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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27 20:54:46

홍콩 사대천왕

1. 개요2. 상세3. 구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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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0년대를 홍콩 가요계를 풍미했던 4명의 가수를 뜻하는 말이다. 홍콩 사대천왕으로 불린 4명이 배우로도 활동했기 때문에 홍콩 영화가 인기를 끈 한국에선 '홍콩 사대천왕'이라는 호칭을 홍콩 영화계의 사대천왕을 지칭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사대천왕은 가수 영역에서 비롯된 표현이지 일단은 당시 홍콩 영화계와는 관련없는 호칭이었다. 물론 한국에서 그렇게 인식되면 그렇게 쓸 수도 있긴 하다만.

2. 상세

1992년 미스홍콩선발대회에 당시 스타가수인 장학우, 유덕화, 여명, 그리고 당시 기준 스타가 될 가능성이 높은 곽부성이 하객으로 참여해 한자리에 모인 적이 있었는데, 사대천왕은 이 자리 이후에 등장한 개념이다. 이 홍콩 사대천왕이라는 표현이 한국으로 그대로 수입되어 1990년대 초반 한국 연예 미디어를[1] 달궜다.[2]

이후 홍콩에선 제5대 천왕 후보로 주화건, 이극근, 정이건 등이 거론되기도 했으나 결국 대중화되진 못하고 사대천왕으로 남게 되었다. 참고로 사대천왕보다 먼저 가요계에서 인기를 얻었던 1980년대 알란탐, 장국영, 매염방은 '무적 3인방'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당시 영화계에서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홍콩 박스오피스를 휩쓸었던 주윤발, 주성치, 성룡을 쌍주일성(雙周一成)이라고 불렀다. 이후 주윤발, 성룡이 할리우드 진출을 하면서 견고했던 쌍주일성 체제가 무너지고 곽부성, 정이건 주연의 풍운, 정이건, 진소춘 주연의 고혹자 시리즈가 홍콩 박스오피스의 왕좌를 차지하게 된다.

참고로 대만에서는 제진, 주화건, 왕걸, 동안격이 1990년대 대만 가요계의 사대천왕으로 불린 바 있다.# 소유붕, 오기륭, 금성무, 임지영[3]이 대만 가요계의 사소천왕[4]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한국에선 인지도가 낮다.

3. 구성원

홍콩 사대천왕
장학우 유덕화 곽부성 여명

장학우, 여명은 가수로 데뷔하여 배우 활동을 겸하고 있다. 유덕화는 1981년에 배우로 먼저 데뷔했으며 1985년부터 가수 활동을 겸하고 있다. 댄서로 데뷔하여 배우 활동도 해온 곽부성은 1990년부터 가수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국내에선 홍콩영화가 인기였던만큼 이들 중 유덕화가 가장 유명했고[5], 다음으로 여명이 유명했다. 유덕화는 한국에서 장국영에 이어 투유 초콜릿 광고에도 출연했으며 본인 생애 첫 콘서트를 한국에서 할 정도였고, 앨범과 영화 홍보차 내한해서 한국의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할 정도로 많은 인기를 누렸다. 여명 역시 1990년대 한국에서 한국어 노래[6]와 영어 노래로 한국에서 가수 활동을 하기도 했다.


[1] 방송보다는 스포츠신문과 주간지에서 많이 사용했다.[2] 이후 한국에서도 이 표현이 관용적으로 남아서 '~의 사대천왕'이란 말이 종종 쓰이고 있다. 사대천왕 문서도 참조.[3] 한국에서 임지령으로 알려졌지만, 임지영이 맞는 표기다. 영을 령의 두음법칙 변화로 생각하고 과도교정을 한 것 같은데, 穎자는 원래 음이 영이다. 임지령은 대만의 다른 여성 연예인인 린즈링의 한국어 발음이다.[4] 한국의 일부 언론 기관은 대만의 사소천왕을 대만의 신 사대천왕으로 소개한 적이 있었다. 대만에서는 주걸륜, 왕리훙, 임준걸이 대만 신 사대천왕으로 불리며, 나머지 한 명은 나지상으로 언급한 곳도 있고 도철(陶喆)이나 반위백(潘瑋柏)으로 언급한 곳도 있다.[5] 사실 유덕화 제외 나머지는 홍콩 영화 전성기 기준 일반 대중들이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스타 수준의 인지도는 아니었다. 그나마 여명이 90년대 후반 내한 활동 등으로 청장년층에서 반짝 인기를 끈 정도.[6] 물론 발음은 21세기 K팝 외국인 가수들처럼 철저하게 배우진 못했는지 많이 어설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