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호성원종공신녹권(扈聖原從功臣錄卷)』은 임진왜란 당시 선조를 모시고 의주(義州)까지 호종하는데 공을 세운 신하들에게 내린 공신호(功臣號)인 호성공신(扈聖功臣) 중 원종공신(原從功臣)에 해당하는 인물들에게 내린 공신 증명 문서이다. 종로도서관 소장본은 호성원종공신 가운데 류시행(柳時行, 1566~1606)에게 내린 문서로 추정할 수 있는데, 본문 중에 류시행의 성명에만 종이로 가려두었기 때문이다. 책의 말미에 이항복(李恒福, 1556~1618) 등 호성공신도감(扈聖功臣都監) 관원들의 명단을 수록하였다.2. 형태적 특징
이 책의 표지서명은 『호성원종공신록권(扈聖原從功臣錄券)』이다. 본문은 목활자(木活字)인 공신도감자(功臣都監字)로 인출하였다. 첫 장의 반곽이 26.6×18.5cm이며, 계선이 있고 반엽(半葉)마다 10행(行) 19자(字)로 되어있다. 판심의 어미는 상하내향삼엽화문어미(上下內向三葉花紋魚尾)이며, 판심제(版心題)는 호성원종공신녹권(扈聖原從功臣錄券)이다. 권수면, 제39장, 제40장에는 ‘施命之寶’가 안보(安寶)되어 있으며, 권수면 상단에는 ‘京城府立圖書館鍾路分館印’이 답인되어 있다.3. 체제 및 내용
종로도서관의 『호성원종공신록권(扈聖原從功臣錄券)』은 임진왜란 때 선조의 파천에 동행한 공로로 1605년 지평(持平) 유시행(柳時行, 1566~)에게 발급한 것이다. 불분권 1책으로된 이 책의 구성은 녹권의 명칭과 수급자, 원종공신을 책봉하게 된 경위와 의의에 대해 기술한 두사(頭辭), 1등부터 3등까지 공신의 명단 및 원종공신들이 받게 될 은전(恩典)에 대해 기술한 응행사례(應行事例)로 이루어져 있다. 권말(卷末)에는 호성공신도감(扈聖功臣都監)의 관료인 이항복(李恒福, 1556~1618), 이호민(李好閔, 1553∼1634), 박동량(朴東亮, 1569~1635), 윤의(尹顗, 1557~1618), 신암(申黯, 1537~1616), 이계남(李桂男, ?~?) 등의 직함과 성명이 확인된다.종로도서관 고문헌 검색시스템에서 원문 확인이 가능하다.
4. 특성 및 가치
조선시대에는 총 28차례에 걸쳐 공신책봉이 있었다. 그 중에 정공신(正功臣)은 대부분 10~50명 정도의 적은 수였으므로 개인별 공신록권을 필사하여 내려주었지만, 원종공신은 수백 명 또는 수천 명에 이르기도 하였기 때문에 활자로 인쇄하여 녹권을 내려주었다. 原從功臣의 책봉 방법이나 포상은 正功臣에 준하였으므로 등급도 3등으로 구분하였다. 임진왜란 때 선조의 의주 파천에 동행한 호성공신(扈聖功臣)은 1604년(선조 37) 6월에 정공신이 책봉되었고 이어서 1605년(선조 38) 4월에 원종공신이 책봉되었다. 이 녹권을 간행할 때 사용된 공신도감자는 임진왜란 이후 공신도감에서 각종 녹권과 회맹록을 찍기 위하여 만든 목활자이다. 공신도감자는 비슷한 시기에 사용된 목활자인 훈련도감자 및 실록자와 구별된다. 이 활자로 인쇄한 책은 『호성원종공신녹권』 외에도 같은 해 4월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내려진 『선무원종공신녹권(宣武原從功臣錄券)』, 1625년(인조 3) 인조반정에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내려진 『정사원종공신녹권(靖社原從功臣錄券)』과 이괄의 난을 진압할 때 원종공신들에게 내려진 『진무원종공신녹권(振武原從功臣錄券)』, 1628년 유효립의 반란을 평정한 영사원종공신에게 내려진 『영사원종공신녹권(寧社原從功臣錄券)』과 『19공신회맹록(十九功臣會盟錄)』, 심기원 등의 반란을 평정한 영국원종공신에게 1646년에 내려진 『영국원종공신녹권(寧國原從功臣錄券)』과 『20공신회맹문(二十功臣會盟文)』 등이 남아 있다.종로도서관 소장본은 호성원종공신 중 지평(持平) 류시행(柳時行, 1566~1606)에게 내려진 것이다. 제16장 앞면 6행에는 류시행의 성명이 확인되는데, 후대 누군가가 종이로 선조(先祖)의 이름을 가려두었다. 류시행은 본관이 진주(晉州), 자(字)는 중건(仲健), 호(號)는 기정(碁汀)이다. 부친은 정언(正言) 류격(柳格, 1545~1584)이며, 조부는 사복시정(司僕寺正)에 추증(追贈)된 류영문(柳榮門), 증조부는 예빈시별제(禮賓寺別提)를 지낸 류윤(柳潤)이다. 처부는 조선 중기 문신 이대수(李大秀, 1542~1613)의 형인 군수(郡守) 이대화(李大禾)이다. 1599년(선조 32) 문과에 급제하고, 1603년~1606년 사이 실록을 재인출할 때 『명종실록』의 편수관으로도 참여하였다. 류시행은 1596년 이몽학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청난원종공신(淸難原從功臣) 2등에 오르기도 하였다.
류시행은 아들 적(頔, 1595~1619)이 있다. 아들 적은 자(字)가 군미(君美), 호(號)는 사휴(四休)로, 선조(宣祖)의 딸인 정정옹주(貞正翁主)와 혼인하여 진안위(晉安尉)에 올랐다. 류시행의 묘소는 현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에 있다.
※이 문서는 종로도서관 인문사회과학실에서 제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