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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5:59:14

JK전권

JK 아트사커에서 넘어옴
JK 아트사커 온라인
전권
Jeon Kwon
파일:JK전권 프로필.jpg
<colbgcolor=#000><colcolor=#ffff00> 출생 1989년 3월 11일 ([age(1989-03-11)]세)
신체 173cm, 70kg
학력 울진고등학교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벌캠퍼스 (글로벌스포츠학부 / 학사)
소속 JK 아트사커 아카데미 총감독
JK 스포츠 대표
WFFA 위원[1]
링크 파일:JK 로고.jp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현재) 파일:유튜브 아이콘.svg(과거)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공식)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개인)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
2.1. 어린 시절2.2. 프리스타일러 시절2.3. JK 아트사커
2.3.1. 고정멤버2.3.2. 전 고정멤버
3. 수상4. 여담

[clearfix]

1. 개요

우희용을 잇는 한국 프리스타일 축구계의 레전드이자, 현재는 JK 아트사커를 운영하고 있는 스킬트레이너이다.[2]

2. 생애

2.1. 어린 시절

전권은 어릴 때부터 축구선수를 꿈꿨다. 하지만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훈련방식과 ‘축구 기계’가 되게끔 강요받으면서, 축구를 그만두고 1년여를 방황했다. 그때 브라질 호나우지뉴가 한 스포츠용품업체 광고에서 기가 막힌 축구묘기를 하는 게 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이후 중학교 2학년(울산 현대중) 때부터 혼자서 프리스타일 축구에 매달렸다. 국내에 프리스타일축구 전문가가 없어 인터넷 동영상을 보며 따라해왔다고 한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는 울산 현대 축구단 관계자의 눈에 들어 프로 경기에 공연을 다녔다. 유럽에서는 프리스타일 축구의 선구자인 우희용이 활약하고 있었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프리스타일축구 문화가 자리 잡지 않아 반응은 미미했다. 하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기점으로 팬들이 생겨났다. 2003년부터 인터넷에 전권 축구 프리스타일 카페를 만들어 운영했다. 프리스타일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모아 기술을 전수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2004년에 열린 프라임축구 묘기 대회에서 우승한 이후 각종 대회나 행사에 나서면서 국내에서 조금씩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2.2. 프리스타일러 시절

고등학교 졸업을 한 달여 남겨둔 2008년 2월, 전권은 단돈 30만 원을 들고 영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많은 돈을 가지고 가서 배부르게 지내다보면 나태해질 것 같아 편도 비행기 삯을 빼고 30만 원만 챙겼다.[3] 돌아갈 비행기 표는 물론 이역만리 타국에서 먹고살 돈조차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일단 광장을 찾았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갈고 닦은 프리스타일 축구로 버스킹을 하며 돈을 벌 생각이었다.

그러던 중 런던 중심가 트래펄가 광장 앞에서 '스티븐'이란 경찰을 만났다. 축구를 사랑하는 그는 광장 옆 내셔널갤러리 앞에서 공연을 해도 좋다고 했다. 단 조건이 있었는데 공연을 끝내고 축구 기술 하나씩 가르쳐줘야 했다. 이후 관광객 수천 명이 지나가는 큰 거리에서 공연을 하기 시작했다. 관객들의 반응은 뜨거웠고, 나흘 만에 2001파운드(약 430만 원)를 벌어 석 달 치 방값을 미리 해결했다. 한 달 반이 지나자 축구 이벤트를 하는 에이전트로부터 연락이 왔다. 관광객들이 올린 유튜브 동영상을 보고 일을 같이 하자는 제의가 온 것이다.

영국 스카이스포츠의 주간 매거진 '사커AM' 홍보영상 촬영이 첫 번째 일이었다. 해당 촬영이 성공을 거두고, 에이전트는 ‘나이키5’라는 광고 오디션에 나가볼 것을 제안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 전 세계 3000여 명이 참가해 지그재그 막대를 지나고 다양한 장애물을 넘는 오디션에서 당당히 1위를 했다. 광고도 히트를 치면서, 당시 3200만원이라는 상금을 받기도 했다.

이후 전권은 본격적으로 프리스타일러로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08년 말, 이탈리아 인터 밀란과 그리스 파나티나이코스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 경기에서 공연했다. 2009년 초, 나이키 이그나이트#라는 광고에서 당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카를로스 테베스, 파브레가스 등과 함께 광고를 찍었다. 맨유와 아스널의 가상 경기에서 박지성의 대역을 하는 역할이다.

해당 광고 촬영 현장에서 생긴 에피소드가 있는데, 호날두가 몸 풀면서 묘기를 보이자 도전의식이 생긴 그가 나섰다. 전권은 호날두를 상대로 여러가지 프리스타일 기술을 선보였다. 그러자 호날두는 “계속 해봐라. 그 기술 알려줄 수 없냐”라고 물어 JK바운드레인보, 아카1000, 토밸런스, 스핀매직 등 4가지 기술을 시범했다고 한다. 이후 2010년에는 세계 프리스타일 축구 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을 수상하기도 했다.

2.3. JK 아트사커

현재 JK 아트사커를 통해서 프로/아마추어를 대상으로 기본기와 개인 기술을 교육하고 있다. 이제는 프리스타일러 보다는 스킬 트레이너에 가까워진 모습이다.

JK아트사커는 여전히 체력 운동, 전술 훈련 중심인 대한민국의 유소년 축구 훈련 문화에 기술 축구를 가르쳐주는 몇 안 되는 성실한 축구 아카데미이다. 이곳에서 축구를 배우는 유소년 선수들은 유소년 단계에서 꼭 가져야할 요소인 축구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어찌보면 재미있게 축구를 하는 과정 속에서 기술은 타고난 것처럼 체득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JK 아트사커 온라인이라는 유튜브 채널도 운영중인데, 구독자 80만, 주요영상 100만뷰 이상이 될 정도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황희찬권창훈이 JK 아트사커를 통해 교육을 받은 대표적인 선수들이다. 권창훈은 매탄고 시절 전권에게 레슨을 받았었고, 황희찬은 고교 시절부터 비시즌 때 사비를 털어 기술을 배우고 있다고 한다. 챔피언스리그에서도 JK에게 교육받은 기술로 버질 반 다이크를 제치고 골을 넣는 등, 2020-21 시즌 황희찬의 기량 발전과 맞물려 주목을 받고 있다.

더불어,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벤투호의 포르투갈전 황희찬의 대한민국을 16강으로 올리는 결승골과 16강 브라질전의 활약 등이 주목을 받으며 전권 또한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

2.3.1. 고정멤버

2.3.2. 전 고정멤버

3. 수상

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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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제 프리스타일 축구 협회.[2] 본래 스킬트레이닝은 농구에서 가장 왕성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훈련 방식이다. 스포츠의 규모에 비해 축구에서는 아직 비전문화된 영역이다. 국내에서는 전권이 거의 유일한 축구 스킬트레이너로 활동 중이다.[3] 당시 환율로 140파운드. 민박집에서 이틀을 지낼 수 있는 돈이었다.[4] 가끔씩 TF화도 신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