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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03 07:54:30

기술프 1세(살레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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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코눌프 지코 피에트로 아데마르 구아페르
과이마르 1세 과이마르 2세 기술프 1세 판둘프 1세 판둘프 2세
만소
조반니 1세
조반니 2세 과이마르 3세 과이마르 4세 판둘프 3세
기술프 2세 }}}}}}}}}}}}

Gisulf I
생몰년도 930년 ~ 978년
출생지 살레르노
사망지 살레르노
재위 기간 946년 - 978년

1. 개요2. 행적

1. 개요

살레르노 공국 8대 대공.

2. 행적

살레르노 공국 7대 대공 과이마르 2세와 카푸아 백작 아테눌프 1세의 딸 가이텔그리마(Gaitelgrima)의 아들이다. 943년부터 아버지와 함께 살레르노 공국을 다스렸고, 946년 6월 4일에 아버지가 사망한 뒤 살레르노 대공국의 대공이 되었다. 베네벤토 대공 란둘프 2세는 과이마르 2세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나폴리 공작 요안니스 3세와 동맹을 맺고 기술프 1세를 축출했다. 하지만 아말피 공화국의 마스탈로가 구원하러 와서 카바 계곡에서 란눌프 2세를 격파한 뒤 기술프 1세를 복위시켰다.

947년, 기술프 1세는 란둘프 2세와 동맹을 맺고 나폴리 공국의 수비대가 주둔한 놀라 시 공략에 기여했다. 이후 나폴리 주교에게 유리한 특권을 내주며 나폴리와의 관계를 개선하려 노력했다. 955년 직후 바리 총독부의 동로마 제국 스트라테고스인 마리아노스와 동맹을 맺고 파트리키오스의 칭호를 받았다. 966년 교황 요한 13세를 로마에 복귀시키려는 베네벤토 대공 판둘프 1세에 맞서 연합한 로마 민병대-투스카나 공국-스폴레토 공국과 손을 잡았지만, 막상 군대를 보내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다가 요한 13세가 로마 귀환에 성공하자 테라키나에서 교황청과 평화 협약을 체결했다.

973년, 베네벤토 대공 아테눌프 2세의 아들이었으며 940년 12월 아버지가 사망한 뒤 백부 란둘프 1세에 의해 공동 대공에 선임되었다가 얼마 안가 추방당한 란둘프가 나폴리 공작 마리누스 2세와 아말피 공화국만소 1세의 지원에 힘입어 기술프 1세를 몰아내고 살레르노 공국을 일시적으로 장악했다. 이에 판둘프 1세가 즉각 살레르노로 진격해 란둘프를 몰아내고 기술프 1세를 복위시켰다. 이후 기술프 1세는 판둘프 1세의 가신으로 지내다가 978년에 자식을 두지 못한 채 사망했고, 살레르노 공국은 판둘프 1세의 수중에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