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기무라 류지 [ruby(木, ruby=き)][ruby(村, ruby=むら)][ruby(隆, ruby=りゅう)][ruby(二, ruby=じ)] | Kimura Ryuji | |
출생 | 1998년-1999년 ([age(1999-01-01)]세)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가와니시시립 세이와다이중학교[1] (졸업) 고등학교 (졸업)[2] |
가족 | 어머니[3], 형[4], 누나[5] |
직업 | 무직 |
수감 장소 | 오사카 구치소 |
범죄 유형 | 위력업무방해[6],살인미수죄, 테러 |
범행 무기 | 폭탄(파이프 폭탄) |
SNS | 트위터[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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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폭탄 투척 직후 체포되는 기무라 |
2. 범행 동기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어 범행 동기는 조사 중이지만 과거의 행적이 밝혀지면서 동기와 관련해서 어느 정도 유추해 볼 수 있게 되었다.2022년 9월 24일 가와니시 시의회가 개최한 시정보고회에 참가했는데 가와니시 지역의 자민당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행사에는 약 70명이 참석했으며 그는 시의원 급여 등을 질문했다. 이 관계자는 "20대 젊은이가 (시정보고회에) 참가하는 것이 드물다"며 "정치에 관심이 큰 모습이었다"고 회고했다. #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그는 시의회 의원 선거에 입후보 의향을 드러내며 시정보고회에 출석한 중의원에게 시의회 선거에 나가고 싶지만 나이 제한이 있어 나갈 수 없고 이는 헌법 위반이니 피선거 연령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를 만났던 오구시 마사키 디지털 겸 내각부 부장관은 계속 피선거권 얘기를 했는데 서로 얼굴도 잘 몰랐고 사건 후에 방명록에 그의 이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
그는 평소 선거제도에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2022년 7월 참의원 선거에 출마하지 못한 것은 부당하다며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요구 소송을 고베지방법원에 제기했던 것으로 밝혀졌다.[8] 2022년 7월 10일에 실시된 참의원 선거에 출마하려 했으나 공직선거법 규정 탓에 불가능했으니 이로 인해 받은 정신적 고통으로 국가에 10만엔(약 100만원)의 손해 배상을 요구했다.[9] 2022년11월, 1심에서 재판부는 선거법의 연령 요건과 공탁금 제도는 합리적이라고 주장하며 청구를 기각했다. 그는 판결에 불복해 오사카 고등법원에 항소했고 2023년 5월 판결이 예정되었다. 요미우리 신문, 조선일보
해당 소송 중 법원에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그는 아베 신조의 국장을 용서받을 수 없는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 비판하고 아베가 계속 정치가 노릇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옛 통일교 같은 컬트 단체와 조직표를 가진 단체가 유착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등 아베 신조 전 총리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고# 기시다 내각의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을 용서할 수 없다며 아베 신조 및 기시다 후미오 등의 자민당 총리들과 내각을 정치적으로 비판하는 내용을 적었다. 출처 오사카 고법에 제출한 서류에서도 “나라에서 피선거권을 제한하니까 입후보가 억제되고, 정치가는 국민의 신임을 얻지 않고도 통일교의 조직표로 당선돼 이익을 부당하게 독점하고, 지속적으로 국민에 손해를 끼친다”고 기술했다. #
본인의 것으로 보이는 트위터 계정에서도 그는 기시다 수상이 아베 신조의 국장에 대해 설명하는 뉴스기사를 링크한 트윗에서 기시다를 세습 3세 정치인이라고 비난하고 민의를 무시하는 인간이 정치인이 되어선 안 된다며 아베 및 기시다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요미우리 신문
발언을 종합해 보았을 때 그는 아베, 기시다로 대표되는 현 자민당 세력에 대해 정치적인 이유로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가 저지른 폭탄 투척 사건도 정치적인 동기에 의한 테러 행위일 가능성이 높다.
법원 소송에 본인이 제출한 서류에서 "선거공탁제도는 무산정당[10] 내지 무산자(프롤레타리아)의 의회 진출을 억제하는 것을 진정한 목적으로 도입되어 현재까지 그 목적 하에서 존속해 온 것이므로 공공의 이익 확보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11]고 적은 것을 볼 때(출처[12]) 정치적으론 좌파 성향으로 추정된다.
체포된 후 2020년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일본공산당, 사회민주당, 입헌민주당 등 일본의 진보 및 좌파 정당들의 지원을 받아 진보 측 단일 후보로 출마했던 우쓰노미야 겐지를 자신의 변호사로 선임해 달라고 요청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우쓰노미야 겐지를 통해 좌파/반자민당 세력과 연계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우쓰노미야 변호사는 많이 바빠서 이를 거절했다면서도 선거에 불만이 있으면 시민운동 등으로 해결을 해야지 폭력은 용납될 수 없다고 밝혔다.
3. 여담
- 그의 주변 이웃들의 증언에 의하면 2008년에 어머니와 함께 동네로 이사를 와 어릴 때부터 항상 예의 바르고 어른스러운 청년이었다고 하며 그런 짓을 저지를 줄은 생각지도 못 했다고 했고 그는 장난꾸러기에 밝고 활기찬 아이였다고 전해졌다. 중학교 동창들은 그를 말주변이 없고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타입이었고, 얌전하고 성실하고 항상 혼자 있는 이미지였다고 증언했다.[13] 일본 기사, 일본 기사 2, 한국 기사 다른 인터뷰에 따르면 중학교 시절 평소 많은 사람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을 꺼렸기 때문에 음악 시간이 되면 보건실에 가거나 학교를 쉬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를 계기로 괴롭힘을 당하면서 성격이 어두워졌다고 한다. 인터뷰 1(5분 30초부터), 인터뷰 2(4분 50초부터)
- 현장 체포 당시 그의 배낭 안에서 날 길이가 13㎝인 과도가 발견되었다. 첫 번째 폭탄을 던진 후 가지고 있던 두 번째 폭탄에도 라이터로 불을 붙이려고 했다고 한다. 경찰은 그의 자택 수사 중 화약으로 보이는 분말과 금속관, 공구류 등 90여 점을 압수했다.
- 테니스가 취미였는지 매일 혼자 테니스를 했다고 하며 어머니를 도와 정원을 가꾸거나 개 산책을 시키기도 했다고 한다.
[1] 川西市立 清和台中学校[2] 어느 고등학교 출신인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이웃들이 고교 졸업 후 1년 정도 매일 아침 버스에 타고 어디로 가는 것을 보아 진학 혹은 취직했다고 여겼다고 증언해 최소 고졸인 것으로 보인다. 취직하여 사회생활을 했다는 기사는 있는데 소, 중학 시절과 달리 고등학교 시절의 사진이나 정보가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이지메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거주지에서 멀리 떨어진 고교에 진학해 정보가 없는 것이 아닌가 추측했다.[3] 아버지는 2016년경부터 보이지 않아 이웃들이 이혼했다고 생각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참고로 아버지는 트럭 배달기사였으며 기가 세고 성격이 무서우며 자주 고성을 지르며 화를 내 부자관계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의 가출 이후 생계는 어머니가 책임진 듯하다.[4] 류지(隆二)라는 이름은 차남에게 쓰는 이름이다. 형은 용의자보다 1살 많다고 하며 성적이 우수했다고 한다. 집영사 취재에 아는 것이 없다며 거부했다.[5] 여동생이라는 말도 있다.[6] 범행에서 살의가 있었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살인미수 혐의도 추가된다.[7] 계정 이름부터 피선거권연령, 선거공탁금 위헌소송 광고이다.[8] 변호사는 선임하지 않는 본인 소송으로 진행되었다.[9] 일본의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피선거권은 30세 이상이므로 20대인 기무라는 해당되지 않으며 규정되어 있는 공탁금인 300만 엔(약 3000만원) 역시 마련하지 못했다.[10] 일본에서 사회주의 또는 마르크스주의 정당을 의미한다.[11] 公選法92条の選挙供託制度は、無産政党ないし無産者の議会への進出を抑制することを真の目的として導入され、現在に至るまでその目的のもとで存続してきたものであるから、公共の利益の確保とは何ら関係がない。[12] 해당 기사의 2번째 페이지에 있는 내용.[13] 학창 시절에 말수가 적고 얌전한 우등생이었고 겉보기에는 정상적인 인물로 보였다는 점은 아베 신조 피살 사건의 범인 야마가미 데쓰야와 비슷하다. 다만 기무라의 집안은 아버지가 강압적이었다는 증언이 있어 방향성은 다르지만 야마가미처럼 가정 문제가 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런 류의 레파토리는 이런 사건이 일어나면 으레 따라오는 것으로, 사실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다만 우파에 반한 성향인 야마가미와 달리 좌파에 친한 성향인 등 정치적 견해는 상당히 차이가 크다.[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