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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18 16:48:12

계경찬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창씨명 케이탄 케이산(桂丹景燦)
이명 계추림(桂秋林)[1], 계선화(桂善化)
본관 수안 계씨[2]
출생 1912년[3] 2월 17일
평안북도 선천군 군산면 대목리
(현 평안북도 선천군 장공리)
사망 미상
미상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202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1912년 2월 17일 평안북도 선천군 군산면 대목리(현 선천군 장공리)에서 독립유공자인 아버지 계창림과 어머니 평산 신씨(1896 ~ ?)[4] 사이에서 1남 1녀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적 만주로 이주하여 농업에 종사하다가 1933년 4월 만주국 봉천성 관전현(寬甸縣) 제3구(第三區) 우모오촌(牛毛塢村)[5]에 거주하면서 조선혁명군에 가입하였으며, 참사(參士)로서 관전현과 환인현(桓仁縣)[6] 두 현을 넘나들면서 독립운동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했다. 그 해 8월 27일[7] 밤에는 전에 조선혁명군의 총기를 탈취했다가 근래 항일 반만군(反滿軍)으로 전향한 관전현 이차성구(裡岔城溝)[8]의 중국인 12명을 습격하여 러시아식 장총 9정과 탄환 150발, 아편 등을 빼앗고 이틀간 인질로 잡아 300원을 모금하였다.#

1934년 9월 23일[9]에는 무기 탈취를 위해 만주국 경찰관이 탄 자동차 3대를 습격하였으나 곧 경찰의 지원대가 뒤따르자 도주하여 몸을 숨겼다. 그러나 결국 1936년 5월 체포되었으며, 그 해 6월 15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강도살인미수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

202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1] 중국에서 활동할 당시 사용한 가명이다.[2] 대목파 20세 찬(燦) 항렬. 족보명은 계인찬(桂仁燦).[3] 수안계씨족보 상권 대목파 890쪽에는 1913년생으로 기재되어 있다.[4] 신형규(申亨奎)의 딸이다.[5]중화인민공화국 랴오닝성 단둥시 콴뎬만주족자치현(寬甸滿族自治縣) 니우마오우진(牛毛塢鎭).[6] 현 중화인민공화국 랴오닝성 번시시 환런만주족자치현(桓仁滿族自治縣).[7] 음력 7월 7일.[8] 현 중화인민공화국 랴오닝성 단둥시 콴뎬만주족자치현 리바차구(裡八岔溝).[9] 음력 8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