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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18 05:35:59

경림(후한)

1. 개요2. 일생3. 대중매체

1. 개요

耿臨

생몰년도 미상

후한 말의 인물.

2. 일생

현도 태수로 167년에 공손역이 현도 태수인 것으로 볼 때 그의 후임인 것으로 보이며, 168년에 고구려를 공격해 군사 수백 명을 죽였고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이 때 신대왕이 항복하기를 청하고 현도에 붙기를 청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당나라 시기에 편찬된 책인 당대조령집에서 예맥을 고구려로 지칭하고 있는데, 후한서 효영제기에 따르면 이 해 12월에 선비와 예맥이 유주와 병주를 공격했다는 기사가 있어 경림의 공격을 신대왕이 물리치고 선비와 연합해 반격했다고 추측되고 있다.

170년에는 신대왕이 요동을 공격하자 경림이 이를 격파했고 172년 11월에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공격했지만 청야전술을 통한 지구전으로 군대가 굶주림에 지치면서 퇴각했는데, 명림답부가 수 천의 정예 기병을 이끌고 추격하자 좌원에서 격파되었다.

그 이후의 기록이 없는 것을 봐서는 패전 이유로 죽었거나 유배되어 역사속으로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3. 대중매체

소설 《우리나라 삼국지》에서는 왕정과 함께 고구려를 공격하러 왔다가 고구려 군사들이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서는 함정이 있을 것이라고 왕정에게 진언했지만, 왕정은 대군에 겁먹은 것이라 여겼고 경림은 척후병을 보내 환도산성을 살펴보게 했다. 왕정이 서둘러 공격하려 하자 말렸지만, 왕정이 무시하고 공격하다가 패하자 무모하게 공격했냐면서 천연의 요새라 쉽게 공략할 수 없다고 했다.

왕정이 또다시 출정하려고 하자 말렸고 경림은 군사를 나누어서 교대로 보내 고구려군을 살펴보았고, 왕정이 또다시 공격했다가 죽자 어리석은 자가 명을 재촉했다고 탄식했다. 한 달 넘게 포위했지만 성을 함락하지 못하고 식량도 떨어지려 하자 퇴각하며, 부장 두선에게 후방을 경계하도록 지시했지만 명림답부가 이끄는 군사들의 매복 공격을 받고 전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