姜行經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고려의 인물. 강감찬의 아들이다. 고려사 강감찬 열전 말미에 이름이 기록되었지만, 그 외의 기록이 없어서 생애를 알 수 없다.2. 관련 기록
(중략) 강감찬은 성품이 청렴하고 검약하여 집안 살림을 돌보지 않았다. 체구가 작은데다가 얼굴이 못생겼으며 의복은 더럽고 해어져서 보통 사람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엄숙한 얼굴로 조정에 서서 국가대사가 생길 때마다 정책을 결정지으며 나라의 우뚝한 기둥이자 초석 역할을 하였다. 당시 풍년이 들고 백성이 편안하며 나라 안팎이 무사하자, 사람들은 그 모두가 강감찬의 공이라고 생각했다. 관직에서 물러나자, 성남(城南) 별장[別墅]으로 돌아가서 『낙도교거집(樂道郊居集)』과 『구선집(求善集)』을 저술하였다. 뒤에 현종의 묘정에 배향하였고, 문종은 수태사(守太師) 겸 중서령(中書令)을 추증하였다. 아들은 강행경(姜行經)이다.
고려사 강감찬 열전
고려사 강감찬 열전
3. 기타
금천 강씨 족보에 의하면 사재경(司宰卿)[1]을 지냈다고 나오나 족보 이외의 다른 문헌들과 교차되지 않아서 진위여부를 알 수 없다.아버지인 강감찬보다 기록이 없는 인물이어서 그런지, 강감찬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고려 거란 전쟁에서도 등장하지 않는다. 18회에서 강감찬 처가 자식들을 언급한 점을 보면 드라마상에도 존재는 하는 걸로 추정된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