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47a0> 출생 | 1896년 1월 25일 |
경기도 안성시 원곡면 지문리 | |
사망 | 1945년 7월 26일 (향년 49세) |
경기도 안성시 | |
직업 | 독립운동가 |
상훈 | 건국훈장 애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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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강봉돌은 1896년 1월 25일 경기도 안성시 원곡면 지문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4월 1일 최은식(崔殷植), 홍창섭(洪昌燮), 이유석(李裕奭) 등이 주동한 양성면, 원곡면 일대의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했다. 그는 처음에는 원곡면의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해 천여 명의 군중과 함께 외가천리에 있는 원곡면사무소에서 만세시위를 벌이고 면장을 선두로 내세워 횃불을 들고 양성면으로 행진했다.이들이 양성면에 도착할 무렵, 동향리에 있는 양성경찰주재소 앞에서 만세시위를 벌이고 귀가하던 양성면민 천여 명이 이들과 합류했다. 이리하여 2천명으로 불어난 군중은 오후 10시경 경찰 주재소 앞에 도착했다. 이때 강봉돌은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휘두르며 독립만세를 외치고 주재소와 숙직실을 불태웠다.
이후 양성 우편소로 가서 그곳의 기물과 건물을 파괴, 방화했으며, 일본인 토자 토요테(外里與手)가 경영하는 잡화점과 일본인 고리대금업자 타카 히데토모(隆秀知)의 집을 파괴했고, 양성면 사무소로 가서 서류와 기물을 파기하고 군중과 함께 뒷산에 올라가 독립만세를 외친 뒤 해산했다. 다음날 새벽 4시에 원곡면으로 되돌아온 그는 군중과 함께 원곡면 사무소의 건물을 파괴, 방화했다.
얼마 후 체포된 강봉돌은 1921년 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건조물 소훼, 소요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안성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945년 7월 26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강봉돌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