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5-04-16 20:15:43

권상경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자 / 호 정부(正夫) / 석당(石堂)
본관 안동 권씨[1]
출생 1890년 9월 21일
경상도 안동대도호부 춘양현 의양리
(現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2] 233번지[3])
사망 1958년 7월 15일 (향년 67세)
경상북도 봉화군
묘소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 운곡마을
상훈 대통령표창 추서

1. 개요2. 생애

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조선 명종병조판서를 지낸 권벌의 13대손이다.

2. 생애

1890년 9월 21일 경상도 안동대도호부 춘양현 의양리(현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에서 아버지 권철연(權喆淵, 1874 ~ 1951. 7. 22.)과 어머니 진주 강씨(1870 ~ 1898. 5. 18.)[4] 사이에서 4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권철연은 1888년(고종 25) 식년 생원시에 3등 173위로 입격하였던 인물로, 이때문에 봉화군 일대에서는 '권 진사'로 주로 불렸다. 외조부 강심(姜鐔, 1837 ~ ?) 또한 1876년(고종 13) 식년 생원시에 2등 25위로 입격하였다.

1925년 김창숙만주내몽골 지역의 황무지를 개척하고 그 수익으로 무관학교를 설립하는 한편, 만주에 있는 조선 청년들로 하여금 무기를 훈련하여 마침내 독립을 이루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이에 필요한 자금 20만원을 조선에 들어와 경상도의 부호들에게 거두기로 했다.

김창숙은 그해 6월 말 베이징을 떠나 조선에 들어왔고, 그해 10월 권상경을 찾아왔다. 이때 권상경은 김창숙의 자금 권유에 응하여 총 1,000원의 군자금을 제공했다가, 1926년 5월 9일 경상북도경찰부에 체포되었다.

그 뒤 고초를 겪다가 출옥하여 은거하다가, 1958년 7월 15일 별세했다.

2005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1] 복야공파(僕射公派) 충정공파(忠定公派) 두광(斗光)계 33세 상(相)자 항렬이다. 다음은 출처 사진이다. 파일:충정공파 항렬표.png[2] 안동 권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권재호·권태규도 이 마을 출신이다.[3] 이 지번 인근인 235번지에는 아버지 권철연(權喆淵, 1874 ~ 1951. 7. 22)의 자택인 의양리 권진사댁이 있다. 이 고택은 현재 경상북도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4] 강심(姜鐔, 1837 ~ ?)의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