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호메우 펠리치아리 (Romeu Pellicciari) |
생년월일 | 1911년 3월 26일 |
사망년월일 | 1971년 7월 15일 (향년 60세) |
국적 | 브라질 연방공화국 |
출신지 | 브라질 합중 공화국 준디아이 |
포지션 | 포워드 |
신체조건 | 167cm |
소속팀 | 클루비 상주앙 지준디아이 (1928-1929) 파울리스트라 이탈리아 (1930-1935) 플루미넨시 FC (1935-1941) SE 파우메이라스 (1942) 코메르시아우 (1943-1947) |
국가대표 | 13경기 3골 (1938-19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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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브라질의 전 축구 선수2. 생애[1]
2.1. 선수 생활
2.1.1. 클럽
호메우의 첫 성인 클럽은 고향팀인 클루비 상주앙 지준디아이(Clube São João di Jundiaí)였다. 사실 처음부터 호메우는 파울리스트라 이탈리아의 관심을 받았지만 파울리스트라 이탈리아에서 뛰게 된 것은 지준디아이에서 1년을 뛰고 난 후였다. 이 당시 파울리스트라의 수비수였던 베르톨리니는 호메우의 실력을 보고 구단에 적극적으로 호메우를 영입할 것을 주장했다. 호메우의 가족들은 호메우의 이적을 별로 반기지 않았지만 호메우는 파울리스트라 구단의 이적 제의를 받아들였고 그렇게 파울리스트라의 선수가 되었다.베르톨리니의 안목은 정확했다. 호메우는 파울리스트라에서 있었던 초기 5년동안 1932년과 1934년에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득점왕을 차지했고 팀도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3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파울리스트라 소속으로 펼친 호메우의 최고의 경기는 1933년의 SC 코린치안스전이었다. 이 경기에서 파울리스트라는 코린치안스를 8대0으로 학살했는데 호메우는 4골을 넣었다.
1935년에 파울리스트라를 떠난 호메우는 1941년까지 플루미넨시 FC를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5회 챔피언에 올려놓았다.
1942년에 아버지의 건강 악화로 잠시 친정팀 SE 파우메이라스에 돌아온 호메우는 다리의 통증으로 은퇴하게 되는 1947년까지 코메르시아우(Comercial)에서 뛰었다.
2.1.2. 국가대표
호메우는 1938년 월드컵에서 브라질 대표팀에 데뷔했다. 그는 월드컵 4경기에서 3골을 넣으며 브라질의 당시 월드컵 최고 성적인 3위 달성에 큰 공을 세웠다.그 이후에 각종 국가대표팀 경기에 참가했지만 득점은 기록하지 못했다.
2.2. 이후
선수 은퇴 이후 호메우는 작은 상점을 경영하며 생계를 꾸렸다.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통통한 체격의 소유자였고 예측하기 힘든 드리블 실력을 갖고 있었다.호메우는 SE 파우메이라스와 플루미넨시 FC 양 구단에서 레전드로 대접받고 있다.
4. 뒷이야기
- 호메우의 SE 파우메이라스에서 다시 뛸 때 브라질에서는 이탈리아 이민자들에 대한 박해가 있었다. 그래서 그때 팀 이름을 바꿨고 팀은 지금의 파우메이라스가 되었다.
5. 수상
5.1. 클럽
-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우승 4회: 1932, 1933, 1934, 1942(파울리스트라 이탈리아)
-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우승 5회: 1936, 1937, 1938, 1940, 1941(플루미넨시 FC)
5.2. 국가대표
5.3. 개인
-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득점왕 2회: 1932, 1934(파울리스트라 이탈리아)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 파우메이라스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