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황금 박차 전투(Guldensporenslag, Bataille d'éperon d'or) 또는 코르트레이크/쿠르트레 전투(Slag bij Kortrijk, Bataille de Courtrai)는 1302년 7월 11일에 필리프 4세의 프랑스와 플란데런 저항군 사이에서 벌어진 전투이다.2. 배경
플란데런 지방은 왕성한 섬유 산업 덕분에 부유한 지역이었다. 플란데런 백국은 영지의 상당 부분이 형식적으로 프랑스 왕국에 속해 있었지만 일부는 신성 로마 제국에 속해 있었다. 또한 네덜란드어 방언을 사용을 사용하는 플란데런인들은 신성 로마 제국에 속한 다른 저지대 영방국들과 언어적, 정서적, 지리적, 문화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러한 배경으로 플란데런 백국은 사실상 프랑스로부터 독립되어 있었다.상업이 발달한 플란데런인들은 상파뉴 등 프랑스 영내를 포함한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활발한 상업 활동을 벌였는데, 프랑스의 필리프 4세가 상인들에 대한 세금을 올리자 상파뉴 정기시에서 활동하던 플란데런인들이 필리프 4세에게 반발했다.
한편 필리프 4세는 부유한 플란데런를 완전히 국토에 복속시킬 야욕을 품고 플란데런에 압박 수위를 높였다. 결국 1297년에 플란데런에 전쟁을 선포했고 플란데런 백작은 이에 맞서 프랑스에 대한 독립을 선언했다. 프랑스군은 신속히 플란데런을 점령하였고, 1300년 프랑스와 플란데런 사이에 강화조약이 맺어졌다.
하지만 프랑스의 강제 점령을 계기로 플란데런에는 프랑스에 대한 독립의 의지가 더욱 고조되었다. 결국 1302년 플란데런인들은 다시 프랑스에 저항해 군사를 일으켰고, 전쟁은 재개되었다.
3. 전개
전투는 그뢰닝거 고원에서 벌어졌는데, 높은 습도와 점토질의 땅 때문에 기병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지형이었다.플란데런 군인들은 대부분 드뤼허 출신 보병으로 이루어졌고 괴덴다그라는 장창을 사용했다. 한편 프랑스는 기병을 중심으로 한 궁수와 보병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지휘관 아르투아 백작 로베르 2세, 라울 드 넬과 국새상서 피에르 플로트가 사망하면서 보병들은 혼란에 빠졌고, 프랑스는 9천 명 중 천 명의 군인을 잃으면서 완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