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LP: 1976년 12월 25일 발매
CD: 1985년 2월 21일 발매[1]
야마시타 타츠로의 첫 솔로 앨범.
야마시타 타츠로는 밴드 SUGAR BABE로서 1973년에 데뷔했지만, 3년 후인 1976년에 밴드가 해체되며 홀로 남게 된다. 당시 솔로로 활동을 이어나가야 했던 그는, 해체로 인한 정신적 데미지를 겪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SUGAR BABE 시절 추구한 60년대 스타일과 레코드 매니아로서의 취향이 일본에서 전혀 먹히지 않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솔로 활동을 하기로 했지만서도, 객관적 입장에서 한 번이라도 자신의 음악적 역량을 판단해보지 않고선 나아갈 수 없다.’
그러한 이유로 그는 첫 솔로 앨범을 해외에서 녹음하는 것을 시도하게 된다.
처음으로 프로듀싱과 편곡을 제3자에게 맡기는 것을 생각했다. SUGAR BABE는 사실상 야마시타의 원 맨 밴드였다곤 하나, 그는 프로듀싱이니 편곡이니 하는 것에 대해서는 우물 안 개구리였기 때문이다. 그가 듣고 자라온 아메리칸 히트 발라드와 자신의 사운드가 어우러지면, 그리고 프로듀서, 편곡자, 뮤지션부터 스튜디오와 엔지니어까지 자신이 골라서 그 위에 자신의 곡과 노래를 얹으면 어떤 음악이 될지 확인해 보아야 했다. 그러려면 레코딩은 뉴욕에서 진행하여야 했고, 프로듀서와 편곡자는 60년대와 70년대 스타일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으로 골라야 했다.
편곡자와 뮤지션 몇 명을 고르고, 솔로 계약 오퍼가 들어온 레코드사 몇 군데와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당시에는 해외 레코딩이 특별한 작업이었던 데다, 뮤지션과 스튜디오의 섭외 등 현지 코디네이팅도 어려웠으며, 무엇보다 야마시타가 요구하는 스튜디오와 뮤지션의 급이 높아 단가가 너무 비싸고 막대한 경비가 들었다. 당시 야마시타 타츠로의 앨범 판매 실적으로는 예산 편성이 어렵다고 판단되어, 어느 레코드 회사든지 난색을 표했다.
그러던 와중에 딱 한 곳, RVC에서 제작 디렉터로서 커리어를 갓 시작한 코스기 류조[2]가 손을 내밀었다. RVC에서 일본의 락을 하고 싶었던 코스기는, 매니지먼트 회사 ‘아워 하우스’ 대표인 마키무라 켄이치에게 야마시타를 소개받았던 적이 있었고, 오기쿠보 로프트에서의 SUGAR BABE 해체 콘서트를 본 뒤 야마시타에 흥미를 가졌다.
RVC에 온 야마시타에게, 코스기는 협업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야마시타는 “뉴욕 레코딩을 하고 싶으니, 그 준비를 해주면 같이 하는 걸로 하자.”라고 답했고, 정식 오퍼 리스트를 받은 코스기가 뉴욕에서의 유학 생활 경험을 살려 홀로 미국으로 넘어가 야마시타가 지명한 프로듀서 몇 명을 직접 섭외하여, 제1후보였던 찰스 칼렐로의 OK를 받았다. 하지만 예산 관계로 앨범 트랙 전부를 뉴욕에서 하는건 불가능했다. 이때 찰스 칼렐로가 “LA에 뮤지션 친구[3]가 있으니 제작비 절반을 부탁해볼까…”라는 이야기를 꺼냈고, 그 친구는 우연히 야마시타가 좋아하는 뮤지션이었다. 덕분에 RVC와의 계약은 무사히 추진되었고, 솔로 앨범의 준비는 갖춰졌다.
2. 트랙리스트
2.1. New York Side
레코딩은 뉴욕에서 2주, 이후 LA에서 1주 간 진행했다. 처음으로 해외. 여태껏 소소하게 해 왔던 밴드가 갑작스럽게 판이 커졌다. 게다가 상대는 1티어 뮤지션 집단. 뉴욕에서 세션이 시작된 뒤 긴장한 나머지 제대로 목소리도 안 나왔다. 찰스 칼렐로는 친절함과 거리가 있는 인물이었고, 뮤지션도 버릇이 안 좋은 인간들뿐. 그나마 드러머 앨런 슈월츠버그(Allan Schwartzberg)와 엔지니어가 도와준 덕에 어떻게든 진행할 수 있었다. 당시 23살이었던 그에게 뉴욕 스튜디오에서의 인간관계는, 돈 얘기와 인종차별이란 불쾌한 부분까지 포함해 어마어마한 컬쳐 쇼크였다.그래도 그는 스피커에서 나오는 사운드가 자신이 상상했던 이미지와 거의 맞아떨어져서 안심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미적 감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한 계기가 되어, 이후의 커리어에 큰 도움이 된다.
티 타임 중 좋아하는 뮤지션이 누구냐는 칼렐로의 질문에, 이때다 싶어서 핼 블레인[4]과 버디 샐츠먼[5]을 이야기했는데, “걔네들은 확실히 1967년에는 탑 클래스였지.”라는 말을 들었다. 이 말이, 그때까지 팝 매니아였던 야마시타 타츠로의 음악적 방향성을 전환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한마디가 되었다. 이때 칼렐로와의 작업을 계기로 그는 락 앤 롤이라는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성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 경험이 없었으면, 새로운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10대들이 좋아할만한 음악만을 좇는 한물 간 소년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두왑을 좋아해도 랩은 할 수 있다는 말과 같은 것을 느꼈다.”라고 그는 이야기한다.
2.1.1. CIRCUS TOWN
작사: 요시다 미나코/작곡: 야마시타 타츠로
뉴욕에서 자주 연주했던 16비트의 곡을 이 곡으로 재현했다. 뉴욕을 이미지화한 곡. 간주 색소폰은 루 마리니. 인트로에 피콜로로 연주되는 멜로디는 '검투사의 입장'에서 따왔다.
뉴욕에서 자주 연주했던 16비트의 곡을 이 곡으로 재현했다. 뉴욕을 이미지화한 곡. 간주 색소폰은 루 마리니. 인트로에 피콜로로 연주되는 멜로디는 '검투사의 입장'에서 따왔다.
CIRCUS TOW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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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 WINDY LADY
작사/작곡: 야마시타 타츠로
본래 슈가 베이브 후기의 레퍼토리였지만, 당시에는 녹음할 기회가 없어서 이 앨범에 수록하게 되었다고 한다. 시카고 R&B를 좋아했기 때문에, 시카고의 별칭인 '윈디 시티'를 떠올려 만든 작품. 야마시타가 가지고 있던 데모테이프를 모두 들어 본 찰스 칼렐로에게서 '네 노래는 뉴욕보단 시카고 스멜이 난다.'는 이야길 듣고, 놀람과 동시에 자신의 작법이 의도한 바와 맞아떨어져서 기뻐했다고 한다. 간주 색소폰은 맨하탄 재즈 퀸텟의 멤버 조지 영.
본래 슈가 베이브 후기의 레퍼토리였지만, 당시에는 녹음할 기회가 없어서 이 앨범에 수록하게 되었다고 한다. 시카고 R&B를 좋아했기 때문에, 시카고의 별칭인 '윈디 시티'를 떠올려 만든 작품. 야마시타가 가지고 있던 데모테이프를 모두 들어 본 찰스 칼렐로에게서 '네 노래는 뉴욕보단 시카고 스멜이 난다.'는 이야길 듣고, 놀람과 동시에 자신의 작법이 의도한 바와 맞아떨어져서 기뻐했다고 한다. 간주 색소폰은 맨하탄 재즈 퀸텟의 멤버 조지 영.
WINDY LAD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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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 MINNIE
작사/작곡: 야마시타 타츠로
20대가 되고서는, 재즈와 보사노바 코드 진행에 매료되어, 써보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20대가 되고서는, 재즈와 보사노바 코드 진행에 매료되어, 써보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MINNI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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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 永遠に
永遠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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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Los Angeles Side
뉴욕 세션을 끝내고 LA로 옮기니, 뮤지션은 친절했지만 장비들이 오래되고 후져서, 모든 게 어긋났다. 드러머 존 사이터가 데려온 멤버가 야마시타가 주문한 음을 전혀 못 내는 사태까지 벌어졌고, 특히 베이시스트와 기타리스트가 너무 쓰레기여서, 첫째날이 가고부터 완전 진이 다 빠진 야마시타는 이대로 계속해도 답이 안 나오니 그냥 돌아갈까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차 안에서 존 사이터의 “코러스는 케니 알트먼과 제리 예스터에게 부탁해볼 예정이다.”라는 이야길 듣고 알트먼이 LA에 있으면 그 사람한테 베이스를 부탁해보자고 제안해서, 베이스는 바로 갈아버리고, 기타는 당시 키보디스트 존 홉스가 밴드 동료인 빌리 워커를 데려와서, 아슬아슬하게 이틀 남겨놓고 어떻게든 리듬 파트 녹음까지 끝낼 수 있었다고 한다.
2.2.1. Last Step[7]
작사: 요시다 미나코/작곡: 야마시타 타츠로이 곡도 요시다 미나코의 FLAPPER에 수록된 곡을 셀프 커버했다. 원래는 모타운 스타일을 노리고 썼다.
Last Ste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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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City Way
작사: 요시다 미나코/작곡: 야마시타 타츠로일본에서 써서 갖고 간 곡인데, 이미지가 상당히 달라져서, 급하게 현지에서 다시 쓰게 된 곡이라고 한다.
2.2.3. 迷い込んだ街と
작사: 요시다 미나코/작곡: 야마시타 타츠로웨스트 코스트 스타일[8]을 구현한 곡.
2.2.4. 夏の陽
작사/작곡: 야마시타 타츠로Circus Town의 경우와 유사하게, LA의 이미지를 담아 써서 온 것이 절묘하게 맞았고, 존 홉스의 피아노 연주에도 잘 어울렸던 곡. 다른 작품과 비교하면 조금 이색적이지만, 상당히 맘에 들어 라이브에서 연주할 기회가 많은 곡이 될 것이라고 자신이 밝혔다.
3. 기타
2002년에 리이슈된 ‘야마시타 타츠로 RCA/AIR Years 1976-1982’ 버전은 미발표 음원과 카라오케 버전(MR) 2곡[9]을 보너스 트랙으로 수록했다.[1] 이후 여러번의 재발매를 거쳐 현재는 디지털 리마스터링과 보너스 트랙 2곡이 수록된 2002년 발매 버전이 최종 버전이다.[2] 小杉 理宇造. 현 쟈니스 사무소의 고문이자, 자회사인 쟈니스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이사이다. 야마시타 타츠로 부부가 소속된 스마일 컴퍼니의 사장이었지만, 2017년에 퇴임했다.[3] 존 사이터(John Seiter), 밴드 '터틀스'의 드럼을 맡았던 멤버였다.[4] 1929년생. 미국의 드럼 세션 연주자이며, 더 로네츠의 Be My Baby의 드럼 세션으로 유명하다. 2018년에 그래미 특별공로상 수상.[5] 역시 드럼 연주자[6] 吉田美奈子, 1953년생. 사실 이 뮤지션도 커리어가 후덜덜하다. 작사, 작곡, 코러스까지 다 하는 다재다능한 뮤지션. 주로 외부 작업으론 작사로 많이 알려져 있다. 유튜브에 나돌아다니는 시티팝 믹스에도 그녀의 노래가 자주 써먹히기도 한다.[7] 최초 발매된 포맷이 LP 버전이기 때문에 LA사이드 1번부터 시작하지만, CD버전은 그대로 5번부터 시작한다.[8] 웨스트 코스트 락[9] Circus Town과 Windy La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