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족보명 | 현준규(玄俊圭) |
본관 | 연주 현씨[1] |
출생 | 1889년 8월 21일[2] |
충청도 정산현 목면 안심리 (현 충청남도 청양군 목면 안심리) | |
사망 | 1963년 8월 18일[3]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3묘역-335호 |
상훈 | 대통령표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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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2004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2. 생애
1889년 8월 21일 충청도 정산현 목면 안심리(현 충청남도 청양군 목면 안심리)에서 아버지 현광희(玄光熙)와 어머니 밀양 박씨 박병홍(朴秉洪)의 딸 사이의 3형제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1919년 4월 5일 오후 3시경 청양군 정산시장(定山市場)에서의 만세시위를 주도하던 정산향교 직원 권흥규가 일본군 헌병대의 무차별 발포에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이에 다음날인 4월 6일 아침, 정산시장 사람들이 그의 시신을 목면 안심리에 있는 자택으로 운구할 때 현영준을 비롯한 1천여 명이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운구행렬에 동참하였다.
이후 그는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19년 4월 26일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청양헌병분견소에서 태형 90도(度)를 받았다. 166명의 인사들과 함께 태형을 당한 뒤 출옥한 그는, 이후 조용히 지내다가 1963년 8월 18일 별세하였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4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그리고 2006년 10월 19일 본래 충청남도 청양군 목면 송암리에 안장되어 있던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3묘역에 이장했다.