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혜월 스님(慧月, 1861년 ~ 1937년)은 경허 선사의 수제자로, 선불교의 참선 수행 전통을 이어받아 근대 한국 불교계에 큰 영향을 끼친 고승이다. 까막눈으로 출가하였으나 처절한 수행 끝에 대오를 이루었으며, 전국 각지에서 선풍을 크게 떨쳤다.2. 생애
1861년 충청남도 예산군에서 태어났으며, 속성은 신(申)씨이다. 11세에 예산 정혜사에서 득도하고, 1884년 천장암에서 경허 선사를 만나 보조국사의 《수심결》을 배우며 수행을 시작하였다.[1]문자에 무지한 상태에서 출가하였으나, 배우고자 하는 열정으로 한문과 수심결을 동시에 익히며 수행에 몰두하였다. 바위 밑 토굴에서 혹독한 한겨울을 정좌 수행으로 견뎌내며 화두참구에 전념했고, 경허 선사와 만공 스님이 찾아갔을 때는 온몸이 얼어 있었으나 정신은 살아 있었다고 전해진다.
어느 날, 경허 선사가 던져준 짚단을 받아 짚신을 삼던 중, 짚신을 마무리하며 나무망치로 두드리는 순간 문득 대오를 이루었고, 이에 경허 선사로부터 법을 인가받았다. “그대는 남방에 인연이 있으니 내려가라”는 명을 받고 이후 경상도와 부산 지역에서 선풍을 일으켰다.[2]
1937년 부산 금정산 안양암에서 세수 77세, 법랍 66세로 입적하였다.
3. 일화
- 짚신을 삼으며 깨달음을 얻었다. 경허 선사의 요청에 따라 짚신을 삼고, 마지막에 망치질을 하던 순간 문이 열리는 듯한 깨달음을 체험했다.
- 울산, 양산, 부산, 경북 지역의 선찰을 중심으로 선풍을 전파하였다.
- 양산 내원사에서 아이들이 잡은 물고기를 여러 번에 걸쳐 후한 값을 주고 사서 냇물에 풀어주는 자비심 어린 일화가 전해진다. “왜 자꾸 풀어주느냐”는 아이들의 질문에 “물고기가 불쌍해서 그런다”고 답하며 자비의 실천을 보여주었다.[3]
- 전강의 요청에 따라 그의 견성을 인가한 바 있다.
4. 법맥
| 세대 | 이름 |
| 1세 | 경허 스님 (鏡虛, 1849~1912) |
| 2세 | 혜월 스님 (慧月, 1861~1937) |
| 3세 | 운봉 스님 (雲峰, 1889~1946) |
| 4세 | 향곡 스님 (香谷, 1912~1978) |
| 5세 | 진제 스님 (眞際, 1927~20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