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3-12-11 00:17:06

N선


1. 개요2. 당시 상황3. 발견 및 반응4. 결말5. 기타

1. 개요

N선은 1903년 프랑스의 물리학자 프로스페르-르네 블랑들로(Prosper-René Blondlot; 1849-1930)가 존재한다고 주장한 광선의 일종이다. 이후 거짓으로 판명났으며, 오늘날 병적 과학(Pathological science)이라는 개념의 가장 교과서적인 사례로 간주된다.[1]

2. 당시 상황

당시 물리학계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획기적인 연구결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1893년 독일의 빅토르 슈만(Victor Schumann)은 자외선을 발견했으며, 1895년 빌헬름 뢴트겐(Wilhelm Röntgen)은 X선을 발견하였다. 1896년 프랑스의 앙리 베크렐(Henri Becquerel)은 방사선을 발견하였으며, 1897년 조지프 존 톰슨(Joseph John Thompson)은 전자를 발견하여 이것이 음극선(cathode rays)를 구성하는 성분이라는 것을 증명하였다. 그러다 보니 학계에서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더 많은 광선이 있을 것이라 보고 있었다.

한편 블랑들로는 당시 낭시(Nancy) 대학교의 정교수로 재직하고 있었으며, 8명으로 구성되었던 당시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의 회원으로 활동하는 등 과학계의 유명 인사였다. X선이 발견된 이후, 블랑들로는 해당 광선이 입자인지 파동인지 알기 위한 연구를 시작하였다.[2]

3. 발견 및 반응

1903년 블랑들로는 음극선을 통해 X선을 석영으로 된 프리즘에 편광하는 실험을 하였는데, X선이 프리즘에 닿을 때마다 미세한 빛을 곁눈으로 감지하였다. 같은 실험을 몇 번 더 반복해 본 결과 미세한 빛은 계속해서 관찰되었고 검은 감광판에서 스파크 밝기가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현상 또한 관측되었다. 블랑도르는 이를 새로운 미지의 광선이라고 추측하였으며, 해당 관찰 결과를 학계에 발표하였다. 자신이 당시 일하던 도시인 낭시(Nancy)의 앞글자를 따 그는 이 미지의 광선을 N선이라고 명명하였다.

이후 2-3년 동안 오귀스탱 샤르펜티에르(Augustin Charpentier), 아르센 다르송발(Arsène d'Arsonval)[3] 등 120명의 과학자들이 이 광선의 존재를 확인하는 약 300편의 후속 연구를 발표하였다. 연구에 따르면 N선은 자연계에서 상당히 쉽게 관측할 수 있는 광선으로 일부 금속과 산림을 제외한 거의 모든 물체에서 방출되는 특성을 가졌다. 동시에 물이나 암염은 투과하지 못하며 나무와 검은 종이를 투과할 수 있다는 특성도 가졌다. 이와 함께 N선을 미간에 쏘면 맡지 못하던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보고 등 N선을 활용한 방법에 대한 연구도 많이 발표되었다.

하지만 N선의 존재를 두고 학계는 강한 회의감을 보였다. 상당히 애매한 관측 방법과 그 결과가 그 이유 중 하나였다. 당시 N선을 옹호하는 과학자들이 권장하는 바에 따르면, N선을 관측하기 위해서는 어두침침한 곳에서 곁눈질로 N선 감지기[4]를 바라보아야 N선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식의 관찰이 잔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은 당시에도 이미 잘 알려져 있던 상황이었다. 또 수상할 정도로 "국적 편향적인" 보고 또한 여기에 한 몫을 하였다. N선을 관찰하였다고 주장한 대다수의 과학자들은 "프랑스인"이었으며, 영국이나 독일 등 타국의 과학자들이 같은 조건에서 실험을 하였을 때는 희한할 정도로 N선이 검출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5]

4. 결말

미국의 물리학자로 당시 여러 유사과학을 폭로(debunk)하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하던 로버트 우드(Robert W. Wood)는 직접 해당 실험을 재현하였으나 N선을 감지하지 못하였다. 이에 의심을 품은 우드는 직접 블랑들로를 찾아가 실험의 재현을 부탁하였다.[6] 이에 블랑들로는 직접 보여주겠다며 실험을 재현하기 시작했는데, 방이 어두워진 순간을 틈타 우드는 N선 감지에 필수였던 프리즘을 빼돌렸다. 즉 정말로 N선이 존재했다면 블랑들로는 N선을 보지 못하는 게 맞았겠지만, 블랑들로는 있을 수 없는 N선의 수치를 읽고 있었다. 또한 앞서 언급되었듯 N선은 목재를 통과할 수 없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우드가 몰래 N선의 사이에 나무 조각을 집어넣었음에도 불구하고 블랑들로는 N선을 관측하였다. 이후 우드는 자신이 목격한 것을 1904년 네이처 지에 기고한다.
After spending three hours or more in witnessing various experiments, I am not only unable to report a single observation which appeared to indicate the existence of the rays, but left with a very firm conviction that the few experimenters who have obtained positive results, have been in some way deluded. A somewhat detailed report of the experiments which were shown to me, together with my own observations, may be of interest to the many physicists who have spent days and weeks in fruitless efforts to repeat the remarkable experiments which have been described in the scientific journals of the past year.
세 시간 넘게 본인은 여러 실험 과정을 직접 보았으나, 광선의 존재를 입증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그 어떠한 관측 방법도 찾아낼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하여 긍정적인 결과를 얻어낸 몇몇 연구자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속은 것이라는 굳은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나 자신의 관측과 함께 내가 본 상당히 세밀한 보고서는 지난 해 과학 저널들에 묘사된 이 놀라운 실험들을 반복하기 위해 이 무용한 결과에 수많은 시간을 쏟아부은 많은 물리학자들의 관심을 끌지도 모른다.[출처]
우드의 기고 이후에도 한동안 N선에 대한 옹호는 사라지지 않았다. 1904년 프랑스의 권위 있는 학술상인 르콩트(LeConte) 상을 수상하였다. 그러나 수여자 측은 "N선의 발견"이 아닌 "이때까지의 공로"에 비추어 수상한다고 발표하는 여지를 남겼다.[8] 이후 1940년대까지도 N선에 대한 지지 여론이 일부 남아있긴 했으나[9], 사실상 1905년 이후 낭시 바깥 지역에서 N선은 사장된 개념이 되었다.[10] 한편 블랑들로는 실의에 빠져 1909년 은퇴하였으나 1930년 사망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N선의 존재를 주장하였다.

현대 과학자들은 N선의 존재를 블랑들로의 착시에서 비롯된 착각으로 본다. 위에서 언급되었듯 어두운 방 안에서 검은 감광판을 지속적으로 들여다보는 N선의 유도 과정 자체가 착시를 일으키기 쉬운 환경이었다.[11] 여기에 X선을 발견한 독일에 대항하고자 했던 프랑스 과학자들의 애국주의와 N선의 연구를 통해 명성을 얻고자 했던 집단사고 및 확신편향적 사고가 얽히며 N선이라는 의도치 않은 사기극이 벌어지게 되었다.

5. 기타


[1] 실제로 병적 과학을 최초로 주장한 미국의 화학자 어빙 랭뮤어(Irving Langmuir; 1881-1957)는 병적 과학을 정의하면서 N선을 그 대표적인 예시로 거론하였다. 더 나아가, N선의 사례를 통해 병적 과학이라는 용어를 창안했다는 추측도 존재한다.[2] 지금이야 빛의 이중성(wave–particle duality)이 잘 알려져 있지만 당시는 빛의 성질에 대해 설왕설래가 오가던 시절이었다.[3] 프랑스 과학자로 세계 최초로 동결건조 기법을 발명한 사람이기도 하다. 다만 해당 기법을 사용한 식품이 실제로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1911년이나 되어서였다.[4] 앞서 언급된 검은 감광판으로, N선을 감지하면 발광한다고 알려져 있었다.[5] 대표적인 사례로 영국인인 켈빈 경과 윌리엄 크룩스, 독일인인 오토 루머, 하인리히 루벤스 등은 N선을 관찰하지 못했다고 보고하였다. 빌헬름 2세는 직접 N선을 보고 싶다며 물리학자 루벤스를 자신의 궁으로 불렀는데, 루벤스는 2주 간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N선을 보이는 데 실패하였다.[6] 원래 우드는 앞서 언급된 루벤스더러 블랑들로를 찾아가 볼 것을 권했으나, 루벤스는 우드가 직접 가는 게 더 나을 것이라고 권유하여 결과적으로 우드가 가게 되었다.[출처] Wood, R.W. (29 September 1904). "The N-Rays". Nature. 70 (1822): 530–531. Bibcode:1904Natur..70..530W. doi:10.1038/070530a0. S2CID 4063030.[8] 블랑들로는 학계에 논문을 여럿 발표하는 등 실제로도 우수한 물리학자는 맞았다. 사기를 치고 다니는 야매 과학자들과는 결이 다른 사람이었다. 다만 "N선"이라는 삽질이 너무 큰 것이 화근이었다.[9] 일례로 1946년판 웹스터 사전은 N선을 "An emanation or radiation from certain hot bodies which increases the luminosity without increasing the temperature: as yet, not fully determined."(특정 뜨거운 물체에서 방출되며, 온도를 올리지 않으면서도 발광 정도를 올리는 발산 광선. 아직까지는 확실히 검증되지 않음)이라고 정의하였다.[10] 그리고 블랑들로의 사망 이후 블랑들로의 이름과 N선의 존재는 낭시 지역에서조차 잊히게 된다. 제임스 랜디의 저서에 따르면, 1982년 자신이 직접 낭시에 가서 물어본 결과 대다수의 시민들과 낭시 대학교의 교수진들은 블랑들로의 이름이나 N선의 존재에 대해 들어보지 못했다고 대답했다.[11] 인간의 눈은 색깔을 감지하는 원추세포와 명암을 인식하는 간상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눈 가장자리에 놓인 간상세포가 감각에 더 예민하기 때문에 눈동자는 정면을 향해도 옆에서 들어오는 희미한 빛을 감지할 수 있다. 그러나 간상세포는 지나치게 민감하여 똑바로 볼 때보다 곁눈으로 볼 때 원래보다 더 밝게 빛을 감지하게 된다. 즉 블랑들로는 X선이 프리즘에 닿는 순간 곁눈으로 무언가가 밝아진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이는 간상세포의 활성화로 인한 일종의 "착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