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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10-09 18:28:44

SCP-934-KO


[include(틀:SCP/순서,
1=933-KO, 1e=국가보위성 이상교화국 축지법전사 리은택,
2=934-KO, 2e=우리가 다시 만날 곳,
3=935-KO, 3e=안개 낀 도시는 저편으로)]
<colbgcolor=#000><colcolor=#fff> 파일:SCP 재단 로고.svgSCP 재단
파일:SCP-934-KO.png
SCP-934-KO.
일련번호 SCP-934-KO
별명 우리가 다시 만날 곳
등급 유클리드(Euclid)
원문 원문
저자 Drdobermann

1. 개요2. 특징
2.1. 부록 934-01
3. 기타

1. 개요

SCP-934-KO는 부산광역시 중구 남포동의 영도대교 근방에 있는 유라리 광장에서 발생하는 변칙적 현상으로 만들어진 일련의 집합이다.

2. 특징

SCP-934-KO는 특정 조건을 충족하는 대상(SCP-934-KO-1)이 유라리 광장에 접근할 경우 발현된다. 어떠한 인과를 가졌든 934-KO-1은 반드시 934-KO를 발동시키며 아래의 개체들에게 접근하게 된다. 특정 조건은 다음과 같다.발현된 SCP-934-KO는 점쟁이 중년 여성(SCP-934-KO-3)과 그 노파가 점을 보는 천막(SCP-934-KO-2)으로 이뤄져 있으며, 934-KO-2는 별다른 특이사항 없는 주황색 천막이나 입구에는 '점술'이라 쓰인 간판이 달려있다. SCP-934-KO-2 내에 진입할 경우 934-KO-3은 대상자의 실종된 친인척들을 이야기하며 그가 있는 위치와 생사 등의 정보를 알려주며, 그 이외의 정보는 대화의 흐름에 따라서 달라진다. 다만 생사의 경우에는 상당히 모호하게 답변한다.

만약 대상자가 934-KO-3에게 복채를 제시할 경우, 이를 거절하며 이후 대상자가 KO-2를 나가게 될 경우 SCP-934-KO는 비활성화 상태가 된다. 현재 934-KO가 발동되어 이를 통해 친인척의 정보를 확인한 사람들은 대략 200여 명 정도가 존재하며, 조사 결과 934-KO의 변칙성에 의해 얻게 된 정보는 93% 가량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1. 부록 934-01

202█년, SCP 재단 요원인 권상진 요원이 934-KO를 찾았다. 찾기 이전에 녹음기를 켜두어서 KO-3과 권상진 요원의 대화가 녹음되었다.

SCP-934-KO-3은 서남 방언으로 대화를 진행했으며, 개체는 전쟁 때부터 이 일을 했으니 거의 10년은 이 일을 했으며, 이 근처에서 가장 용한 점쟁이라고 자신을 말했다. 그리고 권상진 요원의 실종된 동생을 말하며 그가 계곡에 있고 서둘러야 할 것이라며 요원이 복채를 제시하자 복채는 필요 없다며 빨리 뛰어가라고 말했다.

권상진 요원은 만남 이후 담당 구역을 이탈하고, 그다음 날 복귀하였다. 권상진 요원의 동생은 불행히도 익사체로 발견되었다. 동생은 근방 지역에서 순경으로 근무하고 있었으며, 계곡에서 한 사건을 무리하게 조사를 하다가 불행한 사고에 휘말려 익사하고 말았던 것이다. 요주의 단체와 연관되지도 않아서 재단에 도움을 요청할 수 없고, 경찰의 수사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찰나 권상진 요원의 조모가 그가 어릴 적에 이야기해 주었던 점쟁이 이야기가 떠올라서 그와 연관된 것으로 생각한 934-KO의 담당 구역 요원으로 배치되는 것을 희망한 것이다.

권상진 요원의 조모는 요원이 어린 시절, 서울에서 부산으로 피난 오던 중 헤어진 자신의 남편을 찾으려고 매일 점바치 골목에 용한 점집들을 찾으며 남편의 행방을 물으던 중 934-KO와 접촉하게 된 것이다. 934-KO는 조모의 남편이 소나무 뿌리 아래에 있다는 이야기를 하자마자 그녀는 뛰쳐나왔으나 결국 남편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1950년대 복장을 한 백골이 소나무 뿌리 아래에서 발견된 것이 바로 그녀의 남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권상진 요원은 이에 덧붙여서 934-KO-3의 말이 절박했고, 마치 이번에는 꼭 성공하길 바라는 듯 말했다고 증언하였다. 이후 요원은 근무지 무단 이탈로 1주일 간 근신 처분을 받았고 정상복귀하였다. SCP-934-KO의 추가적인 변칙성은 확인되지 않았다.

3. 기타

삼천리 금수만도 못한 부산광역시 경연의 우승작이다.[2]
[1] 과거 한국 전쟁 당시 부산으로 몰려온 피난민들의 가족들을 찾아내기 위해서 점을 봐주던 지역이다. 점바치란 이름은 경상도 방언으로 점쟁이를 뜻한다.[2] 경연 명칭은 이후 "삼천리 국토종주 경연"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