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997년 10월 고등학교 씨름선수의 떼강도로 한국을 온통 충격과 공포로 빠뜨린 사건. 참고로 모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팔씨름왕의 상습절도 및 강도상해 사건과는 전혀 다른 사건이다.2. 전개
시간은 1997년 9월 23일로 거슬러 올라간다.서울특별시 성북구 길음3동의 주택가도로에서 행인이 3인조 강도에게 폭행당했는데 때마침 현장에 있던 서울 H고등학교 김모군(당시 18세, 이하 '김군' 이라고 칭함)[1]이 이들 중 1명을 붙잡아 경찰에 넘겼으며 공범 2명은 달아나다가 자수했다.
강도를 붙잡은 김군은 전국 씨름 선수권 대회에서 고등부 6관왕을 차지한 씨름왕으로 용감한 시민 표창까지 받아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3. 반전
그런데 고교 씨름왕의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반전 사건이 일어났다.같은 해 8월 23일, 서울 H고등학교[2]의 씨름부 선수 11명의 집단강도 혐의가 드러나 그들 중 9명이 10월 9일에 구속 기소되었는데 아직 검거되지 않은 2명 중 1명이 바로 그 고교 씨름왕이었다. 당시 김군은 창원에서 열리는 전국체전에 서울지역 대표로 씨름 종목에 참가 중이었다. 결국 자신의 수배 소식을 들은 김군은 대회를 기권하고 다음날 서울로 올라가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이 소식이 언론에 보도되자 온 나라가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강도를 잡아 표창장까지 받은 사람이 알고 보니 강도였다니 믿어지겠는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강도 행위를 하면서 취객을 살해했다는 의혹이 나중에 제기되었다. 하지만 별다른 혐의점을 찾지 못하여 김군에 대해서는 강도치사 혐의가 적용되지 않았다.
김군을 조사했던 경찰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체육에 소질이 있는 학생을 운동기계로 만드는 교육 풍토가 잘못됐다고 한다.
어쨌거나 김군은 강도를 잡고 나서는 선하게 살고자 했으나 이미 저지른 강도죄의 죗값을 치러야 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4. 신문 기사
- 김군이 강도를 잡아서 경찰서에 넘겼을 당시의 기사
- 나중에 김군이 떼강도에 가담한 혐의가 드러났을 때의 기사
- 김군이 강도혐의를 자수했을 때의 기사
- 폭행치사까지 드러났을 때의 기사
- 하지만 재조사 결과 강도치사 혐의점은 못 찾아 김군에게는 강도치사 혐의가 제외되었다는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