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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3 23:23:10

걸프 오일

걸프 오일
Gulf Oil
파일:Gulf_Oil_logo.png
<colbgcolor=#ed6d34><colcolor=white> 정식 명칭 Gulf Oil
유형 공기업
분야 연료/윤활유
창립 1907년 1월 30일 ([age(1907-01-30)]주년)
합병 1985년 3월 15일 ([age(1985-03-15)]주년)
전신 걸프 정유사(Gulf Refining Company, 1907)
전임 소유사 멜런 가문(Mellon Family, 1901~1984)
후임 소유사 쉐브론 및 힌두자 그룹[1], 걸프 오일 LP
본사 미국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 걸프 타워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2. 역사
2.1. 대한민국과의 관계
3. 제품4. 스폰서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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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01년 미국 텍사스주 버몬트에서 걸프 정유사(Gulf Refining Company)의 설립으로 시작된 글로벌 오일, 윤활유 업체. 고품질의 신뢰할 수 있는 연료 및 윤활유 생산으로 빠르게 가치를 인정 받았으며 수십년동안 전 세계적으로 사업을 확장하여 국제 에너지 시장에서 거대 기업이 되었다.

2. 역사

1901년 텍사스의 스핀들탑에서 처음으로 오일이 발견되어 시작된 정유 사업으로 출발하였던 걸프에서 피츠버그의 투자자였던 멜런 가문이 유정 시추소를 건립하여 법인화했고 석탄을 상업적으로 판매하였다. 이에 이 사업으로 여러 정유소들이 생겨났으며 JM 거페이 페트롤륨 컴퍼니(Guffey Petroleum Company), 걸프 파이프라인 컴퍼니(Gulf Pipeline Company) 및 텍사스의 걸프 정유사 등, 여러 석유 기업들이 통합해 합병하였고 1907년에 걸프 오일 인터내셔널이 설립되었다.

1913년, 피츠버그에 자동차를 탄 채로 들어가서 주유할 수 있는 시설인 주유소를 개업하였으며 무료 도로 지도를 배포하였고, 페리 호수에서의 시추 및 촉매 분해 정제 공정, 항구에 세계 최초의 상업용 촉매 분해 장치를 설치하는 등 여러 혁신적인 방안들을 펼쳐나갔다.

1923년이 되어서는 전세계 정유소 중 가장 규모가 커졌으며 1924년에는 마라카이보 호수 동쪽 해안을 따라 폭 1.5km(0.93마일)의 얕은 물 띠에서 베네수엘라계 미국인 크리올 신디케이트의 임대권을 획득, 1926년 콜롬비아에서 Barco 석유 채굴권을 구입했다. 콜롬비아 정부는 같은 해에 채굴권을 취소했지만 많은 협상 끝에 1931년 다시 석유 채굴권을 획득했다. 그러나 생산 과잉 기간 동안 걸프는 더 많은 양의 석유 채굴권을 획득했지만 이는 주로 개발보다는 보유에 중점을 두었었다.

이후에도 걸프는 멕시코만, 캐나다, 쿠웨이트 등지에서 광범위한 탐사 및 생산 활동을 벌였고 쿠웨이트의 초기 석유 생산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1934년에 쿠웨이트 석유회사(KOC)가 당시 영국-페르시아 석유회사(APOC)로 불렸던 브리티시 페트롤륨(British Petroleum)[2]과 걸프의 합작 투자로 설립하였다. APOC와 걸프는 모두 해당 벤처에서 동일한 지분을 보유했고 KOC는 1930년대 후반 쿠웨이트 석유 탐사를 개척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전 세계적으로 걸프의 사업 영역이 확장되었다. 국제 시추 경험을 세계 다른 지역으로도 확대 및 활용했으며 1943년 중반에는 베네수엘라 동부 유전에서 메네 그란데 오일 컴퍼니(Mene Grande Oil Company)로 입지를 확립했다.그리하여 1941년 당시 미국 제조업체 순위에서 8위를 기록, 1979년에는 9위로 선정되어 세븐 시스터즈, 7대 정유회사 중 하나로 묶어 불리기도 했다. 걸프는 사업 확장 뿐만 아니라 제품 기술에 많은 투자를 했으며 특히 해양 및 항공 엔지니어링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많은 특수 제품(다양한 윤활유와 그리스 등)을 개발했다.

1970년경 개발의 정점에 도달했던 걸프 오일은 그 당시 매일 130만 배럴의 원유를 처리하고 65억 달러(현재 가치로 489억 8천만 달러) 상당의 자산을 보유했었으며 전 세계적으로 58,000명의 직원을 고용했고 주주 수는 163,000명에 달했다. 걸프는 석유 마케팅 관련 사업 외에도 석유화학제품, 플라스틱, 농약 제품의 주요 생산소였으며 자회사인 걸프 제너럴 아토믹(Gulf General Atomic, Inc.)를 통해 원자력 에너지 부문에서도 활동했지만 1970년대 중반 루마니아 원자력 발전소 건설 거래가 실패한 후 원자력 부문에 대한 활동은 포기했다.

Gulf는 또한 밀포드 헤이븐(Milford Haven)에 펨브로크 카탈리틱 크래커(Pembroke Catalytic Cracker) 정유소와 관련한 메인라인의 파이프라인 연료 유통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텍사코 등 다른 주요 업체들과의 파트너십에 참여했다. 하지만 수에즈 운하가 재개통되고 오래된 유럽 석유 터미널인 유로포르트(Europoort) 및 마치우드(Marchwood) 등이 업그레이드 됨에 따라 기대했던 재정적 수익을 얻지 못했다.

1970년대에 걸프는 영국 북해와 카빈다의 새로운 유전 개발에 참여했지만, 이는 쿠웨이트에 대한 걸프의 이익 손실을 결코 보상할 수 없는 고비용 작업이었다. 앙골라 내전 당시 카빈다의 석유 시설을 보호하기 위해 걸프는 용병 군대를 양성해야 했다. 1970년대 후반, 걸프는 아프리카의 소련 정권에 효과적으로 자금을 지원하고 있었고, 반면 미국 정부는 조나스 사빔비가 이끄는 UNITA 반군을 지원하여 해당 정권을 전복시키려고 했다.

1975년에 밥 도시(Bob Dorsey) 회장을 포함한 여러 걸프만 고위 임원들이 '불법적인 정치적 기부'에 연루되어 직위에서 물러나도록 강요당했다. 이와 관련하여 걸프의 운명이 결정적인 시기에 고위 인사를 잃은 것은 훗날의 합병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1980년, 걸프의 자본 규모는 거대하지만 실적이 저조한 자산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이는 주가 하락과 관련이 있었다. 걸프의 주식 시장 가치는 자산의 분할 가치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은 기업 침입자 들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었지만, 포춘 500대 기업 중 상위 100위 안에 드는 기업은 1980년대 초반에는 인수 위험이 없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걸프는 많은 기업 자산을 매각했고 1984년에 쉐브론에 합병되었다. 걸프와 쉐브론의 강제 합병은 과정이 이뤄짐에 있어 논란의 여지가 있었고, 미국 상원은 석유 산업 합병을 1년 동안 동결하는 법안을 고려하고 있었다.[3] 그러나 미국의 사업가이자 금융가, 헤지펀드 BP 캐피탈 매니지먼트의 의장이었던 토마스 분 피켄스 주니어(Thomas Boone Pickens Jr.)와 걸프의 CEO였던 제임스 리(James Lee)는 합병이 결렬되기 몇 달 전 상원에서 증언하기 위해 소환되었고 문제는 연방거래위원회(FTC)에 회부되었으며 FTC는 엄격한 조건에 따라 거래를 승인했다.

이후 1990년대에 미국, 스페인, 포르투갈에서의 걸프 브랜드에 대한 권리는 GOLP(Gulf Oil Limited Partnership)에서 소유하였으며 이외의 국가에서는 런던에 본사를 둔 GOI(Gulf Oil International)이 가지게 되었다.

1980년에서 2000년 사이에 걸프는 수직적으로 통합된 모놀리식 다국적 기업에서 비즈니스 이해관계가 연합된 네트워크로 발전했다. 이는 걸프 기업 전체에 높은 수준의 전략 및 운영 유연성을 제공했고 국제 비즈니스 경제의 근본적인 변화를 반영하는 움직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6년 3월에 걸프 MX는 멕시코에 자체 주유소를 건설할 것이라고 발표했으며, 이는 현지 회사 페멕스와 경쟁하기 위해 같은 해 7월에 운영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또한 기존 주유소 소유자에게 프랜차이즈를 제공하여 걸프 브랜드로 전환할 것이라고 한다.

2.1. 대한민국과의 관계

1962년 10월 13일 걸프와 합작으로 대한석유공사가 설립되었으며 1976년 걸프의 지분 50%를 제외한 나머지 주식 일부를 일반에 공개하였다. 그리고 1980년 12월, SK의 전신인 (주)선경이 대한석유공사의 주식 50%와 경영권을 인수하여 SK그룹의 계열사로 SK이노베이션이 되었다.

3. 제품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소비자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하도록 휘발유와 디젤에서 항공 및 해양 연료에 이르기까지 자동차, 선박 및 항공기에 동력 공급 에너지원을 제공한다.
걸프 오일은 포괄적인 에너지 관리 서비스, 기술 전문 지식 및 맞춤형 윤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맞춤형 솔루션을 산업 고객에게 제공한다. 운영 효율성을 최적화하고 가동 중지 시간을 최소화하며 산업 시설의 유지 관리 비용을 줄여 전반적인 생산성과 수익성을 향상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4. 스폰서십

4.1. 모터스포츠

1937년, 이라 베일(Ira Vail)과 해리 밀러(Harry Miller)의 레이스 카 프로젝트를 걸프 오일에서 구입하여 걸프 R&D 회사(Gulf Research and Development Company)에 가져오면서 레이스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 곳에서는 해리 밀러가 설계를 맡아 인디애나폴리스 500에서 레이스에 참가한 최초의 미드십 엔진 자동차가 된 혁신적인 신차를 생산했다. 당시 매우 참신했던 4륜 구동, 디스크 브레이크 및 6기통 슈퍼차저 엔진도 탑재되었으며 차량중에서 4대는 3리터 엔진으로 제작되었으며 한 대는 1938년 인디 500에서 공개되었지만 경쟁 가능한 수준까지 차를 만드는 데 필요한 많은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후 1939년 걸프-밀러가 제작한 차량 여러대 중에서 대부분은 레이스에서 부품 파손으로 탈락하거나 연습 세션에서 고장나는 등 팀이 철수하였고 1941년에는 두 대의 걸프 차가 참가 자격을 얻었지만 한 대는 레이스 당일날 아침에 차고 화재로 파괴되었고 다른 한 대는 레이스 초반에 탈락했다. 결국 걸프는 1946년에 이 차를 터커 모터스의 프레스톤 터커(Preston Tucker)에 팔았고, 터커는 그해 마지막 레이스에서 터커 토르피도 스페셜(Tucker Torpedo Special)로 이 차를 운영했다.

1960년대 ~ 70년대 초반 걸프는 존 와이어 오토모티브(John Wyer Automotive) 팀을 후원한 것으로 유명해 자동차 레이스와 연관성을 가장 잘 상징하는 브랜드로 유명해졌다. 이때, 걸프 리버리를 사용한 JW 엔지니어링의 미라지 GR8로 1975년 르망 24시를 우승했다. 포드 GT40포르쉐 917에 라이트 블루 및 오렌지 색상 투톤으로 구성된 리버리는 마티니, 말보로 리버리와 함께 가장 유명한 기업 후원 레이싱 색상 중 하나이며 걸프가 후원하는 다른 레이싱 팀에서도 복제되어 사용됐다. 걸프 리버리의 인기는 대부분 1971년 공개된 영화 '르망'에서 스티브 맥퀸의 캐릭터인 마이클 델라니(Michael Delaney)가 걸프 팀 소속으로 주행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맥퀸의 사망 이후 높아진 인기와 그가 영화에서 착용한 호이어 모나코(Heuer Monaco)의 인기가 높아짐에 따라 태그 호이어(TAG Heuer)는 걸프 로고와 트레이드마크 색상 구성을 갖춘 한정판 시계를 출시했다. 같은 시대에 걸프 오일은 브루스 맥라렌 시절의 팀 맥라렌을 후원했는데, 당시 맥라렌은 리버리 레터링에 걸프 블루와 파파야 오렌지 색상을 사용하였다.

합병 이후 걸프 오일은 사라졌지만 걸프 로고는 전 세계 다양한 기업에서 꾸준히 사용되고 있다. 걸프 오일 인터내셔널(GOI)는 이를 마케팅 활동에 사용하여 2019 시즌 모토GP의 아프릴리아 레이싱 팀 그레시니(Aprilia Racing Team Gresini)와 2020 시즌에 과거 오랜 파트너였던 포뮬러 1맥라렌 F1 팀 등의 모터 스포츠 팀 후원에 집중하고 있다. 그리고 맥라렌 오토모티브와 윤활유 공급업체로서 다년간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2023년 2월, GOI는 맥라렌에서 윌리엄스 레이싱으로 건너가 다년간의 파트너십을 발표했다.


[1] 걸프 오일 인터내셔널[2] 오늘날의 BP plc.[3] 이때 레이건 행정부가 이 문제에 대한 정부 개입에 반대하고 모든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