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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2 07:50:52

교향곡 제6번(쇼스타코비치)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번 f단조 2번 B장조
'10월 혁명에 바침'
3번 E♭장조
'5월 1일'
4번 c단조 5번 d단조
6번 b단조 7번 C장조
'레닌그라드'
8번 c단조 9번 E♭장조 10번 e단조
11번 g단조
'1905년'
12번 d단조
'1917년'
13번 b♭단조
'바비 야르'
14번 15번 A장조


정식 명칭: 교향곡 제6번 B단조 작품 54
(Sinfonie Nr.6 h-moll op.54/Symphony no.6 in B minor, op.54)

1. 개요2. 곡의 형태3. 초연과 출판4. 평가

1. 개요

쇼스타코비치의 여섯 번째 교향곡. 전작인 5번의 성공과 함께 그 동안 당했던 온갖 비난에서 그럭저럭 자유롭게 된 시기의 작품인데, 작곡자 개인의 자유는 둘째 치고 서유럽에서는 히틀러 집권 하의 나치 독일폴란드를 침공하며 제2차 세계 대전을 개시한 때와 묘하게 맞물려 있다.[1]

5번 초연 이후인 1938년 9월에 쇼스타코비치는 한 음악 잡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의 시를 가사로 한 독창, 합창과 대규모 관현악이 요구되는 교향곡을 쓰고 있다. 곡의 제목은 시의 표제를 따라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이 될 예정이다." 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그 뒤 발표된 이 곡이 비교적 간결하고 순음악적인 기악 교향곡이 되었음을 볼 때, 모종의 이유로 도중에 계획이 변경되거나 아니면 초안이 파기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2. 곡의 형태

고전적인 교향곡 형식의 테두리 안에서 작곡한 5번과 달리, 여기서는 3악장 구성이며 개별 악장의 형식까지 기존의 것과 많이 벗어난 형태를 다시금 취하고 있다. 하지만 5번 이전의 교향곡들처럼 완전히 파격적이고 전위적인 형태를 취하지는 않았고, 전곡의 마무리도 (표면적으로는) 대단한 환희와 흥분 속에 끝나도록 계산했기 때문에 큰 비판을 받지는 않았다.

1악장은 템포가 매우 느린 라르고(Largo)로 지정되어 있고, 전곡의 절반 이상인 13~18분 가량의 연주 시간을 요할 정도로 매우 비중이 큰 대목이다. 비올라와 첼로가 비교적 우아한 곡선을 그리지만 다소 우울한 느낌의 첫 주제를 켜면서 시작되고, 이어 팀파니의 트레몰로와 함께 바이올린이 옥타브로 매우 강렬한 인상의 부주제를 얹어놓는다. 이것이 악기 편성을 달리 하고 다소 변형되어 한 차례 더 반복된 뒤, 강렬하게 연주되었던 바이올린의 부주제가 첫머리 주제와 섞여 부드럽게 연주된다.

이 선율은 곧 목관악기들과 피콜로 독주로 이어지며 차츰 규모가 커지고, 트럼펫 독주가 첫머리 선율을 세게 불면서 첫 번째 클라이맥스가 형성된다. 여기까지가 첫 번째 섹션이고, 이 흐름이 다시 안정되고 나면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코랑글레가 새로운 선율을 연주하며 두 번째 섹션이 시작된다.

코랑글레에 이어 플루트를 비롯한 목관악기들의 솔로로 반복된 뒤, 한 차례 또 긴장감이 조성되며 작게 클라이맥스가 조성된다. 하지만 거의 훼이크나 마찬가지고, 이내 다시 조용한 분위기로 돌아가 코랑글레 선율이 클라리넷 한 쌍과 오보에, 코랑글레, 플루트 한 쌍 등 여러 목관악기들에 의해 조금씩 변형되며 계속 이어진다. 이 분위기는 한 동안 계속되며, 첼레스타의 여린 트릴을 배경으로 호른이 연주하며 마무리된다.[2]

두 번째 섹션 이후에는 악장 첫머리의 선율을 바이올린이 연주하며 재현부 느낌을 주지만, 역시 제대로 재현되지는 않고 느낌만 주는 형태로 상당히 간략하게 축약되어 있다. 베이스클라리넷과 바순이 자유롭게 가락을 변주시킨 뒤 종결부로 이어지며, 거의 사라지는 듯이 고요하게 마무리된다.

2악장은 일종의 스케르초인데, 템포가 꽤 빠르고 강한 해학성을 보이지만 기존 스케르초 형식과는 상당히 다르게 구성되어 있다. 피콜로클라리넷이 다소 신랄한 느낌의 첫 주제를 연주하며 시작되고, 첫 주제에서 파생된 동기가 끊임없이 등장하면서 한 차례 클라이맥스가 형성된다.

중간부에서도 첫 주제의 변형과 확장, 단축형 등으로 응용된 선율들이 단편적으로 짜맞춰지는 형태로 구성되는데, 사실상 중간부라기 보다는 일종의 변주곡 형식을 응용한 셈이다. 이 짧은 변주 토막들이 점차 고조되고, 여러 타악기들이 첨가되어 상당히 거칠게 몰아붙여져 이 악장의 진짜 클라이맥스로 이어진다.

팀파니의 강한 독주로 마무리되고 나면 다시 첫머리로 돌아가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는데, 피콜로클라리넷이 연주했던 선율을 이번에는 베이스클라리넷이 받고 플루트가 그 선율을 거꾸로 뒤집은 형태로 듀엣을 연주한다. 미술데칼코마니에 해당되는 기법인데, 잠깐 지나가는 대목이기는 하지만 형식미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꽤 흥미로운 대목일 듯. 이어 지금까지 나왔던 여러 선율들이 파편화되어 띄엄띄엄 연주되며, 조용하면서도 재치있는 짧은 종결구로 마무리된다.

마지막 3악장은 템포를 더 땡겨서 프레스토(Presto)로 내달리는데, 바이올린이 상투적인 행진곡풍 선율을 빨리 돌린 듯한 첫 주제를 연주하며 시작된다. 이후에 제시되는 부주제도 비슷하게 매우 경쾌하고 풍자적인 맛을 강하게 내비치는데, 중간부에서는 박자가 변하고 템포가 약간 느려지면서 3박 단위로 다소 투박한 분위기로 전환된다. 금관악기와 실로폰과 탬버린 등이 더해지면서 점차 텐션이 강해지고, 팀파니와 심벌즈, 베이스드럼, 스네어드럼 등의 연주와 함께 꽤 거친 절정부가 주어진다.

흥분이 진정되고 나면 마디 단위로 박자가 계속 바뀌며 약간 기우뚱거리는 듯한 이행부가 관악기 솔로와 바이올린 독주로 이어지고, 다시 악장 첫머리의 경쾌한 바이올린 선율로 돌아온다. 물론 이것도 고전적인 의미의 재현부보다는 훨씬 간략하게 단축된 형태고, 그러면서도 그 안에서 계속 변주가 이루어지고 있어서 일종의 발전부 스타일로 볼 수도 있다.

이어 베이스드럼과 심벌즈, 트라이앵글이 작게 연주하는 가운데 목관악기들에 의해 행진곡 또는 폴카 스타일로 경쾌하지만 다소 장황하게 진행되는 종결부가 나오는데, 거의 '말달리자 스타일' 로 종잡을 수 없이 빠르게 몰아대면서 상당히 소란스럽게 전곡이 마무리된다.

악기 편성은 피콜로/플루트 2/오보에 2/코랑글레/피콜로클라리넷/클라리넷 2/베이스클라리넷/바순 3(3번 주자는 콘트라바순을 겸함)/호른 4/트럼펫 3/트롬본 3/튜바/팀파니/트라이앵글/베이스드럼/스네어드럼/심벌즈(서스펜디드 심벌을 겸함)/탐탐/탬버린/실로폰/첼레스타/하프/현 5부(제1바이올린-제2바이올린-비올라-첼로-콘트라베이스).

클라리넷족 악기들만 네 대를 쓰는 변칙 3관 편성인데, 첼레스타의 경우 1악장 후반에만 잠깐 등장한다. 개별 주자 혹은 한 쌍으로 목관 솔로나 듀엣이 꽤 많이 나오는 편인데, 그 때문에 실력 좋은 관악기 연주자들이 많은 관현악단의 연주력을 평가하기 좋은 곡이라는 견해도 있다.

3. 초연과 출판

1939년 11월 5일에 레닌그라드에서 초연되었는데, 5번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예브게니 므라빈스키 지휘의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담당했다. 한 달 뒤에는 모스크바에서도 연주되었고, 1년 뒤인 1940년 11월에는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 지휘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연주로 미국 초연도 행해졌다. 공식 출판 악보는 독소전쟁이 코앞이던 1941년에 소련 국립음악출판소에서 간행되었다.

4. 평가

5번과는 달리 꽤 기존 형식과 거리가 멀게 작곡되어 있고, 템포가 매우 느린 1악장-비교적 빠른 2악장-매우 빠른 3악장 식으로 설계되어 동양 예술의 구성 원리인 서-파-급 3단계를 응용했다는 시각도 있다. 쇼스타코비치 자신은 초연 후 '봄과 기쁨, 생명의 약동하는 분위기를 표현하려고 했다' 고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꽤 암울하고 비관적인 1악장의 비중이 너무 크고, 2악장과 3악장은 진정한 의미의 절정과 대단원이라기 보다는 지나치게 밝고 소란스러운 느낌을 준다는 비판도 있었다. 이 비판을 좀 극단적으로 몰고 가 '일부러 저속하고 시끄럽게 곡을 몰고가 스탈린 독재 정권의 정신병적인 개인 숭배 분위기를 풍자했다' 고 보는 견해까지 있을 정도.

쇼스타코비치가 도가 지나친 재미를 추구했다고 보던, 아니면 그 광란에 가까운 환희로 소련 체제의 부조리를 간접 공격했다고 보건 간에, 마지막을 거의 미친듯이 쓸어내달리는 분위기 때문에 잘만 연주하면 분명히 환호를 받을 수 있는 곡이다. 하지만 워낙 논쟁 거리가 많은 5번, 독소전쟁 중 작곡된 대작인 7번 사이에 있다는 이유로 종종 '가볍게 지나가는 과도기적 작품' 정도로 취급받기도 한다. 대선배인 베토벤의 홀짝수 교향곡 징크스와도 비슷한 사례.


[1] 게다가 폴란드는 쇼스타코비치의 할아버지가 살던 곳이기도 했다. 폴란드계 러시아인이었던 쇼스타코비치도 아마 독일군의 폴란드 침공 소식을 듣고 뭔가 반응을 했을 것이 분명했을 듯.[2] 이 호른 악구는 대선배인 구스타프 말러의 대지의 노래 중 마지막 악장인 '고별' 의 선율을 차용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