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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9 23:54:04

고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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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저서4. 여담

1. 개요

대한민국의 고전평론가.[1]

2. 생애

1960년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조동리 함백마을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광산촌에서 자랐지만, 공부를 지상 최고의 가치로 여기신 부모님 덕분에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할머니, 부모님, 3남매에 삼촌, 고모까지 9식구가 한방에 살았던 가난한 환경에서 일찌감치 인간의 희로애락을 보았고, 왜 세상에 이렇게 고난이 많은지 고민하며 교회를 찾았다고 한다. 1978년 고려대학교에 진학할 때까지 독실한 개신교인으로 살았다고 한다.

대학교에서의 전공은 독어독문학이었다. 하지만 대학(고려대) 4년 때 우연히 참가한 고전문학 강의에 매료되어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하여 고전문학을 전공했다. 고려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과에서 석사학위[2]와 박사학위[3]를 취득하였다.

1998년부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박태호 교수[4]와 함께 연구공동체[5] '수유 + 너머'를 결성하였다. 수유리의 작은 공부방에서 소수의 국문학 연구자들로 시작된 모임이 서울사회과학연구소[6] 출신의 사회과학 전공자들과 결합해 당대 제일의 연구공동체로 성장하였다. 이곳에서 수많은 연구자들과 공동으로 강연 및 집필활동을 하였다. 소모적인 교수 임용에 매달려 ‘정력탕진’하느니 경제적 자립과 배움이 가능한 ‘열린 광장’을 만들겠다는 꿈을 현실화한 셈이었다. 다소 독설가 기질이 있어서 '수유+너머' 내에서도 '고마녀'라는 별명으로 불리었다. 그러다가 2010년 경 '수유 + 너머'를 탈퇴하였다. 현재는 남산 자락에 있는 '감이당'에서 활동하고 있다.

3. 저서

저서로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나비와 전사》, 『이 영화를 보라』,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윤선도 평전』, 『두개의 별 두개의 지도 : 다산과 연암 라이벌 평전 1탄』,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삶과 문명의 눈부신 비전 열하일기』,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 사주명리학과 안티 오이디푸스』,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 : 동의보감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 《낭송의 달인, 호모 큐라스》 등이 있다.

4. 여담

Q) 이런 이야기(공부로써 자립한다)조차 버거워하는 빈곤한 사람들이 많다. 앞서 최고의 생존전략으로 제시한 공동체가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미숙) 그런 설정 자체가 교만이라고 본다. 물론 불치병 같은 절대 빈곤은 사회적으로 공동의 과제다. 하지만 돈이 없어 공부할 수 없다는 등의 물질적인 빈곤의 문제는 아니다. 정말 가난해서 할 수 없는지 묻고 싶다. 약자니까 내가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권위와 주인의식이 생긴다. 받는 사람 역시 부담스럽다. 책임이나 동정을 가질 필요는 없다.
라는 발언을 하는데, 60년대 생 고미숙의 사회상은 여전히 70~80년 대의 경제발전시기에 머물러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무한경쟁을 빠져나오려면 각자 알아서 공부하고 '노오력' 하라는 말 아닌가. 절대빈곤은 사회적 공동과제라면서 거기에 대한 해결은 청년 개인에게 책임 전가를 하고 있다. 더불어 최근 기본소득 문제가 논의되는 와중에 '청년은 약자가 아니니까 도와줄 필요 없다'는 발언은 복지에 대한 전무한 지식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런 논리라면 청년 일자리정책이나 기본소득 논의, 나아가서는 장애인 복지 등의 문제도 "그들을 약자로 보는 시각은 교만이다, 따라서 그런 복지정책은 필요 없다." 라는 논리와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사실 절대빈곤에 빠진 사람들이 해야 하는 것은 공부가 아니라 이다. 당장 먹고 사는 게 위협받는 상황에서 그 사람들은 공부를 하지 않는다. 청년들이 무한경쟁에 빠져드는 이유는 상대빈곤이나 낮은 신분에 빠지지 않다거나,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자본과 권력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공부'가 청년 개개인의 삶을 파탄내고 우울과 권태에 빠지게 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 고미숙의 요지이다. 사실 취업을 위해 공부하는 청년들의 대부분은 부모님의 지원을 받아 대학 등록금을 내고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는 상태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다. 배고픔을 모르는 자들이 가난을 얘기해봐야 공한 얘기만 돌 뿐 아니겠는가?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의 저자 임승수 작가도 페이스북에 고미숙을 비판하는 글을 썼는데, 고미숙의 부족한 노동감수성을 지적했다.
내가 설마설마해서 세바시 고미숙 씨 편을 찾아 다 들었다. 자유주의, 아나키즘, 봉건성, 공상적 유토피아니즘, 전근대성, 노동에 대한 천시, 엘리트주의... 이 모든 것이 짬뽕이 되니 '전 인민의 백수화'가 탄생한다. 고미숙 씨는 자신이 맘 편하게 책 쓰고 강의하며 유유자적하는 것이 노동자들이 공장 컨베이어벨트에 매여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있는 듯하다. 자신이 책 쓰고 강의하고 놀면서 먹는음식 입는 옷은 누군가가 뺑이치며 노동하고 있기 때문에 세상에 나올 수 있는 물건 들인데..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0204112118228448&id=1390105126

(임승수 작가 페이스북)


[1] 고전평론가는 그가 만든 직업이다. ‘우주 유일의 고전평론가’라는 닉네임을 갖고 있다.[2] 석사 학위 논문 : 조선후기 평민가객의 문학적 지향과 작품세계의 변모양상[3] 박사 학위 논문 : 19세기 시조의 전개 양상과 그 작품 세계 연구 : 예술사적 흐름과 관련하여[4] 1980년대 이진경이란 가명으로 <사회구성체와 사회과학방법론>(일명 사사방)을 출판해서 학계와 민주화운동세력에 엄청난 회오리를 불러 일으킨 사람이다.[5] 성령충만한 인문학 덕후 공동체라 불리기도 하였다.[6] 1980년대 후반 서울대학교 82학번들이 중심이 되어서 활동했던 연구집단으로 학생운동 PD그룹의 이론적 근거지였다. 위에 언급된 이진경 외에 조국, 진중권 등이 핵심멤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