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후백제의 장수.후백제의 인물들 중에서 견훤, 상귀, 상애와 함께 구체적으로 군공이 확인되는 몇 안되는 장수 중 하나이다. 이후 고려가 승리하면서 후백제 측 인물들의 행적은 너무 간략하게 기록되었는데다가 고대에 남은 기록 자체가 그다지 많지 않은 판이라...
2. 행적
928년 견훤의 명을 받은 관흔은 양산[1]에 성을 쌓는데 이에 왕건은 왕충을 보내 공격하려 한다. 이에 관흔은 신속하게 군사를 우회하여 대야성을 점령하고 이어 대목군에서 식량을 확보한후 오어곡(부곡성)에 주둔해 죽령 지방까지 장악한다. 거의 한반도 중부지방을 가로지르는 신속한 행보를 보인 것만 봐도 관흔의 왕충 유인 및 이로 인해 수비가 빈약해진 남부지방의 빈틈을 찌르는 작전이 미리 치밀하게 준비되었음을 알 수 있다.3. 인지도
위에 그의 행적을 보면 대야성을 재탈환하고 이어서 죽령 지방을 장악해 고려군의 진로를 차단한다는 기록만 보자면 후백제 장수들 중 전공이 단연 뛰어나다 할 수 있다. 허나 인지도가 상귀, 상애와 비교해도 매우 딸린다. 후삼국시대에 나름 관심있는 역사학도들도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다.이렇듯 혁혁한 군공을 세웠음에도 인지도가 이리 적은 건 드라마 태조 왕건의 책임이 크다. 신덕, 애술에게 밀리지만 등장을 하긴 하는 상귀와 달리 관흔은 본 드라마에서 단 한 번이라도 출연이 없을 뿐 더러 언급도 되지 않는다. 태조 왕건에서 후백제군의 용장으로 나오는 인물들은 수달(능창) 같이 견훤과 관련이 있다는 기록이 없는 독자적 세력을 가진 해적이거나[2] 추허조, 최필, 애술 같이 고려군에 잡히거나 항복한 기록밖에 없는, 즉 장수로서 어땠는지 알 수 없는 이들 일색이라 정작 대공을 세운 관흔이 빠진게 더욱 아쉬움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