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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빈(대)/실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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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숙가황귀비의 증조할머니가 순치제의 유모였다. 이때부터 김씨 일가의 지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2] 포의는 팔기의 명문가에서 일하는 시종 내지 하인들에게서 비롯된 신분으로 팔기 중에서는 가장 낮은 신분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팔기 소속이라서 기외의 민인들과는 격이 달랐다. 덕분에 입관 이전 누르하치, 홍타이지 시절부터 잘 먹고 잘 살던 고관대작 기성 명문가보다는 불리한 자리에서 시작할지언정, 능력을 보일 기회는 충분히 주어졌고 그 기회를 잘 잡으면 출세도 할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관운까지 따라주면 팔기의 정식 귀족이라 할 수 있는 기분 니루로의 대기도 노려볼 수 있었다. 이들 외에도 포의 출신으로 시작해 고위 관직에 이름을 올리거나 이런저런 공을 세워 집안을 일으키고 청사에 이름을 남긴 인물은 의외로 많다. 홍루몽의 저자 조설근 역시 정백기 포의 출신(이었으나 옹정 연간에 숙청당해 몰락한) 중상류층 권세가 출신이다.[3] 영조실록과 승정원일기에 예부상서 김상명의 도움을 크게 받았고 김상명에게 조상 묘소에 묘비 하나 세워달라는 부탁도 받아왔다는 연행사들의 보고가 전해진다. 이보다 전인 경종 시절에도 김상명이 조선을 편들어주지 않았다면 연잉군이었던 영조는 세제 책봉을 받기 어려웠을 정도. 대략 김씨 일가에 대해 '저 오랑캐가 그래도 제 뿌리는 안 잊었네요 ㅋㅋㅋㅋㅋ' 하는 즐거운 뒷담화(?)인데 이런 뒷담화을 하면서도, 청나라에 들락거리는 사신들과 청나라 사신을 대접하는 예조 대신들에겐 이들 김씨네 인사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 강건성세 내내 FM으로 자리잡았다.[4] 포의에서 기분 니루로 승급되면서 편입된 기가 양황기였냐, 정황기였냐로 기록이 살짝 엇갈리기는 한다. 구범진 서울대 교수의 저서 <청나라, 키메라의 제국>에서는 정황기로 대기되었다고 서술되어 있다.[5] 5황자 영기, 11황자 영성, 15황자 영염[6] 가경제의 동복동생인 경희친왕 영린은 영성과 함께 허션을 제거하는 데에 기여했지만 기록을 보면 늘상 주색에 빠져 살면서, 사람들까지 폭행하고 다니는 바람에 동복형인 가경제에게 수차례나 꾸중을 들어도 행동을 고치지 않을 정도로 막장이었다. 가경제가 상대적으로 개념있는 이복형 영성을 더 가까이 하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7] 연희공략에서도 11황자가 인색하다는 얘기가 나온 적이 있다.[8] 오히려 윤사는 한미한 모계 혈통에 이복형제들과 당파를 형성해 노골적으로 태자 자리를 노리는 행태 때문에 강희제에게 냉대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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