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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18 18:06:38

구옥희

<colbgcolor=#004494><colcolor=#ffffff> 구옥희
具玉姫|Ku Ok-hee
파일:구옥희 프로필.jpg
출생 1956년 8월 1일
경기도 연천군
사망 2013년 7월 10일 (향년 56세)
일본 시즈오카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연천고등학교
신체 162cm
종목 골프
데뷔 1978년 5월 26일 KLPGA 입회
상훈 체육훈장 맹호장 (2013)[1]

1. 개요2. 선수 경력3. 사망4. 기록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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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1호 여자 프로골프 선수 중 한 명. 한국 여자골프의 역사를 연 선구자이자 대모로 숱한 기록을 남긴 레전드 골프 스타다. 1990년대 이후 골프를 알게 된 이들은 박세리를 한국 여자골프의 선구자로 인식하지만 박세리보다 앞서서 세계 무대에서 한국 골프의 존재감을 알린 스타가 구옥희다.

2. 선수 경력

2.1. 1970년대

1956년 경기도 연천에서 태어난 구옥희는 어린 시절 부모를 모두 여의고 오빠들 밑에서 자랐다. 학창시절 육상 선수로 뛰기도 했던 구옥희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1975년 경기도 고양군(現 고양시)의 6홀짜리 골프장에서 캐디로 일하면서 골프와 인연을 맺었다. 그러다 홀로 독학으로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고 자신만의 스윙 궤도를 연구해서 골프 연습에 매진했다. 그 결과 엄청난 실력을 뽐내게 됐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골프 선수로 아예 나가보라는 추천을 받게 된다. 특히 중학생 시절 투포환 선수를 하고 고등학생 시절 장거리 육상 선수로 뛰며 단련된 몸 덕분에 남들보다 드라이버 티샷이 몇십 미터는 훨씬 앞에 떨어졌다고 한다.

마침 1976년부터 "여자 골프선수도 키워보자"는 여론이 서서히 나오기 시작했고 결국 1978년 5월 경기도 양주군 로얄컨트리클럽에서 사상 최초로 여자 프로골프 선수를 선발하는 프로 테스트를 개최했다. 구옥희는 이 테스트에 참여해 강춘자, 한명현, 안종현 등과 함께 합격하면서 국내 최초의 여자 프로골프 선수가 됐다. 회원번호는 테스트 결과에 따라 강춘자가 1번, 한명현이 2번, 구옥희가 3번, 안종현이 4번을 받았다.

그리고 1979년 열린 쾌남 오픈에서 역사적 첫 승을 거두며 전설의 역사가 시작됐다.

2.2. 1980년대

구옥희는 1980년부터 오란씨오픈, 쾌남오픈, 부산오픈, 수원오픈, KLPGA 선수권대회 등 그 해에 열린 모든 대회를 전부 석권하는 기염을 토한다. 국내 여자 프로골프 선수의 숫자가 지극히 적었던 시절이긴 하지만 54~72홀 규모의 단일 대회에서도 우승하기 힘든 골프 종목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전관왕은 그야말로 대단한 기록이었다. 구옥희는 1980년부터 1981년 6월까지 무려 7개 대회를 연속으로 우승하는 신기원을 이룩한다. 구옥희는 1982년까지 불과 3년여 만에 국내 무대에서 무려 15승을 휩쓸면서 가히 무적의 입지를 구축한다.

27세가 된 1983년에는 평소 알고 지내던 재일교포의 권유로 일본여자프로골프인 JLPGA 진출을 꾀한다. 국내에서는 더 이상 이룰 것이 없을 정도로 최정상의 기량을 뽐냈던 만큼 우리보다 골프의 역사가 앞선 일본에서 활약하면 더 좋은 선수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구옥희는 일본에서도 프로 테스트를 가뿐히 통과했고 1984년에는 미즈노컵 신인프로골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마침내 JLPGA 진출 3년차였던 1985년 기분레이디스 클래식 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을 시작으로 그 해에만 3승을 따내며 일본 골프계의 신성으로 떠오른다.

일본에서 승승장구하던 구옥희는 세계 골프의 주무대인 미국으로 발길을 돌린다. 1985년 10월 미국프로골프협회 프로 테스트를 당당히 통과했고 마침내 1988년 3월 LPGA 투어 대회인 스탠더드 레지스터 터콰이즈 클래식에서 한국 여자골퍼로서는 최초로 우승컵을 들어올린다. 그러나 이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의 골프 인기는 그다지 높지 않았고[2] 더구나 서울 올림픽 준비에 온 나라의 관심이 쏠렸던 시점이라 구옥희의 존재감은 선명하지 못했다.

그래도 꿋꿋이 한국, 미국, 일본을 오가면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2.3. 1990년대 이후

1990년대 구옥희는 주로 일본 무대에서 활약했다. 1990년 벤 호건 & 이츠키 클래식 우승을 필두로 10년간 12승을 쓸어담는 등 40대가 된 이후에도 꾸준히 프로 대회에 출전했다. 아울러 수많은 한국인 여자 골퍼들이 일본 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해주기도 했다.

2004년 12월에는 그동안 한국 여자골프의 선구자로서 활약했던 공을 인정해 KLPGA 명예의 전당 1호 헌액자로 입회했고 2005년에는 서클K선크스 레이디스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한-미-일 통산 44승의 위업을 쌓았다. 2011년에는 KLPGA 11대 회장에 취임했으나 절차상 문제로 회장직을 오래 유지하지 못하고 물러났다.

3. 사망

2013년 구옥희는 JLPGA 프로 테스트 준비를 하던 자신의 조카와 조카의 친구들을 도와주기 위해 일본 시즈오카에서 지냈다. 그러던 중 7월 10일 아침 유독 피로감을 느낀 구옥희는 조카와 라운딩을 하지 않고 숙소에 남았다. 그리고 조카가 라운딩을 나간 사이 숙소에서 쓰러졌고 세상을 떠났다. 사망 원인은 심장마비였는데 평소에도 저혈압 증세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향년 57세.

대한민국 정부는 한국 여자골프 역사의 선구자로서 큰 공을 세운 고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체육훈장 맹호장을 사후 추서했다.

4. 기록

5. 여담



[1] 사후 추서[2] 대한민국에서 골프가 어느 정도 대중화의 길을 걷게 된 것은 박세리가 세계를 제패한 1990년대 후반 이후의 일이다.[3] 단일 대회 3연패 기록은 이후 박세리, 강수연, 김해림 등 3명이 더 기록했고 박민지가 셀트리온 퀸즈 마스터스 대회를 2021년부터 2024년까지 4년 연속 제패하면서 새로운 기록이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