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영의 복원이 가장 잘 된 원주시의 강원감영 |
1. 개요
監營조선왕조 때 각 도의 행정사무를 관장하였던 기관. 오늘날의 도청(道廳)에 해당된다.
임금이 임명한 종2품 관찰사(감사)가 수장으로 있으며, 1395년 태조 이성계가 개경에서 한양으로의 도읍지 이전 이후 전국 행정구역을 8도로 확정하면서 신설된 기관이다. 경기감영은 한성부 내에 있었으나, 한성부는 경기도와 별개의 행정구역이었기 때문에 한성부는 한성판윤(漢城判尹)이 따로 관할했다. 한성부판윤은 한성부의 수장으로, 정2품이라 종2품인 타 부윤보다도 의전서열이 높았다. 오늘날 서울특별시장이 차관급인 타 광역자치단체장보다 높은 장관급인 것과 유사하다.
1895년 기존 8도제가 23부제로 개편되면서 '부청(府廳)'으로 개칭됐다가, 이듬해(1896년) 13도제로 다시 개편되면서 '도관찰부'라고 개칭하였고 1910년 일제강점기에 지금과 같은 '도청'으로 개칭되어 현재에 이른다. 전라북도 박물관
2. 업무
감영의 업무는 도내의 행정사무, 민생고충, 농어업 현안, 경제상업 현안, 치안문제, 민·형사재판 등 법무, 군무 등이 있었으며, 감영 내의 관리들과 각 도 산하의 군현 수령들은 관찰사의 명령과 지시하에 맡은 일을 수행하였다. 또한 각 도 산하의 군현 수령들을 관리감독하는 역할도 하면서 비위사실이 있거나 탐관오리 등으로 판단된 수령의 경우 임금 직무대리에 따라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참고로 각 도의 감사는 감영 소재지 고을의 수령도 겸했고, 감영 역시 해당 고을의 관아 역할을 겸했다. 가령 전라감사가 전주부윤을, 경상감사가 대구도호부사를 겸직하는 식이다. 오늘날로 치면 광역지방자치단체장인 도지사가 기초지방자치단체장인 도청 소재지의 단체장직인 시장이나 군수를 겸직하고, 도청이 도청 소재지의 시청 or 군청 기능까지 하는 셈이다. 평안감사를 흔히 '평양감사'라 부르는 것도[1] 이것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딱 하나 예외가 있다면 경기감영이었다. 경기감영은 한성(서울)에 있었으나 한성 자체의 행정은 한성부와 한성 판윤이 별도로 맡았다.
3. 위치 변천
아래는 1896년 남북도 개편 이전까지의 감영의 소재지 변천사이다. 1896년 이후는 도청(행정) 문서 참조.| 감영 소재지 | ||
| 경상도 | 경상감영 | 경주(1392) → 상주(1408) → 칠곡(1593)[2] → 대구(1596) → 안동(1599) → 대구(1601) |
| 전라도[3] | 전라감영 | 전주(1392) |
| 강원도 | 강원감영 | 원주(1395) |
| 충청도 | 충청감영 | 충주(1395) → 공주(1603) |
| 황해도 | 황해감영 | 해주(1395) |
| 경기도 | 경기감영 | 수원(1413) → 광주(1448) → 한성(1460) → 수원(1886) |
| 평안도 | 평안감영 | 평양(1413) |
| 함경도 | 함경감영 | 함흥(1416) → 영흥(1470) → 함흥(1498) |
※. →는 감영지 이전
4. 교육
조선시대에 중앙 조정에서 관리하는 대표적인 지방 교육 기관은 향교(鄕校)로서, 지방 읍마다 설치된 향교에 예조에서 교원을 파견하여 관리를 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지방 군현의 수령과 향반들이 향교 근처에 양사재(養士齋)라는 교육 시설을 자체적으로 추가 설치하여 유학 교육을 보충하였다. 다만, 양사재는 향교의 부족한 면을 잘 보완하기는 하였으나 엄밀하게는 중앙 조정에서 관리하는 '국립' 교육기관은 아니었으며, 후에 각 도의 감사들은 감영 인근에 도 단위 교육기관에 해당하는 영학(營學)을 설치하고 향교의 우수한 인재를 추천 받아 감사가 직접 선발 및 훈육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오늘날로 치면 우수한 성적으로 향교를 나온 인재들을 대상으로 심화 교육을 하는 도립 대학교 정도로 보면 된다.영학은 '감영의 학교'라는 뜻이며[4], 함경도는 1469년 함흥에 장도회(⻑道會)[5], 평안도는 1507년 평양에 장도회(⻑道會), 전라도는 1700년 전주에 희현당(希顯堂), 경상도는 1721년 대구에 낙육재(樂育齋), 황해도는 1723년 해주에 사황재(思皇齋), 충청도는 1887년 공주에 영학원(營學院)이 각 도의 감영이 있는 곳에 순차적으로 설립되어 운영되었다.
5. 오늘날
일제강점기와 근대화를 거치면서 대부분 감영을 헐고 그 위치에 도청 건물을 그대로 올리면서 감영 건축물 대다수는 훼손되거나 파괴되었다. 오늘날에도 낡은 시.도청사를 헐고 새 청사를 그 위치에 그대로 짓는 일은 흔하니 그 당시에는 그저 도청 건물을 증축/개축한다의 개념으로 접근했을 것이다.서울의 경기감영과 해주의 황해감영은 아예 완전히 철거되었다. 경기감영은 고양군청으로 사용되다 1923년 철거 후 서울적십자병원이 들어왔고, 황해감영은 1927년 철거 후 그 자리에 황해도청을 새로 세운다. 나머지도 가장 큰 건물인 선화당과 징청각 2곳을 빼고 나머지는 거의 다 철거되었다. 그나마도 전주의 전라감영(전라북도청)과 평양의 평안감영(대동군청)은 한국 전쟁 도중 완전히 소실되었다. 그러나 최근 각 지자체에서 감영복원 사업을 추진하면서 옛 모습을 되찾은 감영도 생겨났다.
가장 잘 복원된 곳은 원주시의 강원감영이다. 전주시의 전라감영은 1단계 복원완료 후 계속 추진중이다. 조선 초기 경상감영은 상주에 있었다가 1600년대 대구로 옮겨졌는데 상주시의 경상감영은 복원 추진 중에 있다. 공주시의 충청감영(충청남도청->공주사대부고)은 남아있던 건축물들을 다른 곳에 이전하여 '감영공원'을 만들었고 정문은 원 위치에 복원하여 공주사대부중고의 정문으로 사용되고 있다. 대구광역시의 경상감영(경상북도청)은 대부분의 건물이 사라지고 선화당과 징청각만이 원 위치에 남은 채 공원화가 이뤄졌다. 조선시대 감영 중에서 가장 크고 화려하며, 그림을 통해 건물들의 배치와 감영의 규모를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는 서울특별시 종로구의 경기감영은 현재 그 자리에 도로와 건물들이 들어차버린 탓에 복원이 불가능하다.
황해도 해주에 있었던 황해감영, 평양의 평안감영은 끝내 복원되지 못해 현재 남아있지 않다. 함흥에 위치한 함경감영은 현재 선화당과 징청각만이 남아있다. 이 감영들은 현재 북한 지역에 있는 만큼 북한이 자체적으로 복원하지 않는 이상 통일 이후에나 복원 시도가 가능할 것이다.
조선후기 각 감영의 헌판의 모습
6. 관련 문서
[1]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당사자가 싫다는 반응을 보이면 억지로 시킬 수 없다는 뜻의 속담인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에서 평양감사가 여기서 나온 것이다.[2] 당시 성주목에 속해 있었다.[3] 당시 제주도는 전라도 소속이었다.[4] 유형원의 반계수록(敎選之制 上)에 '여러 도(道)의 감영은 모두 영학을 둔다(諸道監營 皆置營學)'고 기록되어 있다.[5] 장도회는 이후 양사청(養士廳), 양현당(養賢堂) 등으로 개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