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수 | 나얼 | 박효신 | 이수 |
1. 개요
한국의 R&B-발라드[1] 4명의 남가수인 이하 김범수, 나얼, 박효신, 이수를 뜻하는 인터넷 줄임말 용어이다.2010년대 초반 디시인사이드 가요 갤러리에서 자기들끼리 당시 2030 젊은 남성 가수 중 소위 가창력 본좌를 뽑는다면서 서로 티격태격 병림픽을 하다가 최종적으로 도출된 결과가 공식처럼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국내 대학 서열처럼 노래 실력 티어로 최상위급을 정한 것.
이후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 YouTube 등에서 김나박이와 관련된 컨텐츠 게시물이나 영상들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TV 프로그램에서도 언급하는 등 상당수 대중들에게 의미가 알려져 독자적인 의미를 가진 표현으로 확립되었다.
2. 유래와 변화 과정
처음엔 그냥 2000년대~2010년대 초반 당시 노래 잘하는 당시 기준 30대 이하 남자 가수가 주제였다.[2] 그렇게 여러 가수가 언급 됐으나 서서히 정리가 되면서 '김나박이'라는 단어가 최초로 시작된건 2011~2012 시절 디시 가요갤러리로 보인다.논쟁의 진행 과정을 보면 일단 2001년, 나얼의 브라운아이즈[3] 데뷔곡 '벌써 일년'의 21주 연속 차트 1위, 2002년 2집 '점점'의 8주 연속 1위, 2003년 브라운 아이드 소울 데뷔곡 '정말 사랑했을까' 6주 연속 1위 등 화려한 기록으로부터 불씨가 시작된다. 제대로 된 1번의 방송 출연 없이도 큰 히트를 거둔 브라운아이즈, 특히 보컬 측면에선 메인보컬이던 나얼에 대한 대중들의 궁금증이 더해가던 찰나, 베일에 싸여있던 나얼의 라이브 실력이 2004년 첫 콘서트와 함께 공개되면서 라이브도 된다는 것이 증명된다.
이러한 나얼의 상승세에 평소에도 vs 싸움과 비교질을 좋아하던 디씨인 포함 몇몇 심심한 네티즌들은 2006년 어마어마한 폼을 보여주던
짧았던 나 vs 윤 동안에도 당시 기준 대중들에게는 노출이 덜 된 재야의 고수였던 김연우 그리고 김범수, 박효신이 훌륭하고 꾸준한 라이브 실력과 좋은 앨범 작업물을 보여주자, 2009년 디시인사이드 가요갤러리에서 나얼과 이들을 묶어 '4대 본좌'라는 호칭이 생겼다. 하지만 이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은 ‘이승철은?’, ‘임재범은?’ 같은 여러 레전드 보컬리스트를 언급하며 '본좌'라는 칭호에 거부감을 내비치자, 이를 순화한 '4대 보컬'이라는 칭호에서 '김나박'이라는 표현까지 변했다.[4][5]
당시 연배가 있던 네티즌들은 상대적으로 젊은 가수만 언급되자, 다른 네티즌들을 보컬 역사에 대한 지식도 일천한 어린 넘들 비슷한 취급을 하기도 했다.[6] 그러다보니 나름의 기준이 정해졌는데, 당시 나얼, 박효신, 김범수는 가수로서 전성기에 접어드는 나이였지만 전설이라고 할 순 없는 애매한 경력을 가진 30대 초반 전후 무렵 보컬들이었다. 그래서 나이대로 보면 40대로 접어들고 있었던 김연우는 언급에서 자연스레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기준 아래 '김나박'에 비견될만한 작업물, 가창력을 지닌 이수 역시 추가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생기면서[7] ‘이’가 합세된 ‘김나박이’란 단어가 생겨나게 된다.[8]
3. 해당 가수들의 반응
현재 박효신을 제외한 3명은 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언급한 바가 있다. 다른 가수들에 비하면 미디어 등에 간간이 얼굴을 비춘 편인 박효신은 의외로 인터뷰 때 관련 질문이나 답변이 나오지 않았다.김범수는 프로젝트 're.MAKE20' 인터뷰에서 '김나박이'라는 단어에 관심이 많다고 밝혔으며, 대중들이 자신을 리스트로 꼽아준 것에 대해 노래를 하는 입장에서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감사를 표했다. 다만 자신이 다른 가수들에 비해서 어떤 부분이 훌륭한지 잘 모르겠다며 겸손한 모습도 보였다. 또한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도 언급한 바가 있다. 채널에서 나박이 곡 커버를 하기도 한다.
나얼은 원더케이 좌표 인터뷰에서 '김나박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다고 밝혔는데, 같은 김나박이의 일각이자 친구인 김범수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 중 한 명이고 그를 비롯하여 네 명 중에 자신이 있으니 어쨌거나 기분은 좋다고 말한 한편으로, 그렇게 정의를 내리기에는 감사하지만 부끄러운 느낌이라고 답했다.
이수는 엠씨 더 맥스 9집 정규 앨범 'Circular' 음감회에서 '김나박이'란 용어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혔는데, 그는 ‘국내 및 해외에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너무나 많이 있고 또한 팬들 사이에서 이와 관련하여 의견이 분분하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지만, 이를 특정 단어로 묶어 표현하고 논쟁을 벌이기보다는 각자 선호하는 아티스트를 찾아서 듣는 것이 좋다.’고 말한 바 있다. 더불어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 부끄럽지만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말도 전했다.
보면 알듯, 해당 가수들도 '김나박이'라는 표현에 감사를 표하기는 하지만, 자신들을 그렇게 칭하는 것에 한편으론 부끄러워하는 모습. 특히 김범수는 본인 유튜브 채널에 컨텐츠를 올리면서 자신을 빼고 '임나박이'라는 호칭을 쓰기도 하는데, 여기서의 임은 임재범이다.
4. 네 사람의 관계
실제 넷, 특히 드러난 영상들로만 참고할 시 박효신과 김범수, 김범수와 나얼은 서로 꽤 친한 사이다.박효신 4집의 '친구라는 건'에 김범수가 참여하여 역대급 곡을 뽑아내기도 하는 등 원만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9]
김범수와 나얼도 재즈 피아니스트 곽윤찬의 CCM 프로젝트 앨범 <I am melody 2>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종종 만나는 모양. 나얼은 본인 입으로 김범수와는 친한 사이라고 직접 밝혔으며, 이름을 언급할 때도 '범수'라고 편하게 부른다.
박효신과 나얼의 경우 2000년도에 결식아동 자선 콘서트에서 공연을 같이 한 인연이 있다.
박효신과 이수의 경우 2000년대 중반부터 가끔씩 듀엣으로 불러본 적이 있는 사이다. 동갑내기로 과거에 서로 종종 교류했던 일이 있었다. 특히 이수의 아내인 가수 린의 절친이 박효신이라 교류가 없을 수가 없을 것이다. 공적으로 드러난 건 김광석 콘서트가 마지막이긴 하지만 사적으로는 친분을 유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으로 김범수와 이수는 서로 음악적으로 함께 작업하거나 콜라보레이션을 한 적은 없지만 김범수가 이수, 린 결혼식의 축가를 불러주는 등 꽤 친분이 있는 사이다. 더군다나 2021년 3월 5일 김범수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이수의 '어디에도'를 커버한 영상에 이수 본인과 그의 아내인 가수 린이 직접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10] 또한 이수 본인도 '앞으로 '어디에도'는 범수형 노래입니다. 반박시 음알못'이라고 직접 댓글을 달았다. 이에 김범수가 그 댓글에 즉시 하트를 눌렀다.
물론 당사자들 간에도 경쟁 의식이 없으리란 법은 없지만, 그렇다고 누가 더 잘났다에 목 매다는 살벌한 라이벌 관계는 아니다. 오히려 라디오와 같은 매체에서 서로를 칭찬하는 한편, 정작 자신을 그 라인에 넣어주신 팬 분들께는 굉장히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하다고 한다. 어차피 넷 다 보컬 장인으로 취급받는 마당에 굳이 우열을 가릴 이유가 없기도 하고, 애초에 노래란게 주관적인 평도 강해서 객관적 우열을 가리기 매우 까다로운 분야기도 하다. 한 블로거가 2013년 주관적인 평을 낸 적도 있는데 참고.#
김범수는 나얼, 박효신, 이수와 모두 접점이 있는 마당발이며, 모두 동료 겸 지인으로서 친분이 있다. 특히 본인 유튜브 채널에서 세 명의 곡을 모두 커버하기도 하는 등 김나박이 기믹에 꽤나 호응해주는 편.
5. 여담
- 성종은 박효신을 제외하곤 테너로 추정된다는 의견이 많다. 박효신은 테너가 아닌 하이바리톤이라는 의견도 많다. 허나 애초에 성종은 병원 가서 성대 정밀 검사해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는 영역이다. 소리만 듣고 성종 파악하는건 추정에 불과할 뿐이다.
- 네 사람 모두 비슷한 시기에 데뷔했다. 2000년에 데뷔한 이수를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은 1999년에 데뷔했다. 나이는 나얼(1978년생)이 가장 많고, 김범수(1979년생)[11], 이수(1981년 4월생), 박효신(1981년생 9월생) 순이다.
- 넷 중 둘씩 만나서 라이브를 보여준 적도 더러 있지만, 넷이 한 자리에 모여서 같은 노래를 한 적은 없다.
- 2020 KBO리그에서 '이'를 뺀 김나박이라는 단어가 쓰였는데, 삼진왕 경쟁을 하고 있는 김재환, 나성범, 박병호를 가리킨다. 게다가 이 셋의 소속 팀(두산 베어스, NC 다이노스, 키움 히어로즈)은 1~4위권에서 순위 경쟁을 하고 있고, 셋 다 메이저리그와도 관련이 있다.[12]
- 2023년 김나박이 콘서트가 열린다는 카더라가 돌아 팬들의 기대를 모았는데, 알고 보니 '원조' 김나박이 콘서트가 열린다며 K2의 김성면, 일기예보의 나들, 유리상자의 박승화, <어떤가요>의 원곡 가수 이정봉을 합쳐 김나박이라 칭하며 각 포지션의 가수가 한번씩 콘서트를 하는 것으로 밝혀져 팬들을 뿜게 만들었다. 근데 또 따지고 보면 저 가수들도 물론 김나박이급 가창력은 아니지만, 90년대 가요계의 황금기와 르네상스를 상징했던 가수들에 포함되는건 맞으니 원조 김나박이란 표현도 틀린건 아니고 실제로 이 콘서트와 관련된 댓글 중 하나가 "김나박이가 아닌데 김나박이가 맞음."이기도 했다. 이후 원조 김나박이는 2023년 6월 14일 유 퀴즈 온 더 블럭에도 출연했다.
6. 비판
세상은 넓고 노래 잘하는 가수는 세계에 널려있다. 애초에 가수 데뷔 사회는 한해에도 수백명 이상의 프로 가수들이 쏟아져나와 그런 곳에서 오직 몇명의 최고 보컬만이 그나마 대중적 인지도를 얻는 가수가 되는 시장이다. 즉, 가수가 알려졌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최고의 보컬로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허나 운이 나빠서 유명해지지 못했을 뿐 무명가수 중에서도 실력자들은 많으며, 가수가 아닌 사람들 중에서도 노래를 잘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이 있다. 가수들 사이에서도 장르가 다 다르고, 가창력을 판단하는 기준 자체가 사람들마다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음역대일수도 있고, 성량일수도 있고, 음색일수도 있다. 어떠한 평가를 내리든 그것이 무조건 정답은 아니다. 그런데 특정 가수 몇명을 모아놓고 이들을 기준으로 노래 잘하는 가수와 못하는 가수를 가린다는 것이 과연 올바른 행동일까?물론 이들 4명이 매우 뛰어난 실력을 가진 가수인 점은 누구나 인정하겠지만, 다른 가수들의 실력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되며, 그러한 기준이 되는 것 또한 말이 안된다. 사실 '김나박이'라는 표현은 파고보면 문제도 많다. 이 표현은 2011년 전후 디시인사이드 가요 갤러리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만큼 당시 갤에서 가장 선호되던 R&B 장르의 보컬들이 고평가된 측면이 있는데[13], 반대로 말하면 타 장르 가수는 철저히 배제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다른 걸출한 보컬들도 찾아보면 상당수 있음에도 김나박이 표현이 굳어져 이 세대의 다른 가수들은 은연중에 이 4명보다 아래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마저 존재한다.[14]
공신력 있는 단체의 평가와 달리 이런 공고한 서열화는 하나의 신분제처럼 작용한다. 이러한 문제점이 보컬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이 단어는 한국 대다수 대중들의 인식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하는 특정 시기 소수의 가갤러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므로, 당연히 현재 한국 보컬의 실력에 대한 국민들의 보편적 정서도 반영하지 못한다. 또한 발성법들이 이전보단 대중화된 2010년대 이후, 각종 오디션 프로 등으로 쏟아진 많은 실력파 발라더들로 인해 평균적인 실력 측면에선 상향평준화가 이뤄지면서 이 표현 자체가 더 이상 의미가 있냐는 비판도 많아졌다. 또 충분한 가창력과 음악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호불호가 갈리고 장르적으로 좁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어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가수들도 많다. 그런데 김나박이만을 '본좌'로 칭송하고 어떤 경지에 이르렀다고 선별하여 다른 가수들과 분리하는 것은 불공정한 처사가 될 수 있다.
다만, 고음을 잘 내지만 고음만 잘낼 뿐 개성이 적거나 없는 이른바 양산형 가수들과 달리 가창력도 뛰어나고 각자의 개성도 가지고 있으며 발전시킨 김나박이가 평가 받을 이유도 충분히 있는건 사실이다. 즉, 김나박이의 가치를 내려치는 게 아니라, 이들만큼 혹은 그 이상의 뛰어난 가수들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걸 유념하고 편견을 갖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애초에 음악은 음학이 아니다. 특히 김나박이 미만잡 같은 헛소리는 하지 말자. 다른 가수들도 그들에 준하는 노래 실력을 가진 경우가 많기 때문에 쓸데없는 비교질은 다른 가수에게는 물론 김나박이에게도 실례인 행동이다.
[1] 이수는 록발라드+팝(가요)발라드 하이브리드에 가깝긴 하다. 애초에 국내에선 R&B도 R&B 발라드화 된 곡들이 많다.[2] 이미 보컬 갤러리에서도 인정하는 전세대 탑 보컬리스트격으론 임재범, 이승철이 있었고 김경호도 간간히 언급되고 있었다. 다만 이들은 전성기가 지나가던 시절이라 이들을 제외한 당시 기준 전성기에 있는 최상의 보컬리스트를 뽑는 병림픽논쟁이 일어났다.[3] 나얼은 1999년 아카펠라 그룹 앤썸으로 데뷔했지만, 상업적 흥행에 실패하며 팀이 와해된 후 프로듀서 겸 가수 윤건과 만나 브라운 아이즈로 다시 데뷔했다.[4] 김연우도 김범수와 같은 김씨이기에 따로 언급되지 않고 김나박으로 불렀다. 김김나박[5] 참고로 김나박이가 2000년대 초부터 쓰였다는 주장도 있는데, 후반을 착각한 것으로 보인다. 2008년 엠넷에서 전문가들이 선정한 33세 이하 남자가수 가창력 순위에서 박김나이 순으로 순위가 뽑힌 적이 있다. 당시 기준 신진 4천왕을 꼽으며 쓰이던 말이었으나, 사실 네티즌들에게 크게 회자되진 않다가 이후 디시 병림픽 유저들 사이에서 그 윗세대인 김연우가 거론되며 불명확한 기준으로 왈가왈부가 많아지자 후술하는 과정을 거쳐 김나박이가 되었다는 의견도 있다.[6] 마치 오늘날 와서 김나박이가 거장 취급을 받고 20~30대 보컬리스트들은 실력이 있어도 이들보단 무조건 아래 취급을 받는 것과 비슷하다.[7] 당시 디시 가갤 내외에서 '천의보컬'이라는 이수팬 고정닉이 이런 여론을 주도했다고 한다. 다만 김나박 자체가 원래는 흑인 소울을 취급하는 소울 보컬 느낌도 있어서, 첨엔 기준이 애매해진다는 반발도 있었으나 결국 발라드로 수렴된다는 여론 아래 김나박이가 된다.[8] 참고로 2016년 복면가왕에서 하현우가 뜬 이후부턴 '김나박이하'라는 표현도 생겼는데, 물론 가창력 측면에선 김나박이에 필적할만한 가수인건 맞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락커 인상이 강한 점이나[15] 확실히 뜬 시기가 복면가왕 이후로 2000년대 김나박이보다 많이 늦은 점, 히트곡이 적은 점[16] 등 때문에 김나박이보단 덜 쓰이는 편이다.[9] 이 곡은 2004년 라디오에서 라이브와 2009년 박효신 콘서트 때 김범수가 게스트로 2번 참여하여 총 3번의 라이브를 선보였으며, 특히 2009년 라이브 땐 곡의 마지막쯤 김범수와 박효신의 미친 듯한 애드립, 기교 대결이 일품이다.[10] 김범수가 사용한 MR은 이수와 제이윤만이 갖고 있던 원곡 MR로, 이수 혹은 제이윤이 김범수에게 직접 준 것으로 추측된다.[11] 빠른 79이긴 한데 2012년에 못친소에 출연했을 때 하하 및 노홍철이 범수 형이라 안하고 범수라고 지칭하는 것을 보면 1978년생과도 친하고 1979년생과도 친한 듯하다. 결정적으로 1978년생인 조정치와도 서로 편하게 말 놓는 사이다.[12] 김재환은 2019시즌이 끝나고 메이저리그 포스팅 신청을 했지만 실패를 했고, 나성범은 에이전트로 스캇 보라스와 계약을 하며 메이저리그 도전을 공공연하게 밝혔고, 박병호는 메이저리그에 갔다가 실패를 경험하고 돌아왔다. 그래서 각각 못 간 놈, 가고 싶은데 결국 못 간 놈, 갔다 온 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13] 물론 나중엔 록 장르의 이수가 포함되긴 했지만 애초에 이수는 정통 락커 느낌은 아닌데다 어쨌든 시작은 R&B 가수를 서열화하는 데서 시작되었다.[14] 가장 대표적인 희생양(?)이 성시경이었다. 나름 객관적인 대중성이 증명되는 히트곡도 많고, 음색의 독특함이나 음역대에서도 크게 밀리진 않음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비음과 초고음엔 좀 덜 어울리는듯도 한 음색 때문인지 김나박이 추종자들에겐 유독 저평가 당하는 경향이 있었다. 아이러니한건 2020년대 본인 유튜브 채널 구독자가 가장 많은건 성시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