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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24 12:52:16

김계부

金繼夫

생몰년도 미상

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

1. 개요

고려의 인물.

2. 생애

1010년에 거란이 고려를 침공하면서 제2차 여요전쟁을 일으켰고, 12월 초에 통주 전투의 패배로 고려군이 무너지면서 김훈, 이원, 신영한과 함께 곽주로 후퇴하다가 거란의 기병이 추격하자 완항령에서 군사를 매복해 칼을 손에 쥐고 돌격해 거란군을 약간 물러나게 했다.

1011년 2월 6일에 병부시랑이 되었다.

3. 대중매체

소설 고려거란전쟁: 고려의 영웅들에서는 통주 전투에 패배해 고려의 군사들이 흩어졌고 김훈, 이원, 신영한과 거란군과 싸우면서 후퇴했는데, 신영한이 부상을 입고 물러나 이원에게 지휘권을 맡기면서 김훈이 불만을 가져 이원이 안주 대신 서경으로 가자는 것에 반발하자 두 사람을 말리면서 대장군기를 이원에게 주었기에 이원의 말을 따르자고 했다.

김훈이 자기 부대를 이끌고 떠나자 김계부는 김훈에 대해 우리가 통솔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고 우리가 그의 통솔을 받을 수도 없다며 용력이 뛰어나지만 지휘 능력은 이원보다 못하다며 그래서 신영한이 지휘권을 준 것이라면서 화합하지 못하는 군대는 필히 패할 것이니 김훈의 부대가 간 것이 잘된 일이라고 위로해 이원과 함께 서경으로 갔다.

서경에서 원종석 등이 거란군에게 항복하려 하자 조자기가 동북면의 군사를 빨리 오게 하도록 광휴를 몰래 보냈는데, 조자기를 잡아 서경이 항복하려 하는 상황에 대해 파악했으며, 이원의 제안에 따라 자비령으로 가려다가 조자기로부터 동북면의 군사가 원군으로 온다는 말을 들었다.

탁사정 등이 원군으로 도착해 서경을 지키기 위해 싸웠고 지채문, 이원과 함께 거란군을 싸우다가 퇴각하는 것을 보고 추격하다가 지채문의 군사가 전멸해 퇴각 신호가 울리자 서경으로 달아나려다가 거란군의 공격을 받자 남쪽으로 달아났다. 남쪽으로 가 현종을 호송하려고 했지만 길을 잘 못 드는 바람에 광주에서 현종을 만나 호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