가 멸망했다.'라는 삼국사기 복붙에 주석을 붙이는 수준이거나 설화나 야사를 끌어들여 접근하는 정도였는데 그는 좀 더 폭 넓은 사료 인용과 사료 비판을 통해 사실관계부터 검토해나간 것이다.
인터넷에서 보이는 7세기 연개소문 고당전쟁 썰 중 역사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 수준들은 대부분 김용만이나 서영교가 내놓은 견해를 참고한 것이라 해도 딱히 틀리지 않을 정도이다. 기존에 거의 조명되지 않던 2차 고당전쟁에 대한 이야기들을 1차 전쟁에 필적하도록 다룬 것도 그의 작품으로 이런 영향력을 인정받아 관련 주제를 다루는 역사 다큐에 꽤나 얼굴을 비추었으며 드라마 연개소문의 자문을 맡기도 했다.[3]
서영교의 경우 사료 인용 폭이 넓으나 연재물을 실은 경험 때문인지 속된 말로 MSG를 좀 치는 스타일[4] 반대로 김용만의 경우 사료 비판은 서영교에 비해 의식하는 편이지만 반대 쪽 비약으로 삐딱선을 타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 지적된다.[5]
2. 저서
- 고구려의 발견 (1998.바다출판사)
- 고구려의 그 많던 수레는 다 어디로 갔을까 (1999.바다출판사)
- 인물로 보는 고구려사 (2001.창해)
- 새로 쓰는 연개소문전 (2003.바다출판사)
- 지도로 보는 한국사 (2004.수막새)
- 광개토태왕의 위대한 길 (2011.역사의 아침)
- (20가지 키워드로 살펴본 조선의 선택) 조선이 가지 않은 길 (2017.창해)
- 숲에서 만난 한국사 (2021, 홀리데이북스)
[1] 석사 학위 논문 : 朝鮮時代 均分相續制에 關한 一硏究 : 그 변화요인의 역사적성격을 중심으로(조선시대 균분상속제에 관한 일연구 : 그 변화요인의 역사적성격을 중심으로).[2] 물론 본인도 이 부분이 고구려 문화의 일부로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3] 하지만 멀리 산으로 가고 폭주하는 드라마를 말리다가 지쳐 사임하고 논문이나 연재글을 쓰면서 드라마를 대차게 깐다(...).[4] 특히 매니아들 사이에서 연개소문 사후의 분열상을 생전으로 소급하고 그것을 중세 일본 수준으로 과장하는 일각의 인식을 보면 그가 연재한 '안시성 무장중립국' 설의 영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추가적으로 국내성에 대해 관구검이 내렸다고 퍼진 정체불명의 감상평도 그의 저서가 출처[5] 연개소문의 정변을 반정이나 혁명으로 규정한다던가 2차 주필산 전투 등은 본인도 완벽하게 준비된 내용은 아니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