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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미(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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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colcolor=#000> 김보미
Kim Bo Mi
파일:Kim Bo Mi.jpg
출생 1978년 ([age(1978-01-01)]세)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학력 세종대학교 호텔관광대학 (호텔경영학과 / 중퇴)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교회음악과 / 학사)
독일 레겐스부르크 음악대학 (교회음악과 / 석사)
빈 국립음악대학교 (교회음악·최고과정 / 졸업)
약력 빈 소년합창단 모차르트반 지휘자 (2012.9~2016.2)[1]
아놀드 쇤베르크 합창단 부지휘자, 단원 (2007)
한국 교회음악학회 부총무
한국 합창지휘자협회 이사
레겐스부르크 시립 음악학교 지휘자
Theater an der Wien 합창 감독
소속 월드비전 합창단 상임지휘자 (2018.3~ )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교회음악과 조교수, 학과장 (2016.1~ )
새문안교회 새로핌찬양대 지휘자
종교 개신교[2]

1. 개요2. 생애
2.1. 음악계 입문2.2. 빈 소년 합창단에서2.3. 귀국 후 활동
3.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지휘자. 기악보다는 성악 부문 지휘를 전문으로 한다. 빈 소년 합창단의 지휘자를 맡았으며, 모교인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교회음악과에서 학과장 및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2. 생애

파일:external/www.kocis.go.kr/Vienna-140102-1.jpg

2.1. 음악계 입문

1977년에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좋아하여 초등학교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중학교 재학 시절에는 교회 성가대의 반주를 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음악가의 꿈을 가지고 있었으나 부모의 반대로 인해서 세종대학교 호텔경영학과에 진학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의 끈을 놓지 못하여 세종대학교 재학시절 그룹사운드에서 활동하였다. 그렇게 1학년을 마치게 된 그녀는 "지금 음악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다음 해, 세종대학교를 과감하게 자퇴하고,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교회음악과에 입학해서,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음악이라는 학문을 열정적으로 배운 후 졸업한다. 이후 독일 레겐스부르크 교회음악대학교[3]에서 유학생활을 했다. 그 후, 으로 넘어가서 빈 국립음악대학교를 졸업하여 박사과정에 있다. 또한 그녀는 세계에서 인정받는 유명한 현대 클래식 음악인 중 한명인 빈 국립음악대학교의 에어빈 오르트너[4] 교수에게 사랑받는 제자였다. 그녀는 빈 국립음대 재학 시절 에어빈 오르트너 교수가 상임 지휘자로 있는 아놀드 쇤베르크 합창단의 부 지휘자로 활동하던 중 스승의 도움으로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같은 현대 지휘의 거장들과 무대를 서는 등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 나갔다.

2.2. 빈 소년 합창단에서

빈 소년 합창단 지휘자 시절의 영상

그러던 어느 날, 오르트너 교수가 "빈 소년 합창단의 지휘자 자리가 현재 공석이니 오디션을 보는게 어떻겠느냐"며 제안하자 고민하게 된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워낙 보수적이기 때문이다.[5] 또한 빈 소년 합창단은 역사가 무려 500년이 넘지만 그 긴 역사중에 여성 지휘자는 지금까지 단 1명도 없었다. 그래도 도전하겠다는 각오로 빈 소년 합창단 상임지휘자에 지원, 2박 3일간의 철저한 오디션을 거쳐서, 경쟁자였던 수 많은 경쟁자들을 누르고 빈 소년 합창단의 4개의 클래스중 하나인 모차르트코어의 상임지휘자에 임명된다.

빈 소년 합창단 500년 역사상 최초의 여성 지휘자로써, 자신의 반인 모차트르코어를 데리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연간 100회 이상의 콘서트를 소화했으며, 뉴욕 카네기홀, 시카고 심포니홀, 빈 황금홀, 베를린 콘서트하우스 등 세계 유수의 공연장에서 콘서트를 했다. 또한 2014년에는 대한민국에도 자신의 반을 이끌고 내한하여, 예술의전당 음악당에서 2회.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에서 공연을 했다.

2013년 오스트리아 최고의 합창지휘자에게 주는 "Ortner Preis"를 수상하였다.

2.3. 귀국 후 활동

3년간 활동했던 빈 소년 합창단 상임지휘자를 자진 사임한 이후로는 한국으로 돌아와 자신의 모교인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교회음악과에서 교수이자 학과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8년 3월에는 월드비전 신임지휘자로 임명되어 활동하고 있다. #

3.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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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빈 소년 합창단 500년 역사상 최초의 여성 지휘자이다.[2] 새문안교회에 오래전부터 출석한다고 밝혔다.[3]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교회음악대학교이다.[4] 대한민국에서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서양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꽤나 유명한 사람이다. 특히 오스트리아 음악계에서는 영향력이 절대적일 정도.[5]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케스트라인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비 유럽인이나 여성에 대한 차별이 매우 심한 것으로 유명하다. 예전엔 비 유럽인이나 여성을 받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금기는 풀린 상태. 그러나 여전히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들어온다해도 심한 왕따나 차별로 얼마 버티지 못하고 나가는 일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