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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4-22 00:02:55

홍도(독립운동가)

<colbgcolor=#0047a0> 출생 1895년 5월 11일
함경남도 함흥군 주서면 신중리
사망 몰년 미상
사망지 미상
직업 독립운동가, 공산주의자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홍도는 1896년 5월 11일 함경남도 함흥군 주서면 신중리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홍진의(洪鎭義)다. 그는 일찍이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메이지대학 법과에 재학했다. 그러던 1915년 김철수 등과 함께 비밀결사 신아동맹당(新亞同盟黨)을 조직했고, 1917년경 유학생단체 동아동맹회(東亞同盟會)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이후 1918년 메이지대학을 졸업하여 귀국한 그는 1919년 4월 서울에서 ‘국민대회’ 절차를 통한 정부수립운동을 전개한 후 상하이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여 국무원 위원과 임시의정원 의원 등을 역임하였다.

1920년 서울에서 사회혁명당(社會革命黨)에 참여하여 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21년 5월 상해 고려공산당 창립대회에서 위원으로 선출되어 북만지방(北滿地方) 선전원으로 활동하였다. 1921년 7월, 홍도는 이동휘 등과 함께 코민테른 대표단으로 모스크바로 파견되어 일제의 침략상을 선전하였다.

그 후 국내로 들어왔다가 1924년 7월말 함경남도 함흥에서 적기단(赤旗團) 활동 혐의로 체포되어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제령 제7호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았다. 적기단은 1922년 소련의 극동위원회 고려부(高麗部)에서 활동하던 이동휘 등 고려공산당 상해파계열의 인물들이 조직한 항일단체였다.

이후 출옥한 그는 1927년 독립운동전선의 통일을 위해 좌우가 합작하여 신간회가 창립되자 함흥지회 간사(幹事)로 활동하였다. 같은 해 12월 제4차 조선공산당에 참여하여 집행위원 및 조직부장으로 선임되었다. 이후 소련으로 이주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던 그는 극동변강 내무위원부에 의해 체포되어 1936년 11월 반혁명활동에 대한 혐의로 5년형을 선고 받고 시베리아 교정노동수용소에서 복역했다. 1955년 10월 24일 복권되었으나 이후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홍도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