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9-06 11:45:11

고용석

1. 장성군 출신 독립운동가, 고용석2. 서귀포시 출신 독립운동가, 고용석

1. 장성군 출신 독립운동가, 고용석

<colbgcolor=#878787><colcolor=#ffffff> 성명 고용석(高龍錫)
본관 제주 고씨[1]
생몰 1895년 1월 5일 ~ 1950년 8월 20일 (향년 55세)
출생지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 모현리
사망지 전라남도 장성군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clearfix]

1895년 1월 5일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 모현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고경명의 14세손으로, 항상 나라를 잃은 것을 서러워했다고 한다. 1919년 고종의 인산일에 참석하려 서울에 상경했다가 3.1 운동에 참가했고, 고향으로 돌아와 동지를 규합해 4월 3일 화전놀이를 핑계로 모현리 평촌초당에서 주민들을 결집시키고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후 대형 태극기를 앞세워 2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행진하며 독립만세를 고창했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3.1운동 동지회인 영춘회를 구성해 활동했으며, 신간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1950년 8월 20일 장성군에서 사망했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고 1997년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2. 서귀포시 출신 독립운동가, 고용석

<colbgcolor=#878787><colcolor=#ffffff> 성명 고용석(高用錫)
생몰 1866년 9월 8일 ~ 1928년 9월 25일 (향년 62세))
출생지 전라도 대정현 중문동
사망지 제주도 대정면 중문동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clearfix]

1866년 9월 8일 전라도 대정현 중문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농업에 종사하다가 1918년 10월 법정사 승려 김연일강창규 등이 주도한 항일 운동에 참가했다. 김연일은 포교 활동을 하며 신도들에게 배일사상(排日思想)을 고취시키고, 무력에 의한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고용석 등 신자들은 1918년 10월 5일 김연일을 불무황제(佛務皇帝)로 옹위하고 도대장(都大將) 이하 군직(軍職) 체제로 조직을 편성한 뒤, 제주도 내의 일본인 관리의 처단과 일인의 도외(島外)로의 구축을 행동 방침으로 정하여 무력에 의한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그러나 이들은 곧이어 출동한 일본군에 의해 이틀만에 체포되고 말았고, 고용석은 1919년 2월 4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소요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대정면에서 조용히 지내다 1928년 9월 25일에 사망했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고 2008년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1] 장흥백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