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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2-09-26 20:38:20

김대혁

<colbgcolor=#0047a0> 본관 김해 김씨
출생 1875년 9월 24일
평안도 용강현 화촌방 죽본리[1]
(현 평안남도 온천군 석지리)
사망 1973년 4월 16일
서울특별시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1. 개요2. 생애3. 여담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1875년 9월 24일 평안도 용강현 화촌방 죽본리(현 평안남도 온천군 석지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농업에 종사하던 중 1919년 3월 4일 김대엽과 함께 신흥학교(新興學校) 학생 30명을 이끌고 서화면 죽본리(竹本里)·석치리(石峙里) 등을 행진하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시위를 전개하였다.

시위 후 체포된 김대혁은 지방법원과 복심법원의 재판과정에서 "금일 평화 문제와 민족자결이라는 문제는 완성되지 않았는데 조선민족으로서 조선 독립을 부르짖는 것이 왜 죄가 되는가?"라고 항의하였다. 결국 김대혁은 1919년 6월 6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후 조용히 지내던 그는 8.15 광복 후 월남했고, 1973년 4월 16일 서울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김대혁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3. 여담


[1] 인근의 암현리와 함께 김해 김씨 집성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